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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0 (월)

“잘 죽는 것이 잘 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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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박돈규 기자의 2사 만루]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20년… ‘죽음 공부’ 쓴 의사 박광우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고들 한다.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거북하고 불편하다. 그런데 말기 암과 파킨슨병을 주로 치료해 온 이 의사는 “고정관념을 깨야 한다”며 “잘 죽는 것이 잘 사는 것”이라고 말한다. 20여 년 동안 여명(餘命)을 선고하고 환자들 생의 마지막을 돌보면서 얻은 깨달음이다.

“웰빙이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잖아요. ‘잘 살아보자’는 욕망이자 화두였어요.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환자들의 마지막 순간을 목격해온 의사로서 저는 웰다잉(well-dying)이 웰빙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더 나아가 웰다잉은 웰빙과 다른 것이 아니에요. 죽음을 똑바로 볼수록 삶이 더 선명해집니다.”

가천대 길병원 신경외과 박광우(46) 교수가 펴낸 신간 ‘죽음 공부’는 “죽음에도 공부가 필요하다”는 문장으로 시작된다. 잘 죽는 것이 잘 사는 것이라고? 평소에 죽음을 더 자주 상상해야 한다고? 그가 관찰한 죽음의 다양한 장면들로 속을 채운 ‘죽음 공부’는 독자의 통념을 흔든다. 책장이 바삐 넘어간다. 어느 대목에서는 놀라고 어질하며 어느 대목에선 탄성이 나온다. 인터뷰 약속을 잡고 지난 10일 인천 가천대 의대 연구실 문을 쾅쾅 두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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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한국 사망자 통계에 따르면 77%는 병원에서, 16%는 집에서 생을 마무리했다. 사람을 살리는 병원은 아이러니하게도 사람이 가장 많이 죽음을 맞이하는 장소다. 박광우 교수는 "인간으로서 최소한 죽음의 과정은 선택할 수 있다고 믿는다"고 했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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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본 것

박광우 교수는 더블보드 의사다. 전문의 자격증을 두 개(신경외과와 방사선종양학과) 가졌다는 뜻이다. 그가 한창 전공의로 수련할 땐 암과 뇌혈관 질환이 국내 사망 원인 1~2위였다. 삶의 마지막 기로에 있는 환자들을 줄곧 만나왔다.

-더블보드 의사라는 명칭이 생소한데.

“전문의를 하나 따려면 수련 과정을 4년 거칩니다. 저처럼 두 분야에 4년씩, 총 8년을 투자하는 경우는 드물어요. 더블보드 의사는 전국에 1%밖에 안 될 거예요.”

-왜 그렇게 남다른 선택을 했습니까.

“신경외과 전문의가 된 다음에 뇌종양을 방사선으로 없앨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방사선종양학과에 가 보니 전혀 아니더라고요. 두 번의 전공의 시절은 힘들고 미래도 불확실했지만, 환자 보는 데 집중하고 배우는 걸 즐기는 성격이라 더블보드 의사가 될 수 있었습니다.”

-말기 암과 파킨슨병을 주로 본다면서요.

“말기 암환자가 되면 빅5 병원에서도 ‘동네병원이나 요양병원에 가라’고 해요. 암이 전신에 퍼져 더 이상 해줄 게 없는 환자보다는 새 환자를 받아야 하니까요. 그런데 말기 암환자 중에 퍼포먼스(일상생활을 할 수 있는 몸 상태)가 괜찮은 분이 꽤 있어요. 파킨슨병 또한 완치되는 게 아닙니다. 큰 병원이나 비싼 약에 매달리며 우왕좌왕하는 환자들에게 다른 접근법을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이를테면 어떤 접근법인가요.

“말기 암환자나 파킨슨병 환자는 증상을 완화하는 치료만 합니다. 저는 환자들에게 냉정한 팩트부터 말해요. 당신의 병은 낫지 않는다고. 아마 내일은 더 나빠질 거라고. 그러니까 기운이 있을 때 좋은 곳에 가고 좋은 추억을 만들라고.”

