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셀러 ‘절창’의 구병모 작가
24일 오후 서울 광화문 인근 한 카페에서 만난 구병모 소설가. /고운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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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병모(49)는 조기 교육에 성공한 소설가다. 청소년 독자를 살살 꾀어 ‘구병모 월드’에서 자라게 했다. 2000년대 청소년 문학의 고전으로 불리는 그의 대표작 ‘위저드 베이커리’(2009) ‘아가미’(2011) 등을 읽고 자란 젠지(Gen Z) 세대의 열렬한 지지를 받는다. 어느덧 2030 독자가 된 이들은 ‘구병모 키즈’임을 자처한다. 그중엔 소설가 조예은, 김서해 등도 있다. 지난 17일 출간된 구병모의 신간 장편소설 ‘절창(切創)’이 주요 서점(교보문고·알라딘·예스24) 소설 베스트셀러 1위까지 거침없이 내달린 데는 이유가 있다.
24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구병모는 이런 팬덤에 대해 “이제 저는 올드한 세대지만, 그럼에도 그 올드한 세대가 다음 세대를 오게 하는 데 도움이 됐다면 그걸로 생큐”라며 웃었다. 경희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편집자로 일하던 그는 데뷔작 ‘위저드 베이커리’를 펴내며 전업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이후 청소년 문학과 성인 순문학을 오갔다. 대중과 평단으로부터 동시에 호평받는 스타 작가다. 지난 5월 그의 소설 ‘파과’를 원작으로 한 동명의 영화도 개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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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창’은 베인 상처라는 뜻이다. 타인의 상처를 만져 마음을 읽는 여자, 애타게 자신을 읽어달라고 하는 한 남자. 그리고 이들을 지켜보는 독서 교사가 주요 등장인물. 소설은 ‘읽기’란 무엇인지 묻는다. 타인을 읽는 것, 즉 이해하는 것에 관한 이야기이면서 소설 읽기에 관한 메타 소설(소설에 관한 소설)이다. 구병모 작품답게 서사적 몰입감을 갖췄고, 작가의 소설론도 담았다. 그는 “대중이 좋아하는 작품과 평단이 좋아하는 작품이 따로 있다”고 했지만, 이번엔 양쪽을 동시에 겨냥한 듯하다.
구병모는 “동사 ‘읽다’에 접붙이기해서 생각한 이야기”라며 “상처로 사람을 읽는 것과 책 혹은 텍스트를 읽는 것 사이엔 어떤 유사성이 있을까 고민한 결과”라고 했다. 그가 보기에 유사성은 ‘오독’에 있다. 오독이 뒤따를 수밖에 없는 ‘읽기’는 “예정된 실패이지만 그럼에도 이해하는 시도를 멈추지 않는 게 인간이고, 그것이 인간의 본능”이란 게 소설가의 말. 실패할 것을 알면서도 끈질기게 읽어내는 것이 인간 본능이라면, 그 힘은 어디서 올까. 구병모는 “본능에는 동력이 필요하지 않다”고 단박에 답했다. “본능은 자기를 태울 에너지를 어떻게든 찾아내거든요.” 느닷없이 구병모 소설 속으로 끌려 들어간 듯했다.
‘읽기’에 관한 소설인 ‘절창’엔 셰익스피어 인용이 많다. 구병모는 희극파일까, 비극파일까. 그는 “볼 때는 희극, 쓸 때는 비극이 좋다”고 했다. “어차피 다 거짓말이니 소설을 쓰는 입장에서는 비극이어도 마음이 편하다”며 “이게 (결말을) 아는 자의 여유”라고 했다. /고운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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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병모 스타일로 일컬어지는 만연체도 여전하다. 그는 “이를 의도했다기보다 프랑스 문학이나 독일 문학의 영향 아래 있어서 자연스럽게 읽었던 습관이 배어 나온 것 같다”며 “예전에는 (만연체를 쓰는 이유로) ‘독자들이 너무 빨리 목적지에 닿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요즘엔 ‘과연 그런 거였나?’ 싶다”고 했다. 따지듯 투덜거리는, 시니컬한 톤도 그만의 특색. 소설가는 “지금 상태에 만족하거나 안주해선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항상 있고, 존재 자체에 대한 불만이 무엇을 쓰든 간에 디폴트로 있다”고 했다.
2015년 동인문학상 심사위원회는 그의 소설집 ‘그것이 나만은 아니기를’에 대해 “화려한 세상에 이물처럼 끼어든 화자의 악담성 수다”라는 평을 남겼다. 구병모는 “악담의 칼을 날카롭게 갈아야 하는데 세월의 풍파를 맞으니 그 예리하던 게 무뎌지는 것을 나도 느낀다”며 “그걸 느껴서 또 존재 자체에 대해 불만을 느낀다”며 씩 웃었다. 10년이 지났지만, 불만의 에너지 레벨은 크게 떨어지지 않은 듯했다.
[황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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