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자가 2024년 11월 6일 미국 플로리다 팜비치 컨벤션센터에서 춤을 추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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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1월 미국의 47대 대선은 공화당 후보 도널드 트럼프 당선으로 귀결되었다. 트럼프 1기 정부에서 이미 확인한 바 있듯, 트럼프 2기 정부 역시 ‘미국 우선주의’에 입각한 대외 정책을 펼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지만 2기 정부의 대외 정책에는 몇 가지 변수가 추가된다. 1기와는 달리, 트럼프는 일단 두 개의 전쟁을 취임하자마자 마주하게 된다. 또한 지난 1기와는 질과 양적인 면에서 모두 급성장한 중국의 산업, 특히 반도체나 배터리, 전기차 같은 첨단 제조업의 강력한 확장세도 마주하게 된다. 이에 대해 트럼프 정부가 취할 주요 전략은 아직 확실하게 정해진 바 없으나, 결국 미국 우선주의에 입각한 정책은 주요 경쟁국에 대한 고율의 관세뿐만 아니라, 대미 흑자 폭이 큰 한국, 대만, 일본, 독일, 캐나다 등 주요 국가에게까지 타격을 줄 수 있는 세칙으로 발전할 수 있다. 이들 국가는 전통적인 미국의 우방국 혹은 동맹국의 위치에 있지만, 트럼프 정부 아래에서는 이러한 구분이 큰 의미가 없어지며 따라서 바이든 정부와는 차별화된 불확실성을 낳는다. 이러한 정책과 불확실성 속에서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는 주요 산업에는 반도체 산업이 있다.
현 바이든 정부의 기본적인 반도체 산업정책은 반도체 리쇼어링이다. 이는 바이든 정부에서 발의한 반도체법(이하 칩스법) 통과 후 본격적인 궤도에 올랐다. 칩스법에 따라 미 상무부가 집행하는 보조금 규모는 2026년까지 총 527억 달러에 달하는데, 대부분은 인텔, 글로벌 파운드리, 마이크론 같은 미국의 주요 반도체 제조 기업이나, 미 국립연구소, 미국 주요 반도체 관련 연구중심대학들, 그리고 새로 설립되는 기관인 미 국립반도체기술센터(NSTC) 등이 수혜한다. 실제로 인텔은 지난 2024년 3월, 직접 보조금 85억 달러, 저리 대출금 110억 달러 포함 200억 달러에 육박하는 칩스법 지원금 수혜 대상으로 결정되었다. 칩스법 보조금은 미국 반도체 제조업체 뿐만 아니라, 미국에 반도체 팹을 건설하는 외국 업체들도 수혜 대상이 된다. 삼성전자가 최대 47억4500만달러를, 대만 TSMC는 66억달러를 보조금으로 받기로 했다. 이는 각각 미국 애리조나 주에 건설 중인 TSMC의 3∼5 나노급 파운드리 팹(450억 달러 이상 투자), 그리고 텍사스 주에 건설 중인 삼성전자의 2∼3 나노급 파운드리 팹(280억 달러 이상 투자) 건설 매칭 펀드 형태로 지급 예정이다.
바이든 정부의 칩스법은 트럼프 2기 정부에서도 그 유효기간이 연장되거나 강화될 수 있다. 칩스법 연장은 미 상무부 장관 지나 러몬도가 언급한 제2의 칩스법 같은 형태가 될 수 있다. 이는 인텔 같은 미국의 주요 반도체 제조업체들이 현재 재무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데다가, 마이크론이나 글로벌 파운드리 같은 미국의 반도체 제조사들 역시 글로벌 경쟁력을 약화하는 상황을 고려할 때 더욱 가능성이 커진다. 즉, 5년 이내의 단발성 지원책은 미국 내에서의 반도체 제조 내재화라는 장기적 목표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트럼프 2기 정부에서 판단할 수 있고, 특히 첨단 무기용 반도체 등 국가 안보에 필수적인 시스템반도체 확보가 앞으로 더 중요해질 것이므로, 미국 업체들을 타깃으로 하는 칩스법 2가 시행될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미국산 시스템반도체 생산의 첨병 역할을 해준 인텔의 상황이 날로 악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인텔이 최근 몇 년간 출시한 11~15세대 중앙처리장치(CPU)들은 시장에서 지속적으로 저평가되고 외면받고 있으며, 재무 상황은 날로 악화 일로를 걷고 있다. 모바일 전환에 실패했을뿐더러, 엔비디아가 주도하는 AI 반도체용 GPU 시장에서도 2위 자리마저 AMD에 내어 준 지 오래 되었다. 