-의사라면 최선을 다해 환자를 살려야 하는 거 아닙니까?

“의사는 신이 아니에요. 지식과 경험이 있으니 어떻게 하는 게 낫다고 확률로 제안할 뿐입니다. 저는 의사 말만 믿고 병상에 누운 채 자기 인생을 내팽개치는 환자들이 너무 안타까워요. 끝을 알면 여명을 어떻게 사용할지 계획할 수 있습니다. 다양한 죽음을 목격하면서 ‘잘 죽는 법’에 대한 고민을 자연스럽게 하게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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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조선디자인랩 이연주


-죽음 가까이에 있는 환자들을 얼마나 만났나요.

“어림잡아 4000명쯤 될 거예요. 영화의 한 장면처럼 가족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떠나는 죽음은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얼마나 드문가요.

“대부분은 중환자실에서 의식이 없는 채로 인공호흡기에 의존하다 사망합니다. 작별 인사를 하는 경우는 1%도 안 돼요.”

책 첫머리에 등장하는 58세 췌장암 환자가 그런 사례다. 수술 후 항암치료를 받았는데 6개월 뒤 재발한 암이 복강 내 신경을 침범하며 극심한 통증을 일으켰다. 체력이 급격히 약해진 환자는 모든 치료를 거부했다. ‘이렇게 힘들게 사느니 빨리 끝내고 싶다’는 요청에 따라 보호자들과 상의 후 마약성 진통제만 투약했다.

-그 환자의 의식이 희미해져 갈 때 보호자들을 불러 모았다고요?

“10명이 넘는 가족 친지들이 그의 마지막 순간을 지켜보았습니다. 아들에게 ‘네가 고생이 많았다. 내 아들이어서 고맙고 자랑스러웠다. 어머니에게도 훌륭한 아들로 있어주려무나’라고 유언도 남겼어요. 찾아온 분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준 뒤 잠을 자듯 눈을 감았습니다.”

-그것이 바람직한 죽음인가요.

“(고개를 끄덕이며) 작별 인사를 할 수 있는 죽음이야말로 웰다잉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더 이상의 항암 치료를 거부한 환자의 결정, 그를 옆에서 돌봐주고 지지해준 보호자들, 무의미한 치료를 독려하지 않고 환자의 의견을 존중한 의료진이 합작한 웰다잉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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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공부'는 의사 박광우 가천대 길병원 교수가 진료를 마치고 환자들과 보호자들 곁에서 보고 느끼고 배운 것들을 복기하며 쓴 비망록이다. "그동안 죽음 가까이에 다다른 환자 약 4000명을 만나면서 '나는 어떻게 죽을까'를 고민하게 됐다"고 했다. /흐름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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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죽지만 그 모양은 제각각이다

‘9988234′. 노인들은 이런 숫자를 덕담처럼 주고받는다. ‘99세까지 88하게 살다가 2~3일 아프고 죽는다(死)’는 뜻이다. 잘 죽는 것도 복이다. 이 책은 진료를 마치고 환자와 보호자 곁에서 보고 느끼고 배운 것들을 복기하며 쓴 비망록이다.

-제목은 왜 ‘죽음 공부’로 달았습니까.

“인생의 끝에 죽음이 있는데 우리는 늘 삶에만 집중합니다. 자신은 절대 안 죽을 것처럼 살지요. 언젠가 죽는다는 걸 의식하면서 익숙한 풍경도 새롭게 보고 삶이 더 충만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지었어요.”

-죽음은 모두에게 공평하죠.

“그런데 죽음의 모양은 제각각이에요. 죽음을 눈앞에 두고 사람들은 허둥대며 시간을 보냅니다. 싸우고 한탄하고 두려워하고. 누구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누구는 검증된 치료가 아닌 미지의 희망에 매달리고, 누구는 온 힘을 다해 마지막 인사를 전하려 합니다. 다양한 죽음 중에 어떤 게 내 죽음일지 그려볼 수 있다면 평범한 오늘, 삶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질 거예요.”

