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하재욱 작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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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인과 마찬가지로 정치인도 팬덤이 있어야 성공한다. 하지만 정치의 주도권이 팬덤으로 완전히 넘어가면 정치인은 꼭두각시로 전락한다. 정치인들은 자신만의 팬덤을 구축하면서도 그 팬덤을 제어해야 하는 난제를 안게 됐다. 정치인들의 운명은 선거로 결정된다.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는 내년 6월3일이다. 8개월을 앞둔 지금은 정치인들에게 심모원려와 포석의 시간이다. 팬덤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주요 정치인의 앞날을 짚어본다.
이재명 대통령은 팬덤으로 성공한 대표적인 정치인이다. 2017년에는 ‘손가혁’(손가락혁명군)이 있었고, 2022년부터는 ‘개딸’(개혁의 딸)이 있다. 대통령 당선 뒤에도 팬덤은 든든한 기반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내란 잔당 척결’ 등 팬덤의 강경한 요구를 외면할 수 없는 이유다. 하지만 강성 팬덤은 이재명 대통령에게 서서히 부담스러운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 대선 뒤 이재명 대통령 지지로 유입됐던 중도층이 흔들리면서다. 강성 팬덤의 내란 척결론에 대한 피로감이다.
서서히 빠지는 지지율은 반등이 더 어렵다. 대통령 취임 1년 뒤 치르는 지방선거에서 만약 민주당이 패배하면 이재명 대통령은 조기 레임덕에 빠질 위험이 있다. 이재명 대통령으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다. 추석 연휴 이후 다시 민생, 국민통합, 협치 행보에 나설 것이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 김병기 민주당 원내대표와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를 한자리에 불러 모아야 한다. 여기저기서 이미 협치 복귀 흐름이 감지된다. 김영진 민주당 의원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대법원장 청문회를 “급발진”이라고 비판했다. 정청래 대표와 추미애 법사위원장의 성찰을 촉구했다. 김영진 의원은 이재명 대통령에게 충직한 사람이다.
민주당 8·2 전국당원대회를 앞두고 ‘명심’은 박찬대 의원에게 있었지만 당원들은 정청래 의원을 선택했다. 정권의 성공을 위해 집권 초기에 강한 리더십을 가진 정치인이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정청래 대표를 찍은 당원들은 엄밀히 말해서 정청래 대표 개인 팬덤이 아니다. 정청래 대표는 “추석 귀향길 라디오 뉴스에서 검찰청 폐지 뉴스가 들리도록 하겠다”는 약속을 지켰다. 국민의힘 해산, 조희대 대법원장 사퇴 등을 외치고 있다. 그러나 정청래 대표의 강경 노선은 지속이 불가능하다. 이재명 대통령 지지율과 민주당 지지도가 동시에 하락세이기 때문이다. 방치하면 지방선거가 위험하다. 지방선거에서 패배하면 정청래 대표는 끝장이다. 대표 연임도 불가능하다. 정청래 대표와 가까운 한 의원은 “추석 연휴가 지나면 정청래 대표가 지금과는 다른 면모를 보일 것”이라고 했다. 지켜볼 일이다.
김민석 국무총리는 이재명 대통령을 만든 일등공신이다. 동시에 그 자신도 정치적으로 완전히 부활했다. 이제 그를 ‘김민새’라고 부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차기 대선주자 여론조사에서도 의미 있는 수치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더 올라갈 것이다. 그러나 아직 팬덤은 없다.
김민석 총리에게는 세가지 선택지가 있다. 첫째, ‘일하는 국무총리’로 내각에 남아 차기 주자 입지를 굳히는 길이다. 문재인 대통령 때 이낙연 국무총리의 전례가 있다. 국무총리 출신은 대통령이 안 된다는 징크스가 있지만 징크스는 언젠가 깨지는 법이다. 둘째, 서울시장 후보로 나서는 길이다. 서울시장에 출마하려면 90일 전에 국무총리직에서 사퇴해야 한다. 30일 전에는 국회의원직도 사퇴해야 한다. 셋째, 내년 8월 전당대회에서 민주당 대표로 나서는 길이다. 민주당 안에서는 최근 ‘김민석 대표론’을 말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은 본래 손학규 전 대표 사람이었다. 비명계였지만 2022년 대선 전략기획본부장, 2025년 대선 종합상황실장을 맡았다. 이재명 후보가 그의 실무역량을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다. 대통령비서실장 발탁은 그 자체로 파격이었다. 그는 1973년생이다. 비서실장이 된 뒤 미국과의 관세 협상, 조지아주 구금 사태에서 일솜씨를 발휘했다. 최근 대통령실 개편으로 디지털소통비서관이 비서실장 직할로 옮겨왔다. 국정기획자문단도 비서실장 직속으로 신설됐다. 강훈식 실장에게 급속히 힘이 실리는 흐름이다. 대통령실과 행정부 인사에서도 강훈식 실장의 입김이 점점 강해지고 있다. 최근에는 강훈식 실장을 서울시장 후보로 미는 민주당 의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래도 ‘강훈식 팬덤’은 아직 없다.
