‘이태원 엄마’ 송해진씨와 ‘세월호 엄마’ 정부자씨
‘경향시민대학-시민이 동료 시민에게’ 강연
고 이재현군(당시 16세)은 2022년 10·29 이태원 참사 당시엔 살아서 돌아왔다. 이군은 그러나 참사로 두 친구를 잃은 충격과 슬픔에 트라우마를 겪다가 43일 뒤에 사망했다. 마지막 159번째 희생자다. 고 신호성군(당시 17세)은 2014년 4·16 세월호 참사로 사망했다. 경기 안산 단원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었다. 참사 희생자는 총 304명이며 이 가운데 단원고 학생만 250명이다.
“진상규명과 안전사회.” 세월호 유가족들이 참사 후 줄곧 외친 구호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이태원 참사를 바라보며 누구보다 가슴이 찢어진 건 다름 아닌 세월호 참사 유가족이었다. 8년 동안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도 같은 목소리를 낸다. 이태원과 세월호는 그렇게 겹쳐진다. ‘국가’는 무엇을 했는지 묻는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 송해진씨(가운데)와 세월호 참사 유가족 정부자씨(왼쪽)가 지난 10월 23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 후마니타스연구소에서 개최한 ‘경향시민대학-시민이 동료 시민에게’ 강연에서 발언하고 있다. 유해정 인권기록 활동가(오른쪽)가 사회를 맡았다. 성동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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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후마니타스연구소가 주간경향과 공동으로 기획한 ‘경향시민대학-시민이 동료 시민에게’ 강연이 지난 10월 23일 열렸다. 송해진씨와 정부자씨가 강연장에서 마주 앉았다. 강연에 참가한 시민들과 질의응답도 이뤄졌다.
유해정 인권기록 활동가가 강연의 사회를 맡았다. 유 활동가는 4·16 세월호 참사 작가기록단에서 활동하며, 유가족과 생존자 및 그 가족 등의 육성을 기록한 <금요일엔 돌아오렴>, <다시 봄이 올 거예요>, <그날이 우리의 창을 두드렸다> 등을 썼다. 또 10·29 이태원 참사 기록단에도 참여해 유가족과 생존자의 목소리를 담은 <우리 지금 이태원이야>도 집필했다.
송해진 “힘들게 살아서 돌아왔는데, 저의 챙김과 돌봄이 중요한 상황이었죠. 제가 뭔가 부족해서 아이가 그런 결정을 하게 된 것인지, 내내 생각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아요. 제 역할을 잘하지 못한 것에 대해 평생 가져가야 할 숙제이자 짐인 것 같습니다.”
유해정 “한덕수 국무총리가 ‘본인 생각이 더 굳건하고 치료를 받겠다는 생각이 더 강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말했죠.”
송해진 “장례를 치를 때였는데요, 사실 당시엔 크게 화가 나진 않았던 것 같아요. 죽음 자체가 너무 충격적이어서 그렇게 보냈죠.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그 말이 크게 맺히는 거예요. 재현이도 그렇고 희생자에 대한 허위사실이나 명예, 존엄을 고려하지 않은 발언들이 있었잖아요. 이런 사회적 분위기나 시각 때문에 재현이가 더 힘들지 않았을까. 외로움, 고립감, 죄책감을 더 크게 하는 데 영향을 준 것 같아 아쉬워요. 재현이가 많이 했던 말이 ‘혼자 있는 것 같다’, ‘같이 얘기할 사람이 없다’, ‘외롭다’ 이런 얘기였어요.”