-어떤 사례들을 책에 담으려 했나요.

“30~40개쯤 되는데 하나같이 저한테 강렬한 기억을 남긴 죽음들이에요.”

63세 신장암 환자는 한쪽 콩팥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고 5년 만에 암이 뇌로 전이돼 있었다. 이런 경우 예후는 좋지 못하다. “나는 몸이 좋아져서 금방 다시 일을 할 줄 알았어요. 정말 나빠진 게 맞나요?”라고 환자가 반문했다. 전이암 환자의 시간이 얼마나 빨리 흐를지 알지 못하는 그에게 박 교수는 답했다. “오늘이 최고의 날입니다. 더 좋은 내일은 없고요. 오늘 당장 나를 위한 것을 하셨으면 해요.”

-그 환자가 직장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소견서를 써주었다고요?

“평생 일만 해온 분이었거든요. 내일 당장 죽더라도 후회가 남지 않도록, 오늘은 일을 할 수 있게 도와드렸어요.”

-병원에서 가장 자주 하는 말이 뭡니까.

“전이암 환자와 그 보호자에겐 ‘제가 하는 치료는 작별 인사를 할 수 있도록 시간을 벌어드리는 것에 불과하다’고 입버릇처럼 말합니다. 완치 가능성이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해요.”

-같은 전이암 환자라 해도 치료 결과가 다를 수 있지 않나요?

“항암 치료를 받다 재발을 반복하며 전이암이 되는 환자와 처음부터 전이암으로 진단된 환자의 치료 반응은 다릅니다. 항암 치료를 처음 받는 환자의 치료 반응이 더 좋아요. 가장 큰 오판 중 하나는 전이암 진단을 받고 환자 스스로 치료를 일찍 포기해버리는 거예요. 암의 성장을 조절해 통증을 줄이지 않으면 여생을 잘 살 수 없고, ‘버킷 리스트’를 시도해볼 수조차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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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기준으로 연명의료계획서 10만4000건이 등록됐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도 157만건이 접수됐다. 인간다운 죽음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일 것이다. 박광우 교수는 “사회적 논의가 선행돼야 하지만, 안락사에 찬성한다”며 “스위스까지 가서 몇 천만 원 쓰고 죽기보다는 집에서 편안히 눈을 감고 싶다”고 했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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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 끌려다니지 마세요”

전이암이라 해도 생명의 불씨는 쉽게 꺼지지 않는다. 몇 년 더 고생해야 죽음에 이른다. 박 교수는 “조금 나아지게 하려고 많이 힘든 치료는 하지 않는 게 좋다”면서도 “환자의 퍼포먼스가 괜찮다면 약간 세게 치료해볼 수도 있다. 그 밸런스를 보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좀 더 설명해주신다면.

“환자를 치료할 때 질병으로 보는 의사가 있고 사람으로 보는 의사가 있는데 저는 후자입니다. 그가 받을 고통이 눈에 보여요. 그런 상황에서는 환자의 자기 결정권이 중요해요. 본인 몸이잖아요. 병을 극복하기 위한 방향키는 의사가 아니라 환자가 쥐고 있어야 해요.”

-하루라도 더 살리는 게 의사의 목표가 돼야 하지 않나요?

“의료 자원 측면에서 무조건 다 준다고 과연 좋은 치료일까요? 저는 회의적입니다. 아까 말씀드렸듯이 의사는 신이 아니에요. 저 말고도 다른 의사들에게 충분히 물어본 다음에 어떻게 할지 판단은 환자가 하는 거예요.”

-입장을 바꿔 교수님이 환자라면 어떤 의사를 만나고 싶은가요.

“저 같은 의사요(웃음). 어디가 아파서 왔는데 진단명은 무엇이고 무슨 치료를 받을 것이며 앞으로 어떻게 될지 의사가 알려줘야죠. 딱 그 세 가지예요.”

-그렇게 설명하면 환자들은 뭐라고 하나요.

