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낙태약 불허’ 각하 판결에 고무
연방 대법원은 13일 낙태 반대 단체들이 먹는 낙태약 ‘미페프리스톤’의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취소해 구매할 수 없도록 해달라며 제기한 소송에서 하급심을 뒤집고 만장일치로 각하했다. 낙태 반대 단체들이 미페프리스톤의 시중 판매로 어떤 피해를 봤는지 입증되지 않아 원고로서 자격이 없다는 취지다. 이번 판결은 반세기 동안 여성들의 보편적 낙태권을 보장한 ‘로 대 웨이드’ 판례가 폐기된 지 2년 만에 연방 대법원에서 나온 낙태권 관련 판결이다. 당시 폐기에 찬성표를 던진 보수 성향 대법관 6명이 이번에는 진보 대법관 3명과 함께 각하에 찬성했다.
이 소송은 텍사스주 낙태 반대 단체들이 처음 제기해 2022년 11월 1심 법원은 원고들의 청구를 인용해 FDA의 승인 조치를 취소했다. 그러자 연방 법무부가 직접 항소에 나서 지난해 8월 2심 법원은 제한적 범위에서 미페프리스톤의 구매가 가능하도록 판결했다. 이에 법무부는 “이 약은 지금처럼 자유롭게 구입할 수 있어야 한다”며 대법원에 다시 상고해 아예 각하 결정까지 받아냈다.
이번 판결에 바이든 행정부와 대선 캠프는 고무된 분위기다. G7(7국) 정상 회의 참석차 이탈리아를 방문 중인 바이든은 판결 후 공식 성명을 내고 “대법원이 2년 전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뒤집어 여성들이 기본적인 자유를 잃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면서 “여성들은 FDA가 승인한 미페프리스톤을 통해 자유롭고 안전한 낙태 권리를 보장받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낙태약에 대한 공격은 전국적으로 낙태를 금지하려는 공화당 관료들의 극단적이고 위험한 의제”라고 했다. 바이든은 이어 소셜미디어 X에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와 나는 여성이 자신의 건강과 관련해 스스로 결정할 권리를 지지하는 대다수의 사람과 함께한다”고도 했다. 낙태를 보편적 여성의 권리로 부각해 대선 의제로 끌고 가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힌 것이다.
13일 이탈리아 풀리아주(州) 보르고 에냐치아 리조트에서 G7(7국) 정상회의에 참석한 각국 정상들이 이탈리아 육군의 낙하산 강하 시범을 참관한 뒤 한 병사의 경례에 화답하고 있다. (왼쪽부터)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 샤를 미셸 유럽연합(EU) 정상회의 상임의장,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리시 수낙 영국 총리,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UPI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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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캠프의 이런 움직임과 관련해 “낙태를 단순한 피임 문제가 아닌 ‘반세기 동안 쌓아 올린 여성의 권리’에 대한 전선(戰線)으로 여기고 있는 미국 진보 진영의 정서를 의식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2022년 6월 보수 우위 대법원에서 로 대 웨이드 판례를 폐기한 뒤에 조 바이든 행정부와 민주당은 이 문제를 대선 쟁점으로 점화시키려 기민하게 움직였다. 로 대 웨이드가 폐기되고 한 달 만에 연방 법무부에 전담 태스크포스를 만들고, 각 주에서 진행되는 반낙태 관련 소송을 국가 차원에서 지원했다. 이 태스크포스를 이끌고 있는 메릭 갈런드 법무 장관은 당초 오바마 행정부에서 연방 대법관 후보로 지명됐지만, 이후 트럼프 집권 뒤 결국 인준 절차가 진행되지 않아 낙마해 트럼프와는 악연이 있기도 하다. 그러나 바이든이 낙태권 이슈를 지나치게 부각하려 할 경우 역효과가 날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당장 이탈리아 G7 정상 회의에서 정상들끼리 낙태권 문제를 두고 이견이 표출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워싱턴포스트 등 외신들에 따르면, 이번 G7 정상 회의 공동선언에 낙태권을 포함하는 문제를 두고 이에 찬성하는 바이든,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와 반대하는 주최국 이탈리아의 조르자 멜로니 총리 간에 이견이 불거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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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윤주헌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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