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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4 (일)

7천원 ‘착한 칼국수’…봉제공장 직원들 시름 달랜 그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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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택구네 집밥의 대표메뉴인 칼국수. 가격은 7천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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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객을 상대하는 북적이는 ‘TV 맛집’은 사절합니다. 지역의 특색있는 숨은 맛집, 누가 가장 잘 알까요? 한겨레 전국부 기자들이 미식가로 이름난 지역 터줏대감들에게 물었습니다. “어디 가서, 뭘 먹어야 합니까?” 대답을 망설이는 기색이 역력합니다. 한두 군데 마지못해 추천하면서 꼭 한마디를 덧붙이네요. “여기, 소문나면 곤란한데.”





“비 오는 날엔 칼국수죠.”



서울에 비가 추적추적 내린 지난 9일 금천구청 김원규 언론팀장이 말했다. “술 많이 먹은 다음 날이나 오늘처럼 비가 오는 날에 생각나는 곳”이라며 그가 안내한 곳은 금천구 독산동에 있는 ‘택구네 집밥’. 간판에 적힌 ‘택구네’는 무슨 뜻일까 하는 의문을 품고 가게 문을 열었을 때가 점심시간 끝 무렵인 오후 1시20분. 4인석 테이블 6개가 있는 소규모 식당을 운영하는 이인숙(69)씨가 혼자 손님들 반찬을 차리고 있었다. 손님이 앉지 않은 테이블 3곳에는 아직 치워지지 않은 음식물이 있었다. 지칠 만도 할 것 같은데 이씨는 웃는 얼굴이었다.



“사장님, 칼국수 1개, 수제비 1개, 요일 메뉴 된장찌개 1개요.” 칼국수를 먹으러 왔지만, 매일 바뀐다는 요일 메뉴도 하나 시켰다. 그래도 가격은 2만2천원. 칼국수와 수제비는 7천원, 요일 메뉴는 8천원이다. 바로 옆 테이블에서는 30∼40대 남성 두 명이 지친 듯 말 한마디 하지 않고 된장찌개를 먹고 있었다. 이씨는 “제일 많이 오는 손님들은 주변에 있는 봉제공장 노동자들이고, 동 주민센터, 구청 직원들이 두 번째로 많이 오는 손님”이라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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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국수, 수제비, 된장찌개, 6가지 반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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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국수와 수제비는 큰 스테인리스 그릇에 한가득 담겨 나왔다. 면발 위에 있는 바지락, 채 썬 초록색 호박, 주황색 당근 덕분에 칼국수는 더 먹음직스럽게 보였다. 식당 밖에선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데, 맑은 국물에서 모락모락 김이 올라오니 밑반찬이 테이블에 오르는 짧은 시간조차 기다리기가 힘들었다. 이런 마음을 알아챘는지 김 팀장은 “그래도 사진부터 찍고 시작해야죠”라며 젓가락으로 면발을 들어 올렸다.



칼국수 면발은 탱탱하고 쫄깃쫄깃했다. 면치기 고수가 아니더라도 ‘후루르륵’ 소리를 낼 수 있을 정도의 탄성이랄까. 국물은 말 그대로 담백하고 맑았다. 특히 끝 맛이 깔끔해 속이 편안했다. 라면 국물은 입에 착착 감기지만 입안에 텁텁한 느낌이 남는데, 이 칼국수 국물은 그런 느낌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요일 메뉴를 시켜서인지 열무김치, 배추김치, 깻잎, 감자볶음, 두부 조림, 햄 등 6가지 반찬이 함께 나왔다. 칼국수만 시킨 옆 테이블을 슬쩍 보니 열무김치, 배추김치, 무김치, 오이소박이 4가지 반찬이 올려져 있었다. ‘집밥’이라고 써놓은 식당답게 어머니가 직접 만들어 준 반찬처럼 자극적이지 않고 정갈했다. 특히 뜨겁고 쫄깃한 면발과 시원하고 아삭한 열무김치가 잘 어울렸다. 김 팀장에게 수제비 맛은 어떠냐고 물으니 면고수다운 말이 돌아왔다. “칼국수는 후루룩하는 맛으로 먹잖아요. 수제비는 쫄깃하게 씹히는 맛으로 먹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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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서울 금천구 독산동 택구네 집밥에서 식당 주인 이인순씨가 이날 만든 반찬을 찬을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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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2시쯤 식당이 한가해지니 식당 주인 이씨가 옆 테이블에 앉았다.



“너무 맛있어요”



“그래요? 진짜 맛있어요?”