국회 법사위원장 추미애 의원은 강경파의 가장 앞줄에 서 있다. 강성 권리당원들이 추미애 의원을 지지하는 이유다. 추석 연휴 이후 국정감사에서도 추미애 법사위원장의 ‘활약’은 계속될 것이다. 추미애 의원은 지방선거에서 경기지사를 노린다. 경기지사는 민주당이 유리하다. 당선되면 여성 최초의 광역단체장이 된다. 경기지사 다음 목표는 대통령일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경로다.
조국 조국혁신당 비상대책위원장은 5060세대를 중심으로 고정 팬덤이 있다. 그러나 2030세대의 거부감을 극복하기가 쉽지 않다. 추석 연휴 이후 국회에서 혁신당의 활동 공간은 별로 없다. 지방선거 전 민주당과의 합당은 조국 위원장 스스로 가능성을 불살랐다. 지방선거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하면 조국 위원장과 혁신당의 미래는 사라진다. 이제 모 아니면 도다.
장동혁 대표는 교육 공무원과 판사를 꽤 오랫동안 지냈다. 합리적 사고와 인품을 갖췄다. 1969년생으로 나이도 적당하다. 잠재력은 꽤 있다고 봐야 한다. 그는 김문수 대선후보를 꺾어 대이변을 일으켰다. “윤 어게인”과 “부정선거”를 외치는 극우 세력의 지원 덕분이다. 하지만 극우는 정치인 장동혁의 굴레다. 굴레는 벗어던지기가 쉽지 않다. 호랑이 등에 올라탔는데 섣불리 내려오면 물려 죽는다. 앞으로도 장외 투쟁을 포기할 수 없을 것이다. 연말 정국을 잘 버텨내고 지방선거에서 그런대로 괜찮은 성적을 거두면 대성공이다. 자신만의 팬덤도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 가능할까?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는 정치를 시작하자마자 팬덤을 중심으로 당원들의 상당한 지지세를 확보했다. 지난해 7·23 전당대회에서 그는 윤석열 대통령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62.84%의 득표율로 대표가 됐다. 지난 5월3일 대선후보 선출 전당대회에서는 43.47% 득표에 그쳤다. 8·22 전당대회에서 그가 지지한 조경태, 안철수 의원의 득표율은 합쳐서 31.61%에 불과했다. 갈수록 세가 줄어들고 있다. 한동훈 전 대표가 지방을 돌며 ‘메시지 정치’를 하는 이유는 중앙무대에 활동 공간이 없기 때문이다. 6·3 지방선거와 함께 치르는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 출마해 당선되는 것이 유일한 활로다. 공천권은 장동혁 대표가 쥐고 있다. 어떻게 될까?
오세훈 서울시장은 정치를 꽤 오래 했지만 팬덤이 거의 없다. 합리적 보수, 개혁적 보수를 자처하기 때문일 것이다. ‘약자와의 동행’이라는 시정 철학은 팬덤에 인기를 끌기 어렵다. 그런데도 꿋꿋하다. 이제는 존재감 자체가 그의 경쟁력이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다시 당선되면 ‘서울시장 5선’이라는 진기록을 세우게 된다. 차기 대선주자 경쟁에서도 유리한 고지에 올라선다. 서울시장 출신 이명박 대통령의 길이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이 가졌던 일솜씨가 그에게 있는지는 의문이다. 오락가락 부동산 정책, 한강버스 운행 중단은 치명적이다. 넘어설 수 있을까?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에게는 ‘싸우는 보수 여전사’의 이미지가 있다. 팬덤도 어느 정도 형성되어 있다. 서울 지역구 국회의원인데 경기지사, 충북지사 후보로 거론된다. 충북은 그의 아버지의 고향이다. 실제로 출마할 생각은 별로 없는 것 같다. 하지만 당에서 요구하면 뛰어들 것이다. 그는 늘 그랬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는 20·30대 남성 유권자를 중심으로 팬덤이 있다. 그러나 대선 토론 ‘젓가락’ 발언으로 절대 거부층을 만들었다. 세대를 불문하고 여성 유권자들은 그를 싫어한다. 그가 재기하는 길은 젠더 갈라치기를 포기하고 유승민, 안철수 등 합리적 보수와 손잡고 세대교체의 기수로 나서는 것이다. 가능할까?
정치는 국민이 하는 것 같아도 정치인이 하는 것이다. 국민은 선거를 하고 정치인은 정치를 한다. 국민이 시키는 대로 하는 사람은 정치인이 아니라 포퓰리스트다. 지금 우리 정치를 끌고 가는 사람들은 정치인일까, 포퓰리스트일까?
정치부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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