“좋아하는 분들은 명쾌하다고 해요. 싫어하는 분들은 의사가 ‘싸가지’가 없다고 하고요, 하하. 저는 의사는 의사 역할을 하고 환자는 환자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알아서 좋은 약으로 해 주세요‘라고 말하는 환자가 제일 답답해요.”

-만약 교수님이 전이암 환자가 돼서 완화 치료만 가능하다면 어떤 말을 듣고 싶습니까.

“객관적인 정보죠. 내가 어떤 치료를 받고 비용은 얼마나 들고 생존 확률은 얼마고 부작용은 어떤 게 있는지 최종적으로 듣고 싶어요. 여명을 어떻게 보낼지 선택할 수 있도록요. 그래서 저는 말수가 많은 환자를 좋아합니다. 30~40분 걸리더라도 설명해드릴 때 보람을 느껴요. 대학병원은 손해겠지만 제가 있는 이유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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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 충남 천안시 대한웰다잉협회에서 참가자들이 수의를 입고 관 속에 들어가는 체험을 하고 있다. 사회가 고령화되면서 '어떻게 하면 잘 죽는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 조인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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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킨슨병이나 치매 같은 퇴행성 질환이라면.

“상태가 점점 나빠질 거라고 말씀드려요. 오늘이 제일 좋은 날이니까 내일을 바라보지 마시라고. 제 이야기는 병원에 끌려다니지 말고, 멈춘 채 생각해보라는 뜻입니다.”

-책에 ‘가생비(가격 대비 생명)’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의사들이 흔히 쓰는 표현은 아닙니다. 거부감이 들 수도 있는데 제가 넣자고 했어요. 치료되지 않을 게 뻔한 병에 왜 돈을 다 쓰고 빚까지 집니까? 남은 사람은 살아야 하잖아요. 매우 비싼 면역 치료제를 의료보험으로 커버해주는 것은 옳은 일일까요? 고정된 의료자원을 얼마나 잘 분배할 것인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돈은 다시 벌 수 있지만 생명은 하나뿐이라고 반문한다면?

“그 생명이라는 게 진짜 ‘숨만 붙어 있는 생명’인지 아니면 다시 건강해질 수 있는 생명인지 또 봐야죠. 사람마다 살아온 가치관, 보호자와의 관계 등에 따라 달라져요. ‘내일은 나아지겠지’ 막연하게 희망하며 오늘을 희생하지 맙시다.”

-의식 없이 인공호흡기 등에 의존해 연명하는 환자의 경우, 보호자는 대체로 3개월쯤 지나면 지친다고요?

“한 달 만에 지치기도 해요. 빠르냐 느리냐도 환자와 보호자의 관계가 크게 좌우하고요. 결과적으로 지치는 건 매한가집니다. 보호자에겐 ‘마라톤을 뛴다는 생각으로 호흡을 길게 가져가라’고 말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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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수술실에서 박광우 교수. "죽음은 생과 완전히 다른 얼굴을 하고 찾아옵니다. 몸은 서서히 망가지고 마음은 무너져 가요. 통증이라는 이름으로 죽음의 공포가 찾아올 때 감정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죽음의 팩트'를 알아야 합니다." /가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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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라는 ‘내비게이션’을 활용하라

그 마라톤은 지금 얼마나 왔나, 결승점은 언제 나오나를 생각할수록 더 힘들다. “완화 치료만 받는 환자라면 결승점은 완치가 아니라 죽음을 의미해요. 좋은 기억을 많이 남겨야 합니다. 망자가 되면 남는 건 기억밖에 없어요.”

-잘 간병할 것이 아니라 잘 헤어질 것을 조언하는 의사로군요.

“요즘은 제가 만나는 환자의 70%가 파킨슨병이에요. 진단이 점점 더 늘어나는 추세예요. 말기 암환자에게는 통증을 줄이는 시술을 해드려요. 전국에서 찾아옵니다.”

-말년에 휠체어를 타게 된 환자는 ‘좋은 곳에 가자’ ‘누굴 만나자’ 해도 거부하는데.

