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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9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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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인이 사랑하는 ‘빛을 수집한 사람들’이 왔다… ‘메트’ 걸작, 서울 나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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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중앙박물관 리먼 컬렉션 개막

    조선일보

    13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인상주의에서 초기 모더니즘까지, 빛을 수집한 사람들'-메트로폴리탄박물관 로버트 리먼 컬렉션' 전시를 찾은 시민들로 붐비고 있다. 2025.11.13 /박성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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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붉은 벨벳 커튼 속에서 그림 한 점이 드러난다. 작은 화폭 속에 레이스를 뜨는 여인이 있다. 17세기 네덜란드 거장 요하너스 페르메이르의 작품인가. 뜻밖에도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가 모사한 그림이다. 리먼 브러더스 투자은행을 경영했던 로버트 리먼(1891~1969)이 달리에게 직접 “모사본을 그려달라”고 주문해 제작한 것이다.

    미국 메트로폴리탄 박물관(메트)을 대표하는 인상주의 걸작들이 드디어 베일을 벗었다. 메트 소장품 81점을 국내 최초로 공개하는 특별전 ‘인상주의에서 초기 모더니즘까지, 빛을 수집한 사람들’이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14일 개막한다. ‘로버트 리먼 컬렉션’의 회화와 드로잉 65점을 중심으로, 유럽 회화, 근현대 미술, 드로잉 등 메트 소장품 16점을 더했다. 개막을 하루 앞두고 열린 언론 공개회에서 맥스 홀라인 메트로폴리탄박물관장은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에 이르는 이 작품들은 한 번도 메트 밖을 떠나본 적 없는 작품들”이라며 “리먼 컬렉션 작품들은 단일 대여조차 거의 이뤄진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이 같은 규모의 전시회를 기획하는 것은 매우 특별한 시도”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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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을 대표하는 인상주의 걸작들이 서울에 처음 상륙했다.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인상주의에서 초기 모더니즘까지, 빛을 수집한 사람들’ 개막을 하루 앞두고 열린 언론공개회에서 맥스 홀라인 메트로폴리탄박물관장이 축사를 하고 있다. /박성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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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장정의 시작을 페르메이르 모사품으로 여는 이유가 있다. 네덜란드 황금기를 대표하는 그림의 오묘한 빛에 빠진 리먼이 끝내 수집하지 못한 화가가 페르메이르였다. 로버트는 달리가 ‘레이스를 뜨는 여인’의 재해석에 관심 있다는 걸 알고 있었고, 컬렉션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1956년 달리에게 모사품을 의뢰했다.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은 “한 사람의 컬렉션에서 컬렉터의 안목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예”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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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바도리 달리의 '레이스를 뜨는 여인'이 프롤로그에 걸려 있다. 로버트 리먼이 "요하너스 페르메이르 작품의 모사본을 그려달라"고 주문해 제작한 것이다. /허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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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는 ‘몸’에서 출발해 이웃과 공동체, 바깥의 자연으로, 전원과 물가로 시선이 확장된다. 인상주의 화가들이 그린 ‘몸’은 더 이상 신화 속 초월적 존재가 아니라 일상에서 마주하는 인간적인 몸이었다. 폴 세잔의 ‘목욕하는 사람들’은 눕거나 앉아 있거나 기지개를 켜고 있고, 고갱의 ‘목욕하는 타히티 여인들’은 마치 화가가 여인들을 엿보는 듯한 구도를 취하고 있다.

    하이라이트는 르누아르의 ‘피아노를 치는 두 소녀’. 발갛게 상기된 소녀들의 뺨, 찰랑이는 금색 머릿결까지 르누아르 특유의 붓질과 색감이 살아있는 이 명작은 프랑스 정부가 작가에게 의뢰한 첫 그림이다. 양승미 학예연구사는 “마이너에 머물던 인상주의를 국가가 공식적으로 인정했다는 걸 보여주는 중대 사건”이라고 했다. 르누아르는 ‘피아노를 치는 두 소녀’를 6점 남겼고, 이 작품은 유화 완성본 4점 중에서도 가장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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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인상주의에서 초기 모더니즘까지, 빛을 수집한 사람들' 언론공개회에서 한 관계자가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박성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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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인상주의에서 초기 모더니즘까지, 빛을 수집한 사람들' 언론 공개회에서 관계자들이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박성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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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인상주의도 처음엔 조롱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화가들은 찰나의 인상을 포착하고, 빛의 떨림을 화폭에 담았다. 빈센트 반 고흐는 프랑스 남부 아를에 정착한 1888년 4월 동생 테오에게 “나무들이 꽃을 피우고 있어서 열광적으로 작업하고 있다”고 편지를 썼다. 고흐의 ‘꽃피는 과수원’은 이때 아를에서 그린 첫 연작 중 하나. 구불구불 자란 고목, 남부의 강렬한 태양과 고흐만의 붓 자국이 선명하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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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인상주의에서 초기 모더니즘까지, 빛을 수집한 사람들' 언론공개회에서 한 관계자가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박성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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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세기 중반 파리는 근대 도시의 상징으로 거듭났고, 산업화로 일터와 가정이 분리되면서 ‘여가’라는 개념이 등장했다. 카미유 피사로의 ‘겨울 아침의 몽마르트르 대로’에선 근대 도시의 활기가, 조르주 쇠라의 ‘그랑드자트섬의 일요일 오후를 위한 습작’에선 한가로이 주말을 보내는 파리 시민의 여유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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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인상주의에서 초기 모더니즘까지, 빛을 수집한 사람들' 언론공개회에 맥스 홀라인 미국 메트로폴리탄박물관장,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 홍준호 조선일보 발행인(앞줄 왼쪽 넷째부터) 등 참석자들이 앉아있다. /박성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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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집가 리먼의 신념과 기증의 의미를 되새기며 전시는 막을 내린다. 로버트는 “위대한 예술은 나만의 기쁨에 머물러서는 안 되고, 더 많은 사람이 누려야 한다”며 소장품 2600여 점을 메트에 기증했다. 유홍준 관장은 “이 전시는 빛을 화폭에 담아 새로운 시대를 열었던 화가들과, 빛을 담은 그림을 모아 기쁨을 나누고자 했던 컬렉터의 열정을 담은 이야기”라며 “그리고 그 빛을 눈과 마음에 담아 갈 여러분이 바로 주인공”이라고 했다. 내년 3월 15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 매표소에서 현장 구매도 가능하다. 입장료 성인 1만9000원.

    [허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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