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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7 (화)

[강천석 칼럼] 한국 보수, ‘이재명黨’ 따라 하기는 毒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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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純種 보수’에서 벗어나 ‘混血 보수’로 바꾸는 ‘동맹 전략’ 세워야

지푸라기라도 붙드는 건 생존의 안간힘이지 보수 부활의 길 못 돼

CNN·BBC·NHK 등 세계 주요 뉴스 채널은 3일 서울 한남동 대통령 관저에서 5시간 30분 동안 벌어진 현직 대통령 체포 작전을 실시간으로 중계 방송했다. 공수처가 오후 1시 30분 체포 영장 집행을 중지하자 ‘끝까지 싸우겠다(fight in the end)’는 윤석열 대통령이 관저 밖 지지자들에게 보낸 편지글 내용을 자막(字幕)으로 내보냈다. 공수처 철수 소식이 전해진 순간 지지 군중들은 ‘우리가 이겼다’고 환호했다. 전 세계 시청자 수억 명이 우리와 함께 이 장면을 지켜봤다.

본능 가운데 가장 강한 본능이 생존 본능이다. 개인도 회사도 정당도 국가도 밑바닥엔 생존 본능이 깔려 있다. 똑같이 생존 본능을 동력(動力)으로 삼고 발버둥 치지만 누구는 살아남고 누구는 도태돼 사라진다. 올바른 방향 감각에 인도된 본능만이 생존을 보장한다.

서양 세력이 밀려든 19세기 말 서세동점(西勢東漸)의 시대 유일한 생존 국가가 일본이었다. 일본 성공의 받침대 하나가 동맹 전략이었다. 러시아 세력의 남하(南下)를 걱정하던 영국을 파트너로 삼아 1902년 영·일 동맹을 체결했다. 1904년 러일 전쟁이 터지자 영국은 러시아 주력 함대인 발트 함대의 수에즈 운하 통과를 금지했고, 그 바람에 멀고 긴 아프리카 항로를 돌아온 발트 함대는 대한해협에서 일본 해군에 참패했다. 일본의 성공 신화는 동맹 파트너를 독일로 바꿔 타면서 갑작스럽게 막을 내렸다. 한국 정치 지형은 순종(純種) 보수 정당은 혼자 힘으로 승리하긴 어렵게 바뀌었다. 어떤 사회 세력, 어떤 계층과 손을 잡을 것인지 동맹의 전략을 생각해야 한다.

수천km 날아가야 하는 철새의 이동 방향을 결정하는 우두머리 새의 오판(誤判)은 떼죽음으로 직결된다. 19세기 말 경제 군사 면에서 유럽 최강국으로 떠오른 독일의 침몰은 비스마르크 총리의 퇴진과 함께 급작스럽게 찾아왔다. 보수적 신념으로 뭉쳐진 비스마르크는 노동자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의료보험·질병보험·양로보험 등 복지 제도를 정비하는 유연성을 보였고 해양 제국 영국을 자극하지 않도록 해군력 강화를 절제하고 교묘한 동맹 전략으로 전쟁에 휘말리지 않으면서 평화를 통한 국력(國力) 확대에 성공했다. 그러나 경험 없는 젊은 황제 빌헬름 2세는 비스마르크를 제거하고 그와 정반대의 길을 걸어 독일을 1차 세계대전 속으로 밀어 넣었다. 한국 보수 정당은 선거 때마다 허명(虛名)에 휘둘려 정치를 모르는 외부 인사를 불러다 주장(主將)으로 내세우는 ‘데릴사위 전략’을 벗어나야 한다.

기득권에 대한 집착은 길게 보면 쇠퇴로 이어진다. 칭기즈칸은 장군들의 두 가지 행동은 목을 자르는 참수형(斬首刑)에 처했다고 한다. 하나는 전리품을 부당하게 배분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주둔지에 성을 쌓는 것이다. 경계에 게을러지고 주민과 단절된다는 이유에서다. 검사(檢事)로 성을 쌓고 어떻게 민심을 정확히 읽겠는가.

정당의 흥망사(興亡史)에 성 쌓기의 결과가 여실히 나타난다. 투표권 연령을 낮추면 보수 정당에 불리할 듯싶다. 이런 고정관념과 달리 투표권 연령을 낮춰 젊은 유권자 확보에 도전한 보수 정당만이 생명을 유지했다. 젊은 유권자를 확보하려면 정당이 젊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디즈레일리가 이끌던 19세기 후반 영국 보수당 역사가 그렇다. 미국 공화당은 1960년대까지만 해도 미국 남부를 아예 민주당 텃밭으로 인정하고 도전을 포기했던 전략을 접고 남부를 탈환하기 위한 전략에 집중하면서 부활의 발판을 마련했다.

국민의힘 지역구 의석 90석 가운데 69석이 영남 의원들이다. 수도권 121석 중 국민의 힘은 고작 19석이다. 강남에서 잃을 각오, 영남에서 조금 손해 볼 결심, 때론 70~80대의 비위에 거슬리는 변신도 저지를 수 있어야 한다.

제주항공 조종사들은 급박한 시간 속에서도 마지막 순간까지 사력(死力)을 다한 것으로 보인다. 계엄과 탄핵의 골짜기에 낀 보수의 처지가 급박해도 그만은 하겠는가. 지푸라기라도 붙드는 것은 물에 빠진 사람의 안간힘이지 부활의 전략은 못 된다. 이재명 대표가 몇 가지 혐의, 몇 가지 사건, 몇 개의 재판을 받고 있는지 언론마다 내용이 다르다. 아무리 급해도 ‘이재명 당’ 따라 하기는 독약(毒藥)과 같다. 작게 뭉치는 순종 보수가 아니라 크게 뭉치는 혼혈(混血) 보수로 가야 한다.

윈스턴 처칠은 ‘갤럽 여론조사로 전쟁 전략을 선택하면 백전백패(百戰百敗)’라는 명언을 남겼다. 그 결과 2차 대전에서 승리했지만 정권은 노동당에 넘겨야 했다. 여론에 좌우돼선 안 되지만 민심을 읽을 줄은 알아야 한다. ‘우리가 이겼다’는 한남동의 함성에 끌려가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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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천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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