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이철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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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비아 허시는 열일곱 나이에 이미 세계적 유명 배우였다. 스물한 살에 첫 결혼을 했는데, 한 TV 방송에서 진행자가 물었다. “당신 같은 완벽한 여성을 얻은 남자의 비결이 뭡니까?” 허시는 갑자기 손바닥으로 진행자의 눈을 가린 뒤 자신의 눈동자가 무슨 색인지 물었다. 진행자가 대답을 못 했다. 허시가 말했다. “제 눈은 초록색이에요. 모든 남자가 제 가슴만을 볼 때 그 사람이 유일하게 ‘초록색’ 대답을 했답니다.”
▶확인도 안 된 일화였지만 젊은이들이 열광했다. 돈, 명성, 육체적 매력 따위보다 상대를 향한 깊은 배려와 관심으로 짝을 찾아야 한다는 울림이 컸다. 사실 이 대답엔 연유가 있었다.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이 대성공을 거뒀던 1968년은 여배우 성희롱이 예사롭던 때였다. 살색 옷을 입힌다 해놓고 현장에서는 완전 누드를 강요했고, 툭하면 허시를 ‘왕가슴녀’라고 불렀다. 다이어트 약도 강제로 먹이려 했다. 현실의 허시는 진실한 사랑을 목말라 했던 것 같다.
▶어릴 때 벼락 출세는 때로 불운이 되어 앞길을 막는다. 허시는 트라우마가 겹치고 ‘줄리엣’ 이미지가 강렬했던 나머지 차기작을 정하지 못하고 방황했다. 존 웨인, 리처드 버턴 같은 당대의 전설들과 함께하는 영화 제안까지 걷어찼다. 높은 인기에 감사하기보다 반항했다. 짧은 치마에 술에 취한 채 춤을 추며 어른을 조롱했다. 영국 부모들은 ‘비행 청소년의 우상’처럼 흉내 낼까 자식을 단속했다.
▶허시는 나중에 정신을 차리고 명작들을 여럿 남겼다. ‘블랙 크리스마스’ ‘나사렛 예수’ ‘마더 테레사’ 같은 작품은 ‘줄리엣’ 못잖은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허시는 파란만장한 일생을 운명처럼 ‘줄리엣’으로 살았다. 세월의 흔적은 있었지만 아름다운 자태는 여전했다. 허시의 오똑한 코와 짙은 머리색은 동서양의 아름다움을 겸비했다고 했다. 이마, 눈·코, 입·턱으로 이어지는 얼굴 구성이 절묘하게 1대1의 균형미를 갖췄다고도 했다.
▶엊그제 유방암 후유증으로 세상 뜬 허시는 한국에도 가슴 뛰는 올드 팬이 많다. 어떤 작가는 ‘70년대 남자 고교생 자취방에 가장 환영받은 사진은 허시였다’고 했다. 얼굴 사진을 코팅해서 ‘책받침 여신’으로 떠받들었고, 입대 후엔 철모 파이버에 사진을 넣어 다녔다. 팬들은 ‘한 시대가 저문다’ ‘익숙한 얼굴이 하나씩 사라지니 서운하다’고 했다. 연말에 들려오는 옛 여배우의 사망 소식은 독일 작가 안톤 슈낙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의 목록 같다.
[김광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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