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장으로 치닫는 한국 정치
글로벌 뉴스채널 세계 웃음거리
하지만 교포들은 웃을 수 없어
통치자의 無言과 야당의 무절제
무성찰이 낳은 정치적 비극
역사적 반성 없이 제도 고쳐봐야
망국적 정치 문화 벗어날 수 없어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 집행에 나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수사관들이 지난 3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입구에서 경호처와 대치중이다. /김지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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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란죄 우두머리’로 지목당한 대통령의 관저 앞에서 공수처와 경호처가 5시간 넘게 대치하는 장면은 세계사에 보기 드문 촌극이었다. 국가원수의 신병을 놓고 서로 다른 두 정부 조직이 각자 다른 법을 들이대며 다른 공권력을 동원해 부딪쳤으니 실로 국법까지 쪼개진 형국이었다.
기괴하면서도 흥미진진한 그 순간을 글로벌 뉴스 채널이 놓칠 리 없었다. 관저 앞에 운집한 시위대를 등지고서 한 리포터는 “중요한 민주국가 한국”의 무법적 혼란상을 묘사했고, 다른 리포터는 좌우로 분열된 시위 군중을 비추며 내전(civil war) 분위기라 언급했다. 그런 뉴스를 본 영국 출신 동료 교수가 물었다. “어쩌다 코리아가 베네수엘라, 멕시코, 콩고처럼 위험한 민주주의로 전락했는가?”
구약 성서 ‘에스겔서’ 33장의 섬뜩한 경고가 떠오른다. 칼날을 보면서도 나팔을 불지 않는 파수꾼이 있다면 백성의 피를 뿌린 죄악을 그에게 묻겠노라는 대목 말이다. 방외인의 용훼(容喙)라 조롱받겠지만, 밖에서 보는 나라 풍경이 살벌하기에 파수꾼의 나팔을 불지 않을 수 없다.
어떤 이는 법제를 개혁하고 시스템을 정비해야 정부가 바로 선다고 말한다. 어떤 이는 무능한 권력을 유능한 권력으로 교체해야 나라가 산다고 말한다. 다 맞는 말이지만, 제도가 바뀌고 인물이 교체돼도 정치 문화가 그대로라면 향상도, 진화도 기대할 수 없다. 어느 시대나 인간은 문화의 포로가 되어 세상을 살아간다. 외국에 오래 살며 이국 문화에 익숙해지면 사고방식과 행동 유형이 바뀐다. 급속한 사회 변화가 일어나도 신문화에 적응 못 하면 구습과 구태를 못 벗어난다. 한국 정치를 망치는 문화적 요인이 있다면 무엇일까? 무언(無言), 무절제(無節制), 무성찰(無省察)이 아닐까.
한국 통치자들은 지독하게 말이 적다. 과묵한 정도가 아니라 아예 침묵을 정치적 무기로 삼는다. 가물에 콩 나듯 열리는 기자회견, 대국민 담화, 시정연설인데도 메시지는 모호하고, 디테일은 태부족이다. 독재 정권 아래서 사지선다형 문제만 풀며 자랐기 때문일까? 표현력도, 설득력도, 감화력도 부족하다. 오바마 케어를 도입할 때 오바마 대통령은 수십 명 기자 앞에 서서 쏟아지는 모든 질문을 맞받아치며 일대다의 토론을 여러 차례 벌였다. 팬데믹 발발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40일 넘도록 거의 매일 한두 시간에 걸쳐서 관련 상황을 직접 브리핑했다. 말로써 대중을 설득하고, 말로써 권력을 쟁탈할 수 있다면 군을 부리는 계엄령 따위는 고려할 필요조차 없다. 12·3 비상계엄령 소극이 무언의 정치 문화가 빚은 국가적 비극이었다면 과언일까?
한국 정치엔 절제의 문화가 모자란다. 절제란 욕망을 통제하여 적정선에서 멈출 수 있는 능력을 이른다. 생명체나 조직이나 무절제는 죽음의 길이다. 현 정권 2년 반 동안 거의 서른 번이나 탄핵소추안을 남발한 거야의 행태는 정치적 무절제의 극치다. 해마다 96억원 책정되던 대통령 특활비를 정권 바뀌니 제로로 삭감한 행위는 어떤가. 관용도, 예우도 없이 상대방을 벼랑 끝까지 몰고 가는 아수라장 싸움은 치졸하고도 잔인하다. 정치인들이 죽고 죽이는 공멸의 싸움에 빠져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 된다.
한국 정치엔 시행착오를 돌아보는 차분한 성찰의 문화도 없다. 전 세계 대통령제 국가에서 한국처럼 불과 8년 만에 징검다리 탄핵 정국을 펼친 사례는 없다. 2020년과 2021년 연거푸 두 명의 대통령을 탄핵한 페루를 제외하면. 정치학자들은 상투적으로 제왕적 대통령제라 비판하며 내각제를 띄우지만, 특활비도 다 깎이고 탄핵당하는 제왕도 있는가? 내각제로 바꿔본들 이상 정치가 펼쳐지겠는가? 역사적 반성도 없이 제도만 뜯어고쳐 봐야 망국적 정치 문화를 벗어날 수 없다.
무언, 무절제, 무성찰이 나라를 망치는 참 나쁜 정치 문화라면 나라를 살릴 정치인은 어떤 인물일까? 정확한 언어로 성실하게 소통하고, 양극단과 불합리를 슬기롭게 비켜 가며, 과거사 전철을 되밟지 않고, 지혜와 비전으로 국민을 이끄는 신중하고 현명한 리더랄 수밖에 없다. 최첨단 산업국으로 급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정치 문화는 그 정도 지도자를 길러내지 못했다. 매번 막장으로 치닫는 한국 정치는 미국, 중국, 프랑스 등 전 세계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고 말았다. 한국서 나고 자랐기에 나는 그들과 함께 웃을 수 없다. 오직 파수꾼의 심정으로 내 나라를 향해 나팔을 불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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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재윤 캐나다 맥매스터대 교수·역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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