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합의체에서 기존 법리 재확인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권영준 대법관)는 이날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강간등치상)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A씨와 B씨에게 각각 징역 5년과 징역 6년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전원합의체는 소부 소속 대법관 사이에 합의가 안 되거나 대법원 판례를 변경할 필요가 있는 경우 등에 열린다.
조희대 대법원장 등 대법관 10명은 다수 의견으로 “특수강간의 죄를 범한 경우뿐만 아니라 특수강간의 실행에 착수했으나 미수에 그친 경우에도, 이로 인해 피해자가 상해를 입었으면 특수강간치상죄가 성립한다는 현재의 판례 법리는 타당하므로 유지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 이연주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졸피뎀 먹인 뒤 호텔로 이동...강간은 미수
당시 4명이 모인 자리에서 다른 여성 동석자 C씨가 먼저 귀가하자 B씨는 인근 편의점에서 숙취해소 음료를 구매한 뒤 A씨로부터 받은 졸피뎀을 음료에 넣어 피해 여성에게 건넸다.
특히 B씨는 호텔에 도착한 뒤 C씨로부터 ‘피해 여성을 데리러 갈테니 객실 번호를 알려달라’는 연락을 받았지만 이를 무시하고 ‘피해 여성만 호텔에 두고 A씨와 나는 떠났다’는 취지로 거짓말을 하기도 했다.
다만 이들이 호텔에 가서 피해 여성을 강간하지는 못한 것으로 파악됐다. 피해 여성의 남편과 C씨가 계속 연락을 시도했고, 이들이 입실 약 1시간 30분만에 퇴실한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강간은 미수에 그쳤어도 피해 여성이 졸피뎀 복용에 따른 일시적 수면 또는 의식불명 상태에 이르는 상해가 발생했다며 이들을 특수강간치상죄 혐의로 기소했다.
이 사건의 쟁점은 특수강간(흉기 등 위험한 물건을 지닌 채 또는 2명 이상이 합동 강간)이라는 기본 범죄가 미수에 그쳤으나 의식불명 상해라는 중대한 결과(치상)를 야기했을 때 가중해 처벌할 수 있는지였다. 즉 기본 범죄인 특수강간이 미수에 그쳤더라도 피해자를 다치게 했을 경우 특수강간죄가 아닌 특수강간치상죄로 가중해 처벌할 수 있는지가 문제가 된 것이다.
앞서 1·2심은 특수강간치상죄를 적용해 A씨와 B씨를 기수범으로 보고 실형을 선고했다. 1심에서 A씨와 B씨는 각각 징역 6년 및 7년을 선고받았으나, 2심에서 미수 감경이 아닌 양형 부당으로 각각 징역 5년 및 징역 6년으로 형이 줄었다. 이들이 2심에서 범행을 인정한 점과 피해 여성이 처벌불원 의사를 표시한 점도 고려됐다.
이 과정에서 1·2심은 성폭력처벌법 8조가 특수강간이 미수에 해당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피해자에게 상해를 입힌 미수범도 특수강간치상의 처벌대상에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특수강간치상죄가 성립한다고 판단했다.
이때 재판부는 과거 대법원이 합동 강간은 아니지만, 흉기를 동원한 특수강간 사건에서 강간이 미수에 그쳤더라도 피해자가 다쳤다면 특수강간치상죄가 성립한다는 취지로 판시한 점을 언급하기도 했다.
조희대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들이 20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전원합의체 선고를 위해 자리에 앉아있다. /뉴스1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대법원 전합도 “책임 원칙에 부합하는 당연한 결론”
대법원 전원합의체도 이날 특수강간의 완수 여부에 상관없이 상해가 발생하면 특수강간치상죄가 성립한다고 판단하며 피고인들의 상고를 기각했다.
이어 “결과적 가중범(범행으로 중한 결과가 발생했을 때 형이 가중되는 범죄)을 가중처벌하는 근거는 기본 범죄에 내재된 전형적 위험이 현실화됐다는 점에 있다”며 “기본 범죄의 실행 행위를 완료하지 않았더라도 이로 인해 형이 무거워지는 요인이 되는 결과가 생겼다면 이를 결과적 가중범의 기수범으로 처벌하는 것이 책임 원칙에 부합하는 당연한 결론”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권영준·서경환 대법관은 “미수 감경은 원칙적으로 임의적 감경이므로, 중형이 요구되는 사안에서 법원이 미수 감경을 하지 않기로 선택할 수 있다”며 특수강간이 미수에 그친 경우 특수강간치상죄도 미수로 보고 형량을 감경할 수 있도록 하는 게 타당하다는 반대 의견을 냈다.
◇법조계 “성범죄에서 발생한 상해 엄벌하겠다는 것”
이날 판결에 대해 형사사건 경험이 풍부한 한 변호사는 “성범죄 과정에서 발생한 상해의 결과에 대해 엄정히 처벌하겠다는 뜻”이라며 “성범죄에 대한 경각심을 고취시키는 실익이 있다”고 분석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결과적 가중범인 특수강간치상죄의 미수범 성립을 부정하는 판례 법리는 여전히 타당함을 확인한 것”이라며 “별도의 입법 없이 현행법 해석론만으로는 특수강간치상죄의 미수범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태도를 밝힌 판결”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박강현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