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항공 참사 유가족들이 31일 오후 전남 무안군 무안국제공항 1층에 마련된 합동분향소에서 희생자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내 새끼 놔두고 어떻게 가!”
179명이 사망한 제주항공 참사가 일어난 지 사흘째이자 2024년의 마지막 날인 31일 저녁. 전남 무안군 무안국제공항이 한순간에 통곡으로 가득 찼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이들은 사흘간 꾸역꾸역 참아 온 울음을 토해냈다. 국토교통부와 전라남도 등은 애초 공항에서 10킬로미터 가량 떨어진 무안종합스포츠센터에 합동분향소를 마련했다. 유가족들의 강력한 요구에 따라 이날 공항 1층에 합동분향소를 추가 조성했다.
오후 7시, 분향소를 가리고 있던 흰 장막이 내려가자 명단 속 이름으로만 존재하던 179명의 얼굴과 위패가 모습을 드러냈다. 가족들이 사진 노출을 꺼린 몇몇 희생자는 영정사진 없이 위패만 놓였다. 검은 옷을 갖춰 입은 유가족도 있었지만, 절반 가량은 슬리퍼 등을 구겨 신은 채 떠난 이들을 향해 첫 작별 인사를 건넸다. 거의 모든 유가족이 마스크로 얼굴을 가렸다.
제주항공 참사 유가족들이 31일 오후 전남 무안군 무안국제공항 1층에 마련된 합동분향소에서 희생자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유가족협의회 대표단 8명이 가장 먼저 분향소에 들어섰다. 지난 3일 동안 어떻게든 정신을 붙잡고 정부 당국, 제주항공 등과 소통하며 시신 수습, 장례 절차 등을 논의해 온 박한신 대표의 눈시울이 불거졌다. 이어 정부 기관 관계자 등이 침묵 속에 분향했다. 조용히 이 모습을 지켜보던 유가족들이 뒤이어 가구별로 삼삼오오 짝지어 분향을 시작했다. 장내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한 70대 할머니가 털이 달린 보라색 고무신을 신은 두 발을 동동 구르며 아들의 이름을 불렀다. “어떡해, 어떡해, 좋은 데로 가소…이제 마지막이야.” 가족들의 부축을 받으며 분향소를 빠져나가던 할머니는 이내 낮은 목소리로 곡을 하기 시작했다. “아들아, 엄마 같이 가, 아들아, 아들아!” 연신 뒤를 돌아보다 다시 아들에게 달려간 할머니가 “어떻게 가, 내 새끼 놔두고 나 못 가!” 소리치며 까무러치자, 조용히 줄을 서 차례를 기다리던 유가족들이 함께 울음을 터뜨렸다.
눈물은 전염되듯 퍼져나갔다. 뒤이어 분향소에 입장한 중년 여성이 나란히 놓인 다섯 개의 영정사진 앞에서 오열했다. 10살이 채 안 돼 보이는 어린아이 얼굴이 한가운데 놓였다. 여성은 “언니야, 언니야, 우리 애기는 어떡해, 이렇게 다 가면 어떡하냐고” 소리쳤다. 한참을 빠져나가지 못하던 여성은 “세상에, 니가 왜 거기 가 있어, 말 도 안돼, 아악” 하며 오열했다. 한 순간에 가족들의 손길을 뿌리치고 영정사진이 놓인 탁자 위로 몸을 던졌다. 두 손으로 탁자를 내리치며 “살려내, 살려내!” 하는 소리에 분향 순서를 기다리던 유가족과 시민, 취재진 할 것 없이 모두가 흐느꼈다.
제주항공 참사 유가족들이 31일 오후 전남 무안군 무안국제공항 1층에 마련된 합동분향소 앞에서 분향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믿기 어려운 현실 앞에 유가족들은 서로의 손과 어깨를 꽉 붙들어 잡았다. 허탈한듯 탁자에 몸을 기댄 채 고개를 푹 숙이던 중년 남성은, “아들아, 아들아” 하며 발을 동동 구르며 어쩔 줄 몰라 하는 아내 손을 꼭 붙잡고 분향소를 빠져나갔다. 한참을 주저앉아 일어나지 못하던 한 중년 여성이 끝내 절을 하듯 납작 업드리자, 일가족 대여섯이 등을 토닥거리기도 했다.
이날까지 사망자 179명 가운데 5명을 제외한 174명의 신원이 지문 및 유전자(DNA) 감식으로 확인됐다. 이 가운데 28명의 주검만이 유가족에게 인도가 가능한 수준으로 수습됐고, 10구의 주검이 장례 절차 등을 위해 가족 품에 돌아갔다. 경찰은 신원을 확인하지 못한 5명에 대한 정밀 검사를 최대한 빠르게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정인선 기자 ren@hani.co.kr
▶▶한겨레는 함께 민주주의를 지키겠습니다 [한겨레후원]
▶▶실시간 뉴스, ‘한겨레 텔레그램 뉴스봇’과 함께!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