이는 인텔의 로직 반도체 설계 경쟁력 자체보다는 미세 공정 기술력과 패키징 공정 등이 동반되는 양산 기술 경쟁력이 동시에 저하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나노 이하급 시스템반도체 제조 기술을 보유한 유일한 미국 업체는 인텔이기 때문에 트럼프 2기 정부의 반도체 지원 정책의 주요 이슈는 인텔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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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제2의 칩스법이 발표될 경우, 그 수혜 대상 1순위 역시 다시 인텔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인텔뿐만 아니다. AI 반도체에 특화된 DRAM 기반 고대역폭메모리반도체(HBM) 등의 메모리반도체 기술 로드맵 역시 10나노 이하급 첨단 선단 공정을 필요로 하며, 패키징 기술 개선도 요구된다. 따라서 미국 제1의 메모리반도체 제조사인 마이크론 역시 1기 칩스법은 물론, 제2의 칩스법 수혜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 더해 첨단 패키징 공정이 점차 중요해지는 인공지능 반도체 생산 기술을 지원하기 위해 미국의 주요 반도체 공정 장비 업체들과 전문 패키징 업체들도 집중적인 지원 대상이 될 수 있다. 제2의 칩스법이든 다른 방식이든, 트럼프 2기에서 추진될 첨단 산업 지원정책에 대해, 해외 반도체 업체들은 바이든 정부에 비해 상대적으로 지원 혜택이 축소되거나 심지어는 더 강화된 가드레일 조항 등으로 인해 더 많은 분담금 납부 요구, 이미 수혜된 지원금 반환 요구 등을 마주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현지에서의 고용 인력 규모 확대, 현지 업체들로 구성된 공급망 구성, 반도체 전문인력 양성 프로그램 확대 설치 등의 방향 등이 포함될 수 있다.
트럼프 2기의 반도체 산업 정책의 한 축이 자국의 반도체 산업 집중 지원과 해외 반도체 업체들에 대한 견제라면, 또 다른 한 축은 중국에 대한 견제 강화다. 이미 많이 보도된 것처럼, 트럼프 2기 정부는 중국산 반도체에 대해 고율의 관세를 부과함과 동시에, 핵심 기술이나 제품의 대중 수출을 더욱 강하게 통제하려 할 것이다. 여기에 더해 중국 배제 정책이 본격화될 수 있다. 미국의 원천 기술을 활용하는 해외 반도체 업체들에 대한 대중 반도체 수출 규제 품목 확대, 제3국을 통한 우회 무역에 대한 차단, 중국 반도체 인력의 미 반도체 업체 취업 제한, 중국 반도체 업체로의 미 반도체 인력 취업 제한, 중국 반도체 업체의 대미 투자 제한 같은 조치가 예상된다.
특히 트럼프 1기 내각에서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였던 로버트 라이트하이저가 다시 대외경제정책 담당으로 복귀하면서 반도체 산업을 전략 산업으로 상정, 고관세율 적용을 넘어, 이른바 전략적 디커플링 정책을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 중국에 대한 디커플링 정책 기조는 특히 중국에 반도체 팹이 있는 해외 메모리반도체 업체들에도 직접적인 타격을 줄 수 있다. 중국 현지 팹에서 생산된 제품이 중국산 반도체로 분류되어 미국으로의 수출이 제한되거나 고관세율 품목으로 지정되는 정책이 구성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중국 난징에서 파운드리 팹을 2곳 운영하는 대만의 TSMC, 중국 시안에서 낸드 플래시 메모리반도체 팹을 2곳 운영하는 한국의 삼성전자, 중국의 우시에서 디램 메모리반도체 팹을 2곳, 중국 다렌에서 낸드 플래시 팹을 1곳, 중국 상하이에서 패키징 팹을 1곳 운영하는 한국의 SK하이닉스 같은 반도체 제조사들이 직접적인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중국 현지에서 생산된 한국 메모리반도체의 대미 수출 관세율 상승 혹은 수출 규제, 중국 현지 한국 반도체 팹으로의 미국 반도체 공정 장비 수출 규제 혹은 다운그레이드, 중국 현지 한국 반도체 팹에 설치된 미국 반도체 공정 장비의 유지 보수 지원 제한, 중국 현지 한국 반도체 팹에서 일정 비율 이상 중국산 반도체 장비나 부품이 사용될 경우, 그것을 중국산 반도체로 규정하는 조항 명시 등이 이러한 견제책이 될 수 있다. 이는 장기적으로는 중국 현지의 한국 반도체 팹의 글로벌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이 된다.
트럼프 2기 정부는 기본적으로 고립주의를 추구할 것으로 보이는데, 이를 위해서는 미국이 현재 가장 필요로하는 AI반도체 같은 첨단 반도체 수급을 지나치게 해외 공급망에 의존하는 현 상황 타개가 선결되어야 한다. 즉, 해외 반도체 공급망 의존도 완화가 글로벌 반도체 정책의 골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 해외 제조 의존도가 매우 높은 AI 반도체를 국가안보 주요 항목으로 설정할 경우 대만과 한국에 대한 의존도 완화가 주요 과제로 언급될 수 있다.
