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구에서 발견된 붉은등우단털파리(러브버그).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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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버그’, ‘팅커벨’이라 불리는 곤충 붉은등우단털파리와 동양하루살이에게 최근 ‘유행성 생활불쾌곤충’이란 딱지가 붙었다. 이들은 토양 환경 정화와 꽃의 수분을 돕고, 어류·새·곤충의 주요 먹이가 되는 익충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한 지방자치단체의 결정으로 하루아침에 해충 취급을 받으며 방제의 대상이 된 것이다.
두 곤충에게 본격적으로 이런 낙인이 찍힌 것은 지난 2월 서울시가 ‘곤충으로부터 쾌적한 도시 서울 만들기, 유행성 생활불쾌곤충 통합관리계획’을 내놓으면서부터다. 이 계획은 “시민 86%가 익충이더라도 대량발생 시 해충으로 인지한다”는 근거를 대며, “대량발생하여 시민 불쾌감 및 스트레스 유발 곤충(동양하루살이, 러브버그)” 등을 ‘유행성 생활불쾌곤충’이라 규정했다.
이어 서울시의회는 지난 7일 ‘서울특별시 대발생 곤충 관리 및 방제 지원에 관한 조례’ 제정안을 통과시켰다. 최근 몇년 새 수도권 중심으로 무리로 출현하고 있는 곤충을 ‘대발생 곤충’이라 정의하고 이에 대한 방제 근거와 지원 계획 등을 담은 안으로, 지난해 발의된 것을 이번에 통과시킨 것이다. 이 조례안은 처음 발의됐을 때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고 보류됐는데, ‘불쾌감을 주면 해충’이란 식의 풀이를 앞세워 통과시킨 모양새다. 이로써 서울시는 질병을 옮기거나 농작물에 피해를 주지 않는 곤충일지라도 방제할 수 있다는, 아직 우리나라 법률 체계에는 없는 새로운 법적 근거를 만든 전국 최초의 지자체가 됐다.
‘팅커벨’이라 불리는 동양하루살이. 한겨레 자료사진 |
이번 서울시 통합관리계획은 서울연구원의 ‘유행성 도시해충 확살실태와 대응방안’ 연구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6월 정책포럼에서 서울연구원은 “빈대, 러브버그와 같이 주로 도시에서 이상증식하는 돌발해충을 ‘유행성 도시해충’이란 용어를 사용하겠다”며 “미국, 유럽 등 일부 국가에서는 ‘도시해충’(Urban Pest)라는 표현을 사용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연구에서도 미국·유럽 등의 도시해충은 국내에서 말하는 ‘위성해충’(질병매개하는 곤충)에 해당한다고 밝히고 있는 등 도시해충 개념은 애초 ‘불쾌’ 여부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이 같은 서울시의 행보를 두고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더라도, 단지 불쾌감·스트레스를 유발하면 어떤 곤충이든 방제할 수 있다는 논리로 이어질 수 있어 위험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진우 가로수시민연대 대표는 “‘생활불쾌곤충’이란 명칭부터 시민들로 하여금 해당 곤충에 대해 거부감을 일으키게 할 뿐 아니라, 곤충 대발생에 대한 과학적 기준 또한 아직 마련돼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또 “이런 상황에서 생태계에 이로운 곤충까지 불쾌감을 이유로 죽여도 된다는 규정이 생긴다면, 지자체의 공식 방제 활동뿐 아니라 무분별한 곤충·생물 파괴가 일어날 염려가 있다”고 말했다. 환경단체들은 동양하루살이는 주로 5월, 붉은등우단털파리는 6~7월에 발생해 인간에게 피해를 끼치는 기간은 1주일 남짓이라고 주장한다.
러브버그 관련 민원이 도심 곳곳에서 폭증하자 서울 성북구청 들머리에서 새마을지도자 방역 봉사대원들이 러브버그 선제 방역활동을 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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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시민건강국 관계자는 이번 계획 수립과 조례 제정은 “방제에만 초점을 맞춘 게 아니라, 대발생 곤충의 발생 현황을 조사하고 ‘친환경’ 방제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근거를 만든 것”이라며 “당장 곤충들을 잡아 죽이자고 하는 것이 아니”라고 한겨레에 설명했다. “시민 민원이 대량으로 발생하고 있어서 아무 조처를 안 할 수 없는 입장”이란 것이다.
그러나 서울시가 우선적으로 고려한다는 ‘친환경 방제’를 하기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한다. 최영 서울환경연합 생태도시팀장은 “친환경 방제를 이야기 하고 있지만, 특정 종 한 종만 제거하는 방제법은 없다”며 “현재 거론되는 ‘끈끈이 롤트랩’ 설치 등도 나무와 생태계에 피해를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서울시가 꿀벌을 해치는 살충제 사용 중단을 선언했지만, 자치구에서는 지속해서 사용하는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다고 한다. ‘친환경’이란 말을 붙였지만, 대발생 곤충만 골라내 방제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담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다만 기후변화와 서식지 파괴 등으로 대발생하는 곤충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이에 대한 연구·관리가 현실적으로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박선재 국립생물자원관 기후환경생물연구과 연구관은 “농업·위생 해충은 담당 부처들이 관리하지만, 대발생 곤충들은 언제 어디서 얼마나 발생하는지 등의 체계적 연구가 없었다”며 “러브버그 등은 익충이지만 사체가 발생하면 쥐를 유인하는 등 2차 피해가 있을 수 있어 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 연구관은 “현재 조명을 조절하거나 유인물질을 이용하는 등의 친환경 방제법을 연구하고 있다”고도 덧붙였다.
서울시는 이번 조례에 대한 시민들의 우려 등을 고려해 오는 4월 전문가·환경단체·시민이 함께하는 심포지엄을 개최해 관련 사항을 계속 논의한다는 계획이다.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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