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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9 (목)

시리아 국민 “수십년 억압서 자유 되찾아… 불안정한 미래는 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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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해방 주민·난민들

“저의 형은 2년 전 길을 걷다가 끌려가 투옥됐습니다. 아무도 이유를 모릅니다. 이처럼 국민을 억압하고 유린해온 알아사드 정권의 붕괴는 모든 시리아 국민의 행복입니다.”

중동의 악명 높은 독재자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이 지난 8일 반군에 축출된 직후 시리아 남부 다라에 사는 디야 알하산씨는 본지에 “이제 우리가 안전하게 살게 되기만을 바란다”고 했다. 이날 시리아 곳곳에선 알아사드 정권의 붕괴를 알게 된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갑자기 찾아온 ‘해방’의 기쁨을 나눴다. 반군과 정부군 사이에 13년 동안 이어져 62만명이 목숨을 잃은 내전은 이슬람 무장단체 하야트 타흐리르 알샴(HTS)을 주축으로 한 반군이 이날 오전 수도를 점령하면서 알아사드의 축출로 일단락됐다. 알아사드는 그동안 자신을 지원해온 러시아로 망명했다고 이날 러시아 관영 매체들이 보도했다. 러시아·이란의 도움으로 유지돼온 알아사드 정권은 두 나라가 자국의 전쟁 때문에 지원을 줄이자 바로 무너졌다.

이날 HTS가 장악한 다마스쿠스에선 광장과 거리 곳곳에 많은 사람이 나와 노래를 부르고 하늘을 향해 축포를 쐈다. HTS 지도자 아부 모하메드 알줄라니는 다마스쿠스의 우마이야 대(大)모스크 단상에 올라 “오늘 승리로 정권이 교체될 뿐 아니라 아니라 억압받던 사람들이 자유와 존엄을 되찾게 됐다. 오늘 우리는 시리아의 정화(淨化)를 목격하고 있다”고 했다.

독재 정권이 물러났지만 시리아의 미래는 아직 불투명하다. 여러 종파의 반군이 여전히 서로를 적대하고 있다. 2011년 ‘아랍의 봄(중동 민주화 운동)’ 이후 새 시스템을 구축하지 못해 더 큰 혼란이 일어난 다른 중동 국가와 비슷한 상황에 빠져들지 모른다는 우려도 나온다. 알하산씨는 “지금으로서는 시리아의 미래에 대해 아무것도 알 수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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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양진경


자신을 작가라고 밝힌 알하산씨는 “수십 년간 시리아 국민은 (정부에 대한) 어떤 비판이나 불만도 입 밖에 낼 수 없었다. 우리에겐 자유란 존재하지 않았다”고 했다. 바샤르 알아사드는 아버지 하페즈 알아사드(1971~2000년 재임) 사망 후 대통령직을 세습했다. 2대에 걸친 ‘알아사드 독재’ 53년 동안 시리아는 언론·표현의 자유가 사라지고 정부가 국민을 향해 화학 무기 살포까지 불사하는 압제의 나라가 됐다.

알아사드는 정부에 비판적인 이들을 납치해 투옥시키고 수감자 수만명을 대상으로 고문과 성폭행, 집단 처형을 자행했다. 2022년 실종자가족협회가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2011년 시리아 내전 발발 이후부터 2018년까지 7년간 다마스쿠스 북부 세드나야 감옥에서만 3만명 이상이 처형되거나 고문과 굶주림으로 사망했다. 알하산씨의 형처럼 잡혀간 이유조차 모르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알하산씨는 “알아사드가 쫓겨났으니 형이 돌아오기를 기대하나”라고 묻자 회의적이라고 했다. “돌아오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2년 동안 생사를 모르니까요.”

알아사드 정권은 기자들을 표적 살해하기까지 하면서 자국 상황이 외부에 알려지는 것을 막았다. ‘암흑의 나라’가 된 시리아 국민들은 나라 밖으로 탈출해 유럽과 튀르키예의 난민이 돼 떠돌았다. 유엔난민기구에 따르면 현재 세계 각국에 등록된 시리아 난민은 지난달 기준 481만7000여 명에 달한다. ‘아랍의 봄’ 당시인 2011년 기준 인구의 5분의 1이 피란한 셈이다.