정부자 “아침에 출근해서 일하고 있는데 회사 동료에게 전화가 왔어요. 진도 앞바다에 있는, 단원고 아이들이 탄 배가 침몰했다는 거예요. ‘이게 뭘까, 설마 아닐 거다.’ 정신없이 단원고에 있는 강당에 갔는데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었어요. 그런데 TV에서 ‘전원 구조’라고 떴어요. 웅성거리기 시작했죠. 저는 박수를 쳤어요. ‘그럼 그렇지, 우리나라가 어떤 나라인데, 애들을 저대로 놔두겠어.’ 안도감에 ‘감사합니다!’ 소리쳤어요. 지금도 생각하면 살이 쪼그라드는 느낌이 들어요. 아이 옷을 챙겨 버스를 타고 내려가고 있었어요. 버스에서 애한테 계속 전화를 했는데 신호만 가고 안 받는 거예요. 불안이 몰려왔죠. 진도체육관에 갔는데 구조자 명단에 아들 이름이 없었어요. 시간이 점점 흐를수록 머릿속에 죄책감이…. 배 안에 물이 차면서 자식이 죽어가고 있는데, 엄마는 ‘감사합니다’ 하면서 박수를 쳤던 거예요. 저를 미치게 만드는 거예요. 지금까지도. 그래서 미친 듯이 몸을 혹사시키고 다녔던 것 같아요. 뭐라도 잊기 위해서. 나 자신을 용서할 수가 없어요.”
세월호 참사 유가족 정부자씨(왼쪽)와 이태원 참사 유가족 송해진씨가 지난 10월 23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 후마니타스연구소에서 개최한 ‘경향시민대학-시민이 동료 시민에게’ 강연에서 발언하고 있다. 성동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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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해정 “유가족 활동을 보면 자기 고행적이고 자기 대결적인 투쟁을 많이 합니다. 이태원 참사 유족분들도 특별법 통과를 위해 삼보일배를 했죠.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은 팽목항에서 안산까지 도보행진을 했습니다. 세월호 참사가 내년이면 10주기입니다. 보통 ‘시간이 약이다’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요. 정말 그런가요.”
정부자 “시간이 약이 아니라 유가족들을 보면 병만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여러 증상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잇몸이 다 가라앉고 눈이 멀고 머리에 종기 같은 게 나고. 발은 시려서 양말은 신었는데 몸은 더워서 옷을 벗고 있어요. 끔찍한 참사가 일어났으면 국가가 책임지고 해결하면 좋을 텐데, 해결 방법이 세월을 흘러가게 내버려 두는 것 같아요. 시간이 흐르면 나을 줄 알았어요. 이제 몸에 통증이 와요. 밤에 잠을 못 자요. 그러면서 또 아이에게 미안해졌어요. 엄마가 투쟁심이 식었나보다, 울분과 분노, 아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식어서 내가 통증을 느끼나 보다, 미안해, 이렇게 됩니다. 절대 시간이 해결해주지 않아요.”
송해진 “처음 주변분들이 빨리 회복해서 일상으로 돌아가라고 위로의 말을 해주실 때는 그냥 들었어요. 얼마 지나지 않아 알겠더라고요.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거든요. 한순간에 너무 큰 충격을 받으니까, 전반적인 뇌의 사고나 감정처리 능력이 한순간에 확 떨어지는 걸 느껴요. 특히 대인관계에서 매 순간 위기가 와요. 분노, 슬픔이 제어가 안 돼서 힘든 순간이 지속돼요. 가족끼리 처음에는 예전에 했던 대로 학교나 직장 같은 일상의 얘기를 하려고는 했어요. 그런데 이게 우리에게 필요한 얘기가 아니더라고요. 우리에게는 하루, 딱 하루만 잘 살아내는 게 가장 중요하고 힘든 일이에요. 재현이의 억울함을 제가 대신 말하는 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커요. 숙제를 푼다는 생각으로 사는 것 같아요. 오늘 하루도 숙제 잘 끝냈고, 이번 한 주도 잘 살아냈고, 또 한 달을 잘 보냈고….”
