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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6 (목)

이슈 화성연쇄살인사건 범인 자백

손톱 DNA에 딱걸렸다...12년 만에 잡힌 울산 다방 주인 살해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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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의 한 다방 여주인을 살해하고 도주한 범인이 12년 만에 붙잡혀 죗값을 치르게 됐다.

조선일보

지난 2012년 1월 발생한 울산 남구 신정동 다방 여주인 살인사건 현장. /울산경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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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경찰청은 4일 울산 남구 신정동의 한 다방에서 여주인 A(사건 당시 55세)씨를 살해한 피의자 B(55)씨를 살인 혐의로 구속했다고 밝혔다.

B씨는 지난 2012년 1월 9일 오후 9시 27분쯤 술에 취해 다방에 손님으로 들어가 혼자 있던 A씨를 홧김에 폭행하고, 목을 졸라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범행은 당시 A씨 사위가 경찰에 신고를 하면서 알려졌다.

사위는 당시 “장모가 집에 오기로 했으나 연락이 안돼 열쇠공을 불러 강제로 문을 열었더니, 다방 계산대 옆 바닥에 장모가 숨진 채 쓰러져 있다”고 경찰에 신고했다. 당시 A씨의 옷은 벗겨져 있었고, 목이 졸린 흔적도 남아 있었다. A씨 몸 위로 설탕도 뿌려져 있었다.

경찰은 즉각 대대적인 수사에 들어갔다. 다방 출입자와 인근 인력사무소, 가게 관계자 등 목격자, 전과자 등 관계인 500여명을 수사하고, 방범카메라(CCTV)와 통신기지국 자료 분석, 현장감식 등 광범위한 수사를 진행했다. 그러나 범인을 특정할 수 있는 단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그렇게 이 사건은 미궁에 빠지는 듯했다.

하지만 반전이 일어났다. 12년 전 A씨의 손톱에서 검출된 유전자(DNA)와 일치하는 DNA가 최근 발견된 것이다. 이 DNA는 A씨가 범인에게 저항을 하면서 생긴 것으로 추정됐다. 사건 직후 A씨의 손톱에서 발견된 유전자는 남성과 여성의 유전자가 섞인 ‘혼합 유전자’로, 양이 많지 않고 용의자도 특정되지 않아 확인하지 못했다.

하지만 2019년 10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DNA 증폭 기술로 유전자를 분리해 낸 뒤, 범죄자들의 DNA 데이터베이스에서 이와 일치하는 유전자를 찾았다.

B씨는 또 다른 범죄를 저질렀다가 결국 꼬리를 잡히게 된 것이다. 그는 지난 2013년 1월에도 울산 울주군 언양읍의 다른 다방 여주인을 재떨이로 폭행해 폭행죄로 징역 2년을 복역했다. 그러면서 당시 B씨의 유전자는 국과수의 DNA데이터 베이스에 보관될 수 있었다. 언양 다방 사건에서도 그는 혼자 있던 다방 여주인을 폭행했으나, 다행히 당시 다방에 다른 손님들이 들이닥치면서 이들의 신고로 현장에서 체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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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경찰청 전경.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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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DNA만으로 B씨의 범행 전모를 밝힐 수는 없었다.

울산경찰청 중요미제사건 전담수사팀은 DNA 감식 결과를 바탕으로 B씨를 유력 용의자로 보고, 인근 다방 주인 등 사건 관계인 300여명과 B씨가 다녀간 행선지 500여 곳을 탐문수사했다. B씨의 통신, 금융 계좌를 분석하고 11차례에 걸쳐 증거물들을 재감정했다. 6개 시도 경찰청이 공동으로 범죄 분석에 들어갔고, 법의학 전문가를 대상으로 감정의뢰도 했다.

그 과정에 B씨가 당시 사건 현장에 있었다는 정황이 확인됐다. 사건이 일어나기 전엔 B씨가 현장 주변 여관 등을 전전하면서 다방들을 자주 찾았는데 사건이 발생한 뒤 발길을 뚝 끊었다는 진술 등이 확보됐다.

B씨는 처음 경찰 조사에선 범행을 부인했으나 경찰이 ‘화성 연쇄 살인사건’과 ‘인천 택시강도 살인사건’ 프로파일러 등을 투입해 심리적으로 압박, 회유하면서 태도를 달리하기 시작했다.

결국 B씨는 범행 전모를 실토했다. 그는 범행 당시 A씨에게 성관계를 요구했으나, A씨가 이를 거부하자 ‘나를 경멸하는 것 같고 모욕감을 느껴 홧김에 목을 졸라 살해했다’는 취지로 경찰에 진술했다. 또 “살인을 해 숨어 사는 동안 마음이 괴로웠다”고도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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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월 발생한 울산 신정동 다방 여주인 살인사건 현장. /울산경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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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발달된 국내외 DNA 판독 기술 등 과학수사 기법은 십수년 간 미궁에 빠져있던 미제 사건을 해결하는 도구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미성년자 연쇄 성폭행범으로 악명 높은 김근식(56)도 이 ‘DNA’에 딱 걸린 적이 있다. 지난 2022년 10월, 김근식이 2006년 당시 13세 미만이던 미성년자를 강제로 추행한 혐의가 16년 만에 추가로 확인됐다. 김근식은 당시 미성년자 11명을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돼 징역 15년을 선고받고 2022년 10월 만기 출소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그해 10월 수원지검과 경기남부경찰청이 대검찰청·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보관돼 있던 DNA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김근식이 이 사건 범인으로 특정됐고 지난해 3월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 받아 옥살이를 더 하게 됐다.

미국에선 지난 2010년 시신 16구가 뉴욕주 롱아일랜드 사우스쇼어의 해변에서 발견된 ‘길고(Gilgo) 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 렉스 휴어먼이 13년 만인 지난해 8월 붙잡혔다. 휴어먼을 유력 용의자로 밝힌 것 역시 DNA였다. 뉴욕 경찰은 지난해 4월 그가 사무실 쓰레기통에 먹다 버린 피자 상자에서 그의 DNA를 채취했고, 살인 현장에 남은 DNA와 대조해 일치하는 것을 확인했다.

휴어먼은 길고 해변 인근에 살면서 여성 세 명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됐다. 당시 연쇄살인 희생자로 추정되는 여성의 시신만 최소 10구였다는 점에서 그 혐의가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방경배 울산경찰청 강력계장은 “최근 발달된 과학 수사 기술로 늦게라도 범인이 잡히는 경우가 늘고 있다”며 “중요 미제사건에 대한 정보나 수사단서들이 적극 제보된다면 사건 해결 가능성이 훨씬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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