튀르키예 이스탄불에 사는 시리아 출신 압둘라만 알키미(27)씨도 그중 하나다. 알키미씨는 본지 전화 인터뷰에서 “반군이 다마스쿠스를 탈환했다는 소식을 듣고 이스탄불의 광장에 시리아인 수백명이 모여 축제를 벌였다”고 했다. 그는 두 살 때인 1999년 ‘아버지 알아사드’의 독재를 피해 사우디아라비아로 이주했고 이후 튀르키예에 정착했다. 시리아 난민이 100만명 이상 거주하는 독일 베를린을 포함한 런던·아테네·빈 등 유럽 주요 도시에서도 시리아 난민 수천명이 모여 혁명기를 흔들고 “자유 시리아” 구호를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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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한국에 유학 왔다가 시리아로 돌아가지 않고 한국에 귀화한 압둘 와합(40)씨는 9일 서울 중구 한 카페에서 본지와 만나 “긴 마라톤이 끝나고 긴장이 일시에 풀린 느낌”이라면서 “이렇게 복잡한 감정을 지금까지 느낀 적이 없다”고 했다. 8남매의 첫째인 그는 “남동생 둘이 난민 자격으로 노르웨이에 있고 부모님과 나머지 동생들은 튀르키예에 살고 있다”고 했다. “흩어진 가족들, 시리아에 있는 친구들과 전화나 소셜미디어로 연락하며 서로 축하하고 멀리서나마 같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시리아의 고향은 여전히 쿠르드족 반군이 장악하고 있어서 가족들이 다시 돌아갈 수 있을지는 아직 모르겠다”고 했다. 정부군과 HTS뿐 아니라 여러 무장 세력이 난립하고 있는 시리아의 현 상황을 보여준다.

시리아 난민 중 일부는 독재 정권의 몰락에 기뻐하면서도, 안정적인 차기 정부의 수립 가능성에 대해선 회의적인 입장을 드러냈다. 독재 정권이 반세기 이상 이어져 왔던 데다, 내전이 사실상 미국·러시아·이란·튀르키예 등 강대국들의 ‘대리전’으로 치러지면서 향후 자결권을 가진 독자 정부가 들어서긴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알키미씨는 “반군이 알아사드 정권으로부터 시리아인들을 해방시킨 것은 정말 기쁘지만, 그들에게 무언가를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솔직히 시리아나 레바논, 팔레스타인 같은 중동의 힘없는 나라들은 단 한 번도 우리 운명을 스스로 선택한 적이 없습니다. 슬프지만 시리아인들의 미래는 미국이나 다른 강대국의 결정에 달렸다고 생각합니다.”

와합씨도 “알아사드 정권의 붕괴는 첫걸음일 뿐”이라면서 “정권이 며칠 만에 갑자기 무너지는 바람에 준비가 안 된 상황”이라고 했다. “미국, 러시아, 이란, 튀르키예가 개입하고 있었고, 시리아 내부적으로도 여러 세력이 연합하고 있습니다. 그런 연합이 평화적으로 이어질지, 강대국들이 앞으로 어디까지 간섭할 것인지 걱정입니다.”

실제로 현재 반군이 승리를 선언하고 권력 이양을 준비하고 있지만, 반군 내에서도 노선이 다른 여러 조직이 존재하는 탓에 차기 정부 수립이 간단치만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13년 전 ‘아랍의 봄’으로 무아마르 카다피의 독재 정권이 붕괴했지만 다시 내전이 발발해 혼란에 빠진 리비아 사태가 재현될 것이라는 우려도 존재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알아사드 정권의 붕괴는 역사적 기회인 동시에 위험과 불확실성의 순간이기도 하다”고 했다. 미 정책연구소 애틀랜틱카운슬은 “시리아의 권력 공백은 중동 지역 불안정으로, 시리아가 패권을 둘러싼 지역 분쟁의 장이 될 위험이 있다”며 “(현 상황이) 적절히 관리되지 않을 경우 혼란이 가중되고 극단주의 단체에 힘이 실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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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아비브=김지원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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