유해정 활동가는 세월호와 이태원 참사로 자녀를 잃은 두 어머니의 사연을 말했다. 세월호 유가족 한명이 자녀를 잃고 힘들어할 때, 같은 지역에 사는 다른 어머니가 지지를 보냈고 연대해줬다고 한다. 그런데 도움을 주던 그 어머니의 자녀가 이번 이태원 참사로 희생됐다. 세월호 유가족은 “세월호 참사 이후 달라져야 한다고 외쳤던 세월이 무섭고, 죄책감에 짓눌려 많이 힘들다”는 내용의 메시지를 유 활동가에게 보냈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2014년 9월 2일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청와대를 향해 삼보일배로 이동하고 있다. 그러나 유족들은 이날 경찰에 막혀 약 180m밖에 전진하지 못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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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자 “우리가 조금 더 움직이면 세상이 바뀔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우리처럼 아픈 부모들이 나오게 하지 말자는 생각으로 힘내고 여기까지 온 것이죠. 그런데 이태원 참사를 겪고 나니 한동안 몸이 바닥으로 축 가라앉아서 어떻게 할지 몰랐어요. ‘왜 막지 못했나, 우리가 움직여서 뭐할까.’ 이태원 참사 이후 정부의 행태를 보니 바뀐 게 없었습니다. 희생자 대우와 유가족을 대하는 행동도 마찬가지였죠. 결국 나의 안전은 내가 지켜야 하는 것인가. 지금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이나 문제 해결 과정을 보면 너무 안타까워요.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너무 답답합니다.”
유해정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서 9번의 공식적인 진상조사가 진행됐습니다. 이를 보면서 어떠셨는지요.”
정부자 “너무 순진하게도 ‘국가가 우리를 계속 이대로 살 게 하지는 않겠지’라고 생각했습니다. 조사가 이뤄질 때마다 뭔가 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형식적으로 시간만 때우지 않았나 싶습니다. 유족들은 지금도 너무나 알고 싶습니다. 내 새끼가 왜 이렇게 됐는지, 왜 아이들을 구조하지 않았는지, 구조할 시간이 있었음에도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만 하고 그들은 빠져나왔는지, 왜 배가 급속하게 침몰했는지…. 내년이면 10년이 되는데 뭐 하나 된 게 없습니다.”
유해정 “이태원 참사의 진상규명 과제는 무엇일까요.”
송해진 “우선 왜 예방 조치를 취하지 않았냐가 중요합니다. 저는 이태원 근처에 살고 있어요. 해마나 핼러윈 축제가 있을 때 정부와 지자체에서 관리에 나선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밀집된 인파를 왜 그날, 그 행사 때만 관리하지 않았는지 밝혀져야 합니다. 참사 당일 희생자와 생존자분들이 그렇게 많은 신고를 했는데, 왜 제대로 대응하지 않았는지도 명확하게 가려져야 합니다. 몇몇 책임자의 재판이 진행 중이지만, 하나같이 풀려났죠. 원래 자리에 가서 행정업무를 담당하고 있어요. 사퇴한 사람이 한명도 없습니다. 누가 이걸 납득할 수 있을까요.”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 종교인들이 지난 8월 24일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서울 마포구 마포역을 출발해 국회 방향으로 삼보일배를 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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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해정 “영국에서 재난참사가 발생하면, 국가의 중요한 역할 가운데 하나가 가족들을 모으는 것입니다. 가족들이 동병상련의 마음과 정보를 나누면서 심리적 안정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이죠. 한국 정부는 희생자 가족의 연락처를 제공하지 않았죠. 재현이 어머님은 어떻게 유가족협의회에 가게 되신 건가요.”
송해진 “유가족협의회 출범은 기사를 봐서 알고는 있었어요. 재현이 장례를 치르고 발인을 하고 왔는데,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어떤 연락도 없었어요. 재현이의 죽음이 개인의 사정, 우리 가족만의 일로 치부되는 중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부모로서 잘 키워내지 못한 죄책감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재현이가 그런 선택을 한 이유에는 사회적 요인이 분명히 작용했다고 생각해요. 혼자서 목소리를 내는 것보다는 함께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유가족협의회에 연락했어요.”
유해정 “유가족협의회에서는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요.”
