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 외교부 장관이 31일(현지시각) 워싱턴 국무부 청사에서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과 외교장관 회담을 하기 전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외교부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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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 내’로 예고된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주한미군 역할 변화’ 가능성을 언급한 우리 정부 고위 인사의 발언이 나와 파장이 일고 있다.
한미 외교협의에 정통한 정부 고위 인사는 31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에서 특파원단의 질문에 “주한미군의 역할과 성격, 이런 것은 여러 요인 때문에 변화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변화) 요인은 국제정세 변화도 있을 수 있고, 기술의 변화도 있을 수 있고, 중국 부상, 중국의 전략적 역할이 커지는 것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이런 것도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행정부 들어 미국 정부가 주한미군의 활동 범위를 한반도로 국한하지 않고, 중국의 대만 침공과 남중국해 분쟁 가능성 등을 염두에 둔 ‘중국 견제용’으로 투입하려는 ‘전략적 유연성’을 추진 중인 가운데, 우리 정부가 이를 본격적으로 논의할 가능성을 시사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이다. 그동안 미국이 강조해온 ‘주한미군의 역할 변화’를 우리 정부 고위 인사가 언급한 데다가, 특히 ‘중국의 부상, 중국의 전략적 역할’을 언급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이 고위 인사는 관련 질문이 이어지자 자신의 발언은 “미국이 왜 (전략적 유연성을 추구하는지 등을) 이해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며 ‘전략적 유연성’에 동의한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해명했다. 외교부도 “해당 관계자의 발언 취지는 주한미군 역할 및 성격 변화와 관련한 미측 언급의 배경을 이해할 수 있다는 내용”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발언을 둘러싼 파장과 논란이 커지자, 진화에 나선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엘브리지 콜비 국방부 정책차관을 중심으로 대중국 견제 전략을 구체화하면서, 이에 동맹들이 동참해야 한다는 요구가 계속 커지고 있다. 한미 외교·국방 당국간의 협의에서도 이 논의가 계속되고 있다.
31일(현시시각) 워싱턴에서 진행된 조현 외교장관과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의 외교장관 회담에서도 “변화하는 역내 안보 및 경제 환경 속에서 동맹을 더욱 강화하고 전략적 중요성도 한층 높이는 방향으로 동맹을 현대화해 나가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고 외교부는 전했다. ‘한미동맹 현대화’란 한미가 달라진 국제 정세와 복합적 안보 위협에 따라 동맹의 역할을 업그레이드한다는 의미다. 미국은 이를 그동안 북한 대응에 집중했던 주한미군의 역할을 ‘중국 견제용’으로 전환하고 한국이 국방비를 GDP의 5%까지 대폭 인상해야 한다는 의미로 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31일 안규백 국방부장관과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장관의 통화에서도 “역내 안보 환경 속에서 한미동맹을 상호 호혜적으로 현대화하기 위한 협의를 지속하기로 했다”고 국방부는 밝혔다.
미국은 한국이 대만해협을 비롯해 ‘중국의 안보 위협’에 대한 대응에 더 적극적으로 동참해야 한다고 계속 요구하고 있다. 한국 정부 당국자들과 전문가들은 동맹인 미국의 요구에 한국이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기는 어렵다고 보면서도, 주한미군의 대북 대응 태세에 큰 공백이 생길 수 있고 한-중 관계를 위태롭게 만들 가능성도 고려해 최대한 신중하게 판단해야 할 문제라고 지적한다.
이번 한미 외교장관 회담 뒤 미국 국무부는 “두 장관이 대만 해협에 걸쳐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는 게 국제 사회의 안보와 번영에 없어서는 안 될 요소였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발표했다. 반면, 우리 외교부는 두 장관이 “인도·태평양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위한 양국 간 협력을 증진해 나가기로 했다”고만 언급하면서 대만을 직접 거론하지 않아 미묘한 차이를 보였다.
당장 이달 중 열릴 한미 정상회담에서 안보 문제가 본격적으로 다뤄질 예정인 가운데, 주한미군 역할 변화 등 한미동맹 재조정 문제가 어떻게 논의될지가 핵심 관심사로 떠올랐다. 애초 대통령실과 협상팀은 한미 관세협상에 국방비까지 포함한 패키지 협상을 구상했지만, 조선업 협력과 한국의 투자를 중심으로 관세협상이 타결되면서, 안보 문제는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논의하게 됐다.
이런 사항에서 정부 고위 관계자가 ‘주한미군 역할 변화’를 언급하면서,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회담에서도 이 문제가 본격적으로 논의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지만, 정상회담에서는 주한미군 역할보다는 한국의 국방비 인상과 미국산 무기 구매 확대가 핵심적인 안보 의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2기 행정부 내에서 대통령과 국방부·군 관계자들 사이에 안보 의제의 핵심에 대한 미묘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주한미군을 비롯한 동맹 이슈에 대해 철저히 ‘비용’의 문제로 접근한다. 한국이 GDP의 5%까지 국방비를 올리고 주한미군 주둔 비용 가운데 한국이 분담하는 ‘방위비 분담금’을 대폭 올려야 하며, 미국 무기도 더 많이 구매해야 한다는 게 트럼프 대통령의 관심사다. 반면 엘브리지 콜비 미 국방부 정책차관을 중심으로 하는 국방부와 국무부는 보다 전략적인 문제에 집중한다.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미군을 ‘중국 견제’ 목표에 맞게 전환하면서 주한미군을 감축하거나 재배치해 대만과 남중국해에서 역할을 하도록 하는 ‘전략적 유연성’을 강조한다. 이들은 한국도 대만문제에 대해 더 분명한 역할을 해야한다고도 요구한다.
따라서, 이달 열릴 한미 정상회담에서는 한국의 국방비 인상과 미국산 무기 구매 문제 등 ‘돈 문제’가 주로 논의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망되지만, ‘주한미군 역할 변화’ 등 난제도 사라지지 않는다. 미국의 새 국방전략(NDS)과 ‘해외 미군 배치 검토’(GPR)가 8~9월에 나온 뒤 이 ‘설계도’에 따라 미국의 중국 견제 전략에 맞춰 한-미 동맹을 재조정하라는 요구와 압박이 본격화될 전망이다. 한미가 관세협상이라는 산을 하나 넘었지만, 미-중 경쟁과 국제질서 급변의 한가운데 놓인 안보와 관련된 난제는 첩첩산중이다.
박민희 선임기자, 워싱턴/김원철 특파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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