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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17 (월)

이슈 강제징용 피해자와 소송

한국·일본·대만 ‘한센 인권운동 20년’…“징용·위안부 문제 해결 실마리 보여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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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14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국·일본·대만 삼국 한센인권연대 국제심포지엄’에서 가나마루 테츠히로(金丸哲大) 변호사가 일본에서의 한센병 격리 정책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장현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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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센인 자녀라는 이유로 보육원 생활을 하고 친부모님의 양자로 살게 되었던 것이 아직도 야속하고 원망스럽습니다. 우리는 교육의 기회와 직업을 얻을 권리를 박탈당해 사회 구성원으로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었습니다.” (한국 한센인 2세 권아무개씨)



“저는 일본의 한센인 가족 소송 원고 190번입니다. 이름 없이 번호로밖에 소개할 수 없는 건, 지금까지 차별과 편견 속에 살아왔다는 의미입니다. 한센인 자녀라는 이유로 저는 태어났을 때부터 인권이 없었습니다. 인권을 빼앗기고 억울하게 돌아가신 분들, 지금까지 조용히 숨어 살고 계시는 가족을 위해 우리는 계속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익명의 일본 한센인 2세)



‘한국·일본·대만 삼국 한센인권연대 국제심포지엄’이 열린 14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기자회견장 곳곳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언어는 다르지만 같은 아픔을 공유하는 한센인 2세들이 서로의 이야기를 들으며 흘린 ‘공감의 눈물’이었다. 한국·일본·대만 한센 인권변호단과 한센총연합회가 주최한 이번 심포지엄에는 3국의 변호인단과 한센인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한센 인권 변호인단 활동 20주년을 기념해 열린 이번 심포지엄에서 참석자들은 3국이 경험해 온 한센 인권 운동의 역사와 한계를 짚어봤다.



한센 인권 운동은 2001년 구마모토 지방법원이 국가배상청구 소송에서 일본 한센인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주며 시작됐다. 이후 2003년 일본 변호인단은 일제강점기 전남 고흥군 녹동 소록도에 강제 격리된 한국 한센인들을 위해 일본 후생노동성을 상대로 소송이 진행하며, 민주사회를위한 변호사모임(민변) 광주·전남지부와 대한변호사협회(변협) 문을 두드렸다. 비슷한 피해를 입은 대만 낙생원 한센인의 소송도 이어지며 3개국의 인권 변호인단이 구성됐다.



2004년 시작된 인권 변호인단의 활동은 20년간 꾸준히 이어져 오고 있다.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한 국가배상 소송에서 2005년 10월 한국은 패소하고 대만은 승소했지만, 2006년 일본이 한센보상법을 개정하며 한국 피해자들도 보상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이후 해방 후에도 소록도에 한센인을 가두고 강제 단종 수술 등을 지속한 한국 정부를 상대로 한 국가배상 소송도 진행됐는데, 소록도 한센인 원고 538명이 피해를 인정받을 수 있었다.



현재는 한센인 가족을 위한 피해보상 소송이 진행 중이다. 일본 한센인 가족들은 2019년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내 승소했고, 한국에선 2021년 한센가족보상청구변호단이 구성돼 현재 74명의 한센인 가족이 인정을 받았다. 이같은 성과는 3국 활동가들이 함께 이룬 성과이다.



2004년부터 인권 변호인단 활동을 만들고 주도해 온 도쿠다 야스유키 변호사 역시 이날 심포지엄에 함께했다. 도쿠다 변호사는 “일본 정부가 과거에 했던 잘못을 일본 국민의 한 명으로서 사과를 했고, 그를 통해 변호인단이 서로 오랫동안 연대하고 존중해올 수 있었다”며 “이런 연대는 한센인 피해 회복 문제에서 그치지 않고, 한일간 일제 징용이나 위안부 문제 역시 협력을 통해 해소할 수 있는 실마리를 보여주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우리 활동이 그런 역할에 도움이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장현은 기자 mix@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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