“네. 그릇 보세요. 싹 비웠잖아요”



“에이, 늦은 낮이라 시장하니까 다 맛있는 거잖아요”



이씨는 음식이 맛있다는 말을 듣는 것도 쑥스러운지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물론 음식 준비 과정을 이야기할 땐 자신감이 묻어났다. 칼국수의 쫀듯한 면발은 찰밀가루로 직접 만드는 반죽에서 나온다고 했다. 맑은 국물의 비법이라면 좋은 멸치다. “멸치를 고급스러운 거 쓰면 국물이 맑아요.” 송파구 가락동에서 멸치가 오면 멸치를 다 펼쳐놓고 몇 날 며칠을 건조한다고 한다. “그냥 쓰면 비린내가 나거든요.” 멸치뿐 아니라 디포리, 보리새우, 건표고, 북어 머리, 고추씨, 다시마, 무, 양파, 대파, 생강, 마늘 등을 넣어 육수를 만든다. 이씨는 “미원이 거의 들어가지 않은 것 같아서 좋다고 하는 분들이 정말 많다”면서도 “조금이긴 해도 저도 미원을 넣긴 한다”고 했다.



이씨는 아침 7시 전에 광명시 하안동 집에서 나와서 밤 11시50분 가게 정리를 하고 버스를 타고 집에 들어간다. 반찬을 매일 직접 만들고, 칼국수 육수를 만들고, 점심 장사를 하고, 저녁에는 삼겹살 등 술안주도 판다. 2011년부터 14년째 일요일만 쉬면서 혼자 장사를 해왔다. 힘들지 않으냐는 물음에 “상상도 못 할걸요”라는 말이 돌아왔다.



좋은 재료에 더해 이런 정성과 노동이 들어간 칼국수가 7천원이다. 매번 쑥스러워하는 이씨도 “제 생각에도 가성비는 괜찮은 것 같다”고 말할 정도다. 이곳은 구가 인증한 ‘착한가격가게’이기도 하다. 단골인 구청 직원들은 “요샌 짜장면도 8천원이라며 천원 정도는 올려도 된다”고 말한다. “이런 말 하기 좀 그렇지만, 서울시 중에서는 금천 생활 수준이 조금 어렵잖아요. 그런데 음식값까지 비싸 봐요.” 이씨가 칼국수 가격을 유지하고 있는 이유 중 하나다.



“사장님, 채소가격 올라도 지금 가격대로 유지할 수 있어요?”



“조금 벌죠. 뭐.”



“채솟값 떨어지면 최저임금 정도 벌고, 채솟값 오르면 최저임금보다 적게 버는 거네요” 김 팀장이 옆에서 거들었다.



이씨는 30대엔 서울 퇴계로에서 돼지갈빗집을 하고, 40대엔 강동구에서 통닭집을 했다고 한다. 이후엔 한때 유행하던 ‘소주방’도 해봤지만, 아이엠에프(IMF) 불경기 때 가게를 접어야 했다. 그 후엔 식당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다 2011년, 식당을 다시 열어보려고 안양, 수원 등을 다니다가 월세가 가장 저렴한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당시 월세는 60만원이었다. 지금 월세도 60만원이다. 이씨는 “주변 건물은 2년마다 임대료가 올라가는데, 우리 건물주는 14년 동안 한 번도 월세를 올리지 않았다”며 “칼국수 가격도 그래서 유지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건물주도 가끔 식당에 오는데, 옷도 제가 처음 뵐 때 본 그대로일 정도로 검소하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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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서울 금천구 독산동 택구네 집밥 앞에서 식당주인 이인숙씨가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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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를 뜨기 전, 들어올 때부터 궁금하던 점을 물어봤다. “식당 이름이 왜 택구네예요?”



“손님들도 자꾸 물어봐요.” 이씨가 쑥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그럼 뭐라고 하세요?”



“암말도 안 해요. 그럼 아들 이름이냐고 또 물어와요.”



“그땐 어떻게 하세요?”



“그냥 대답 안 하고 못 들은 척해요. 저는 사실 딸만 있고 아들도 없어요.”



“알려주시면 안 돼요?”



또 얼굴을 가리고 웃더니 이렇게 말했다.



“이 가게 계약하고 잔금 치를 때까지 시간이 있었어요. 진짜 이름을 몇 날 며칠 고심을 하면서 서울 강남 쪽 여기저기 다니면서 조금 멋있는 이름을 찾아다녔거든요. 결국 멋있는 이름은 못 찾았어요. 그러다 남편한테 물어봤는데 ‘택구네’로 하래요. 자기(남편) 이름이거든요. 마침 그때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가 인기 있었던 시절이었어요. 멋있는 이름 찾다가 남편 이름으로 가게를 오픈한 거죠.”



너무나 솔직한 답을 듣고 보니 이런 생각이 절로 들었다. ‘이거야말로 소문나면 곤란하겠는데’.



글·사진 기민도 기자 ke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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