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영 작가가 올해 만든 설치 작품 ‘두개의 의자’. 노형석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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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들에겐 평생 거쳐갈 통과의례 또한 작업 대상이 된다. 가장 민감한 화두는 가족·지인과의 영원한 이별, 바로 죽음이다. 여기 불탄 의자와 재로 깔린 길과 보랏빛으로 수놓은 수의 천 조각을 통해 죽음과 이별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가가 있다. 수년 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뒤켠 언덕배기에 따듯한 체온이 느껴지는 온열의자를 놓았던 설치 작가 김승영(61)씨다.
지난달부터 서울 평창동 김종영미술관에 차린 김 작가의 16회 김종영미술상 수상 기념전 또한 의자를 화두로 스산한 2024년과 작별하는 지금 시점에서 존재와 시간에 대한 감각을 떠올리게 한다. 2021년 어머니가 노환으로 이승을 떠난 뒤 사멸한 타자와 작별하는 과정을 기록하듯 남긴 또 다른 의자 설치 작품이 눈길을 동하게 한다. 어둠이 내려앉은 채 출입구로만 빛이 스며드는 전시장에 어머니 유품을 태운 재와 지인들이 모아준 나뭇재를 섞어 10여m의 길을 냈다. 그 길 끝 저편에 불탄 나무 의자 두개가 덩그러니 있다. 왼쪽은 어머니, 오른쪽은 아버지를 생각하며 만든 의자라고 한다. ‘두개의 의자’란 이름이 붙은 작품은 어머니와 아버지가 스스로 걸어왔던 길을 살펴보시라는 뜻을 담았다고 한다.
오랫동안 포장마차를 운영하면서 가족의 삶을 지탱했던 어머니에 대한 마음을 작가는 유품을 태운 재를 빻고 빻아 곱게 만들고 체로 걸러내는 작업 과정을 담은 동영상과 생전 아버지와 함께 북한산 산책길을 걸어가던 어머니의 마지막 뒷모습 동영상을 함께 보여주면서 현대미술 어법으로 사모곡을 불러낸다.
김승영 작가가 세상을 떠난 어머니의 숨결을 떠올리며 수의 천에 수놓은 작품인 ‘보라’. 생전 어머니가 가장 좋아했던 색깔인 보라색의 실로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의 심장박동 그래프 모양을 직접 수로 옮겼다. 노형석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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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고갱이는 두개의 의자 옆 벽에 내걸린 자수 작품이다. 세상을 떠난 어머니의 숨결을 떠올리며 생전 준비했던 수의 천 조각에 직접 보라색 실을 수놓은 ‘보라’다. 어머니가 가장 좋아했던 색깔인 보라색 실로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 병상 기기에 나타난 심장박동 그래프의 궤적을 일일이 옮겼다.
작가는 말한다. “모친의 별세 뒤로 올해 초까지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려 집 밖으로 나가지 못했고 발이 공중에 떠있는 느낌이었어요. 어느날 임종 직전 병상에서 보고 사진으로 찍어뒀던 심박 그래프를 우연히 떠올리곤 매달리듯이 한땀한땀 보랏빛 실로 재현을 하기 시작했어요. 시간이 많이 걸렸지만 모친과 제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제 몸을 움직이면서 실감할 수 있었어요. 뿌듯해지면서 이젠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작품 덕분에 이 전시도 할 수 있게 된 겁니다.” 1월5일까지.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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