“저는 이렇게 반문합니다. ‘어머니, 여기 오실 때 휠체어 탄 분 몇이나 보셨어요?’ 그럼 기억 못 하죠. ‘아무도 우리 어머니한테 관심 안 가지니 걱정 마세요’라고 말씀드려요.”

-폐렴에 의한 호흡부전이나 욕창으로 인해 패혈증이 와서 심정지로 갑자기 사망하기도 하는데.

“많이 봤어요. 그래서 살아 있을 때 잘해야 해요. 전국 1102개 장례식장 중 병원 장례식장이 637개(2022년 기준)예요. 사람을 살리는 병원에 장례식장이 있는 것도 이상하죠. 망자는 보지도 못할 장례식을 왜 크고 화려하게 합니까. 저는 죽기 전에 저를 아는 사람들을 불러 ‘생전 장례식’을 하고 싶어요. 연명치료거부서약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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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의 존엄사 허용 판결로 김 할머니의 인공호흡기를 제거한 서울 연세대의료원 박창일(가운데) 원장과 주치의 박무석(오른쪽) 교수 등이 2009년 6월 24일 기자실에서 환자 상태를 브리핑하고 있다. /전기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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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세브란스 병원 ‘김 할머니 사건’을 계기로 존엄사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지요. 그런데 연명치료거부서약을 해도 보호자들이 반대할 수 있잖아요?

“아직 떠나보낼 준비가 부족해 실현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보호자들의 그 마음도 존중해야죠. 작별 인사를 충분히 할 수 있도록 환자를 자꾸 보여드리는 수밖에요. 보호자가 미안함이나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저는 ‘책임을 의사한테, 저한테 돌리세요’라고 해요.”

-안락사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요.

“사람은 죽을 자리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봐요. 사회적 논의가 선행돼야 하지만 저는 사실 적극적 안락사에 찬성합니다. 죽고 싶어 스위스까지 가서 몇 천 만원을 쓰고 죽기보다는 집에서 익숙한 얼굴들 보며 작별 인사하고 눈을 감는 게 낫지 않을까요?”

-잘 죽는 법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죽음을 가까이하다 보니 ‘저 햇살을 내일 다시 만끽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그럴 때면 일상이 생경해 보여요. 매일 새로운 하루하루를 지내는 것이 제겐 잘 사는 법이자 잘 죽는 법이에요.”

-연간 25만명이 암 진단을 받습니다. 이 책이 어떤 도움이 되길 바라나요.

“의식적으로 다양한 환자의 투병과 마지막 풍경을 담았습니다. 위로나 자기기만으로 현실을 부정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썼어요. 상황을 직시해야 다음 계획을 세울 수 있습니다. 의사를 내비게이션으로 활용하세요.”

-내비게이션이요?

“암 치료를 마라톤으로 보았을 때, 환자는 완치라는 결승점을 통과할 수도 있고, 재발과 전이라는 진흙탕 속을 헤맬 수도 있어요. 결승점에 닿기 위해서는 목표를 명확하고 지속적으로 제시하는 내비게이션이 필요합니다. 그런 존재가 바로 의사예요. 단, 의사에게 의존하면 안 되고요.”

-삶의 시작을 선택할 수 없듯이 죽음의 순간도 선택하기 어려운데.

“그러니 매일매일 죽음을 기다리는 삶보다는 오늘 하루 최선을 다해 살고 내일은 뭘 할지 기대하는 삶이 훨씬 행복하지요.”

그때 그가 호출 전화를 받았다. “급한 수술이 있다”며 달려나갔다.

라틴어 ‘메멘토 모리’는 낭랑한 발음 속에 ‘(당신도) 죽을 운명이라는 것을 기억하라’는 진리를 담고 있다. 사람들을 절망에 빠뜨리려는 게 아니다. 삶에서 진정한 우선순위에 집중하라는 뜻이다. 결국 죽는다고 생각하면 근심은 대부분 무의미하다. 그래서 우리는 좀 더 용감해질 수 있다. 감정에 대해서, 진짜 바라는 것에 대해서.

[박돈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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