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 위해 정글서 무장투쟁 이끈
구스망 총리 등 감격의 눈물 쏟아
“수백 년 고통 견뎌 국가적 꿈 실현”
샤나나 구스망 동티모르 총리가 26일 열린 아세안 정상회의에서 동티모르의 가입이 승인된 직후 취재진 앞에서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로이터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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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 년간 이어진 고통을 견뎌낸 우리 국민들의 이름 없는 희생 덕에 국가적 꿈이 실현됐습니다.” 지난 26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정상 회의에서 동티모르의 가입이 확정되자 샤나나 구스망 동티모르 총리는 연단에서 울먹이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인도네시아의 지배를 받던 1970년대 동티모르민족해방군(FALINTIL) 사령관으로 무장 독립 투쟁을 이끌었던 그는 2002년 건국 후 대통령과 총리를 지냈다. 역시 FALINTIL에서 외교 수장을 맡았던 조제 하무스오르타 대통령이 감격에 찬 모습으로 ‘동지’ 구스망의 연설 모습을 지켜봤다.
그래픽=이진영 |
이날 동티모르의 가입으로 아세안은 1999년 캄보디아 가입 이후 26년 만에 새 회원국을 받아들여 11국 체제가 됐다. 앞서 동티모르는 2011년에 가입 신청을 하며 아세안의 문을 두드렸고, 2022년 11월 정상 회의에서 모든 회원국의 만장일치로 가입이 승인됐다.
동티모르는 아세안 11국 중 면적은 싱가포르·브루나이에 이어 셋째로 작고, 인구는 브루나이에 이어 둘째로 적다. 하지만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각각 9만달러·3만달러를 훌쩍 넘는 부자나라인 싱가포르·브루나이와 달리 1인당 GDP는 아세안 최빈곤국 미얀마보다 조금 많은 1400달러다. 독립 후에도 정파 간 갈등이 잦아들지 않고 경제는 빈곤 상황을 벗어나지 못했던 동티모르는 아세안 가입이 안정과 도약의 전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분위기다.
아세안 국가들은 대개 서구 열강의 지배를 받았거나 강력한 영향력 아래 놓여 있었지만, 동티모르는 같은 아세안 회원국 인도네시아에서 분리 독립했다. 16세기부터 포르투갈 식민 지배를 받았고 태평양전쟁 시기 일본에 점령됐다. 포르투갈의 정국이 혼란스럽던 1975년 독립을 선언했으나, 9일 뒤 인도네시아가 ‘공산주의 확산 저지’를 명분으로 침공해 유혈 진압했다. 1999년 국제사회 주도로 분리 독립이 확정되며 인도네시아 강점이 끝날 때까지 10만~20만명이 희생된 것으로 추정된다.
동티모르가 독립국으로 출발하는 데 한국도 의미 있는 역할을 했다. 1999년 9월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 회의에 참석한 김대중 대통령은 동티모르 문제를 국제적 관심사로 끌어올렸다. 그해 8월 유엔 관리하에 치른 독립 찬반 투표가 압도적 표 차(78%)로 가결되자 친인도네시아 무장 세력이 주민들을 습격하는 유혈 사태가 발발했다. 이런 상황에서 김 대통령은 다국적군이 파병되도록 인도네시아를 적극 설득해 안정화의 물꼬를 텄다. 한국은 동티모르의 제헌의회 선거 관리 인력도 지원했고, 상록수 부대가 4년간 주둔하며 치안 확립과 사회 안정을 도왔다.
동티모르는 이번 가입으로 아세안을 기반으로 한 협의체인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동아시아정상회의(EAS)·아세안+3(한국·중국·일본) 등에서도 활동하게 된다. 국제적인 위상이 올라가 가스와 광물 등 자원 개발을 통한 국부 창출에 속도가 붙을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도 있다. 하지만 아세안 가입 효과가 기대만큼 크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단일 국가 수준으로 회원국에 대한 구속력이 큰 유럽연합(EU)과 달리 아세안은 회원국 간 상호 불간섭주의를 유지해 왔다. 이 때문에 회원국이 쿠데타 등으로 정정 불안에 빠지거나 회원국 간 무력 충돌이 벌어져도 조정자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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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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