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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11 (목)

    이슈 미술의 세계

    “메트로폴리탄 처음 떠나 온 명화들… 인상주의 창의성·감수성 잘 드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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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튼, 주말]

    리먼 컬렉션 소개하는 홀라인 관장

    조선일보

    맥스 홀라인 미국 메트로폴리탄박물관장이 13일 서울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인상주의에서 초기 모더니즘까지, 빛을 수집한 사람들' 전시장에 서 있다. /박성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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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올 흐트러짐 없이 머리칼을 뒤로 넘긴 장신(長身)의 남성이 인터뷰 장소에 들어섰다. 맥스 홀라인 미국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이하 메트) 최고경영자(CEO) 겸 관장이다.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의 안내로 ‘사유의 방’을 관람하고 왔다고 했다. 국보 반가사유상 2점이 전시된 국박의 대표 공간. “예전에도 와봤는데, 굉장히 감정을 고양시키면서 아름답고 힘 있는 공간이에요. 예술적 우수성과 영적인 감수성이 모두 녹아 있어요.”

    메트가 소장한 로버트 리먼 컬렉션이 처음으로 서울에 상륙했다. 초대형 블록버스터 특별전 ‘인상주의에서 초기 모더니즘까지, 빛을 수집한 사람들’ 개막을 앞두고 13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만난 홀라인 관장은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에 만들어진 이 작품들은 한 번도 메트 밖을 떠나본 적이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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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을 대표하는 인상주의 걸작들이 서울에 처음 상륙했다.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인상주의에서 초기 모더니즘까지, 빛을 수집한 사람들’ 개막을 하루 앞두고 13일 열린 언론공개회에서 맥스 홀라인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장이 축사하고 있다. /박성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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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트에서 리먼 컬렉션은 어떤 의미가 있나.

    “150년 역사를 자랑하는 메트는 대중을 위해 설립된 박물관이다. 광범위한 예술과 문화를 아우르는 공간은 여러 소장가의 노력으로 이루어졌고, 그들의 기증과 헌신 덕분에 박물관 컬렉션의 수준이 매우 높아졌다. 특히 로버트 리먼은 독보적인 소장가 중 한 명으로 우리 박물관에 큰 기여를 했다. 미국의 사업가이면서 자선가였던 그는 1970년 ‘더 많은 사람이 즐길 수 있어야 한다’는 철학으로 소장품 2600여 점을 기증했다. 덕분에 100주년을 맞은 메트를 ‘위대함’에서 ‘독보적인 경지’로 끌어올려 주었다.”

    -한국에서 리먼 컬렉션을 처음 소개하는 소감은?

    “프랑스 대표 걸작들을 보여드릴 수 있어 뿌듯하다. 인상주의에서 모더니즘으로 넘어가는 시기, 파리는 그야말로 창의성이 폭발했다. 미술사적으로 보면 인물화를 통해 우리 인간이 갖고 있는 조건, 감수성이 드러나는 시기였다. 로버트 리먼은 이 점을 아주 잘 이해하고 있었던 소장가였다. 컬렉션을 보면 그가 선별한 작품들이 얼마나 뛰어난지 알 수 있다. 르누아르·마티스·피사로·세잔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대가의 걸작을 보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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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맥스 홀라인 미국 메트로폴리탄박물관장이 13일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전시장에 걸린 르누아르의 '피아노를 치는 두 소녀' 앞에 서 있다. 81점 출품작 중에서 그가 '단 하나의 작품'으로 꼽은 명작이다. /박성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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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품작 중에서 한국 관람객들이 ‘이것만은 꼭 봤으면’ 하는 단 한 점을 꼽는다면?

    “너무 어려운 질문이다(웃음). 그럼에도 굳이 하나를 꼽으라면 르누아르의 ‘피아노를 치는 두 소녀’를 꼽겠다. 프랑스 미술사에서 처음으로 일상적인 가족의 모습을 그린 작품이라 의미 있다. 악기를 연주하는 소녀들은 미술사의 주요 주제였지만, 르누아르는 당시 부르주아 가정의 매력적인 소녀들을 포착해 이 주제를 재해석했다. 또 정부가 처음으로 인상주의 화가에게 의뢰해 그려낸 작품이라는 점에서도 혁명적이다. 이른바 ‘마이너’에 머물러 있던 인상주의를 국가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했다는 것이고, 프랑스 대중들이 그만큼 인상주의를 포용하기 시작했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한국에서도 고(故) 이건희 삼성 선대 회장 유족이 기증한 ‘이건희 컬렉션’이 큰 울림을 줬다. 이번 전시는 기증과 나눔의 중요성도 일깨워 주는 것 같다.

    “전적으로 그렇다. 기증 문화는 박물관의 발전에 있어서 아주 근본적인 뼈대 역할을 한다. 메트는 바로 그런 문화 속에서 설립됐고 앞으로도 많은 자선가와 개인 후원자, 기증자들에 의해서 만들어져 나갈 것이다. 개인이 모은 소장품이 대중에게 공개되면서 전시로 공유될 수 있다는 게 중요한 포인트다.”

    1969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난 홀라인 관장은 예술계 ‘금수저’다. 아버지 한스 홀라인은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받은 포스트 모더니즘 건축의 선구자. 빈 대학에서 미술사와 경영학을 전공했고,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관리자로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쉬른 쿤스트할레 미술관, 슈테델 미술관, 리비히하우스 조각 미술관 관장을 거치며 경영 능력과 기획력을 인정받았다. 2016년 미국 샌프란시스코 미술관장에 취임했고, 2018년 제10대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장에 임명된 후 2023년부터 CEO까지 겸임하게 됐다.

    그가 메트 관장에 재임하는 동안 한국 미술과의 접점도 많아졌다. 지난 2023년에는 한국실 개관 25주년을 맞아 한국 미술 전시를 강화했고, 같은 해 9월엔 한국 미술 큐레이터직을 신설했다. 작년엔 설치미술가 이불이 메트 건물 외벽(파사드)을 장식하며 한국 미술의 위상을 드높였다. 홀라인 관장은 “메트는 120년 넘게 한국 작품을 수집해 왔고, 한국 문화와 깊은 관계를 맺어왔다”며 “전문가 교류, 상호 지원의 형태로 협업을 이어왔고 앞으로도 교류를 더 강화할 생각”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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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맥스 홀라인 미국 메트로폴리탄박물관장이 전시장에서 작품을 감상하는 모습. /박성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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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브르 박물관과 다른 메트만의 강점은 뭔가.

    “메트는 시작부터 유럽 박물관과 달랐다. 유럽 박물관들은 대중에서 출발한 게 아니다. 특정 귀족이나 통치자에 의해 컬렉션이 만들어졌고, 어느 시점에 이르러서야 대중에게 공개됐다. 반면 메트는 설립부터 공공을 위해, 대중을 위한 미술관이라는 사명을 갖고 세워졌다. 메트는 미국만의 박물관이 아니다. 세계에 의한, 세계를 위한 박물관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다.”

    [허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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