대만의 파운드리 산업 대부분은 대만 현지에 팹을 건설하거나 운영하기 때문에, 점차 고조되는 양안의 긴장과 지진 같은 자연재해에 대한 취약점이 더욱 두드러진다. 이러한 불안 요소들은 미국으로 하여금 대만에 의존하는 현재의 첨단 반도체 제조 밸류 체인이 국가 안보 위해 요소라 판단할 근거가 될 수 있다. 특히 트럼프 2기 정부는 대만의 반도체 생산 업체들에 위험 분산 차원에서 미국 혹은 미국 동맹국으로의 팹 신설, 확장, 혹은 이전 등을 더욱 거세게 요구하는 정책을 취할 수 있다.
TSMC와 더불어 현재 3나노 이하급 초미세 공정 기반 파운드리 양산 팹을 운영하는 유이한 해외 반도체 제조업체인 삼성전자에 대해서도 트럼프 2기 정부에서는 맞춤형 가드레일 조항을 발동할 가능성이 있다. 이는 미국에 신설하는 파운드리 팹 투자 및 양산 규모 확대, 현지 팹 미국 고용 인력 창출 및 전문인력 양성 기반 확보, 미국산 공정 장비 도입 비중 확대, 미국 정부 주문량 쿼터 배정 하한선 유지 등의 다양한 방식으로 구현될 수 있다. 다만 TSMC를 타깃으로 하는 독과점 견제 조치가 그대로 삼성전자 파운드리에 대해 적용될 가능성은 낮다. 왜냐하면 TSMC를 견제할 수 있는 기술력과 양산 규모를 갖춘 글로벌 업체는 현재 삼성전자밖에 없기 때문이다.
최태원 SK 회장(오른쪽)과 박정호 SK하이닉스 대표이사 부회장이 15일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공사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SK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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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한국 반도체 업체들에 대해 독과점 규제 조치가 적용될 수 있는 분야는 메모리반도체, 그중에서도 DRAM이다. 특히 DRAM 기반으로 3차원 적층되어 제조되는 AI 특화 메모리반도체인 HBM의 경우, SK하이닉스가 5세대에서는 60% 이상, 6세대에서는 80%의 시장 점유율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AI 반도체를 핵심 안보 요소로 설정하는 미 정부 입장에서는 하이닉스 같은 해외 업체로 집중되는 HBM 생산 비중은 견제 대상이 될 수 있다. 하이닉스와 더불어, 5세대 HBM부터 시장 점유율을 늘릴 것으로 예상되는 삼성전자 역시 점유율이 확장될수록 그에 상응하는 견제 조치, 즉, 가드레일 조항 추가를 대비해야 한다. 이러한 견제책은 우선적으로 중국으로의 4세대 이상급의 HBM 수출 통제가 될 것이며, 다음으로는 미국 내에서의 HBM 생산 비중 확대 요구가 될 것이다. 메모리반도체는 점점 주문형 메모리반도체 특성이 강해지고 있으므로, 트럼프 2기 정부의 대중 반도체 제재 정책은 중국 메모리반도체에 대한 직접 규제로 이어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중국에서 생산된 메모리반도체 탑재 제품의 대미 수출 규제 혹은 관세 추가 부과 등의 조치도 이어질 수 있다.
트럼프 2기 정부에서 강화될 대외 반도체 정책은 미국의 팹리스 업체들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특히 현재 각국이 초미의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AI 반도체 팹리스 업체들이 타깃이 될 수 있다. 이미 바이든 정부에서 AI 반도체 선두 업체인 엔비디아가 생산하는 고성능 AI 서버용 GPU의 대중 수출을 규제하고 있지만, 엔비디아는 이를 우회하기 위해 성능을 낮춘 버전을 중국으로 수출한다. 트럼프 2기 정부에서는 이러한 우회 경로 역시 강력하게 규제할 수 있다. 이를 위해 트럼프 2기 정부에서는 엔비디아 같은 미국 팹리스 업체들로 하여금 외국 현지의 파운드리 업체를 이용하는 것보다, 미국 국내에 있는 인텔, TSMC의 애리조나 피닉스 팹, 삼성의 텍사스 테일러 팹 등을 이용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 이는 트럼프 2기 정부에 입각하는 대외 경제 정책 담당 장관들이나 국가안보보좌관의 기본적 성향이 중국에 대해 매파의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데다가, 미국 내에서의 첨단 반도체를 전략 안보 자산으로 규정하려는 미국 공화당 내 정책 입안자들의 영향력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2편에서 계속)
권석준 성균관대 교수(화학공학부, 반도체융합공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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