송해진 “저 스스로 위태위태하다고 생각할 때가 고립감을 느낄 때입니다. 나만 혼자 떨어져 있는 고립감. 누구도 날 알아줄 수 없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는데, 잘 제어가 안 됩니다. 저에게 남은 역할과 책임도 안 보이고 순간순간 위험한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다른 유가족분들 만나면 나와 같은 세상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느낌이 편합니다. 특히 서울시청 앞 분향소는 가족들이 만날 수 있는 공간이에요. 저희가 일상이나 관계에서 힘들고 지치면 분향소에 가서 가족들 만나 마음의 안정과 위안을 받아요. 유가족들은 서로가 서로의 치료사인 것이죠. 재현이를 위해서 병원과 상담치료센터 같은 곳을 막 찾아다녔어요. 재현이도 자기와 비슷한 연령대의 참사 생존자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더라면, 참사 이후 시간을 겪어내는 데 수월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심리치료는 사회적 공감대와 분위기가 형성되고 그게 밑바탕이 돼야 가능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개인의 문제로 여기는 측면이 있어 많이 아쉬워요.”
강연에 참가한 시민들이 사회적 지지가 얼마나 힘이 되는지, 시민 개인이 지지를 위해 할 수 있는 건 무엇인지 등을 물었다.
송해진 “사회가 돌아가는 동력이란 것을 정치하는 사람, 대통령, 서울시장 등 굉장히 크고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사회적 참사를 겪은 당사자가 되고 난 뒤에는 생각이 바뀌었죠. 정치권력이나 소수의 권력자에 의해서만 사회가 돌아간다면, 지금 분향소도 지킬 수 없었을 거예요. 생각보다 사회적 지지와 연대를 보내고 따뜻하게 발언하는 분들이 솔직히 말해서 의외로 많더라고요. 수많은 사람의 따뜻한 마음이 사회가 돌아가는 큰 동력이라는 점을 피부로 느끼고 있습니다.”
정부자 “시민들한테 받은 게 많습니다. 저희가 4·16가족나눔봉사단을 출범해 나눔을 하는 것도 함께해주신 분들께 받은 게 많아서 돌려드려야겠구나 해서입니다. 서울에서 연탄 봉사를 하고, 안산에서 지역 어르신과 청소년들에게 김장을 해서 나눠주고 있어요. 쓰레기 줍기, 설거지 등 여러 활동을 합니다. 처음에는 ‘세월호 것들 뭐하러 왔냐’고 내쫓던 분들도 이제는 커피도 타주고 너무 친해졌어요. 이런 활동들이 유가족을 성장시키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같이 살고 있다는 느낌이죠.”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와 세월호 참사 유가족 등이 지난 6월 28일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 특별법 제정 촉구를 위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문재원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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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해진 “생명안전기본법이 있었다면 특별법을 만들 필요가 없었을 겁니다. 생명안전기본법 제정을 위한 국회 국민동의청원이 얼마 전에 인원을 채웠다고 합니다(지난 9월 28일 동의 인원 5만명을 넘어 자동으로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 회부됐다-편집자 주). 큰 위안이 됐습니다. 시민들이 안전한 사회에 대한 관심과 의지가 있다는 점을 저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계기가 됐습니다. 이처럼 생계에 지장이 있을 정도의 투쟁이나 정치적 활동이 아니더라도, 각자 위치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방법은 많은 것 같습니다.”
생명안전기본법은 참사가 발생했을 때 구조적 원인 등을 조사할 수 있는 독립적 기구를 상설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 피해자의 권리보장을 명확히 했다. 안전영향평가 제도 시행도 규정한다. 참사가 발생할 때마다 유가족들이 특별법 제정을 위해 싸워야 하는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서다.
정부자 “4·16합창단이 있습니다. 유가족과 시민들이 함께합니다. 4·16가족나눔봉사단도 오는 11월에 김장을 합니다. 소외된 청소년 어르신들께 나눠요. 서울시의회 건물 앞에 있는 세월호 참사 기억공간에서 피케팅과 문화재를 하는데요, 여기 와주셔도 좋고요. 이렇게 유가족, 시민들과 얘기를 나누다 보면 뭘 해야 할지 알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함께해봐요.”
정희완 기자 ros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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