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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9 (화)

    이슈 미술의 세계

    1957년 佛 전시 이후 최대 규모… “예술의 공유 꿈꾼 리먼도 기뻐할 한국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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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게이라 메트 큐레이터가 알려주는 ‘로버트 리먼 컬렉션’

    조선일보

    14일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소장 리먼 컬렉션 작품전 ‘인상주의에서 초기 모더니즘까지, 빛을 수집한 사람들’ 개막 기념 강연에서 리먼 컬렉션 담당 큐레이터인 앨리슨 노게이라(왼쪽 앉은 이)가 대형 화면에 르누아르의 ‘피아노를 치는 두 소녀’와 로버트 리먼의 사진을 보여주며 설명하고 있다./고운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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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트로폴리탄 박물관(메트) 소장품 특별전 ‘인상주의에서 초기 모더니즘까지, 빛을 수집한 사람들’이 개막한 지난 14일. 평일임에도 개막 기념 강연을 들으려는 관람객이 서울 국립중앙박물관 500석 규모 대강당을 가득 채웠다. 좌석이 부족해 뒤쪽에 서거나 계단과 바닥에 앉아 강연을 듣는 이도 많았다.

    이날 강연에는 메트에서 로버트 리먼 컬렉션을 담당하고 있는 큐레이터 앨리슨 노게이라가 직접 나섰다. 메트가 소장한 리먼 컬렉션 65점을 포함해 모두 81점으로 꾸려진 이번 전시는 인상주의와 20세기 초반 가장 두각을 드러낸 미술 수집가의 취향을 보는 전시이기도 하다.

    노게이라 큐레이터는 서울 전시의 의미가 남다르다고 했다. “1957년 파리 오랑주리 미술관 전시회에 약 300점의 리먼 컬렉션 작품이 출품됐고, 이는 컬렉션 역사상 최대 규모의 국제 전시였습니다. 이 파리 전시 이후로 대규모로 리먼 컬렉션을 해외에 소개하는 첫 시도가 바로 이번 서울 전시입니다.”

    그는 이번 전시에 나온 작품들과 투자은행 리먼 브라더스 경영자이자 3000여 점의 미술품 컬렉션을 남긴 수집가였던 로버트 리먼의 정신에 대해 들려줬다. 특히 “로버트 리먼은 파리 전시를 앞두고 ‘중요한 예술 작품은 개인의 소유라 할지라도 그것이 개인의 즐거움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며 “리먼은 이번 서울 전시에 대해서도 매우 만족해할 것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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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일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대강당에서 강연하고 있는 로버트 리먼 컬렉션 담당 큐레이터 앨리슨 노게이라./고운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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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게이라 큐레이터는 인상주의와 로버트 리먼, 그리고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은 1875년이라는 접점을 공유한다고 했다. “바로 그 무렵 파리에서 인상주의가 탄생했고 뉴욕에선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이 창립되었으며, 동시에 리먼 가문이 성장하기 시작했어요.” 이후 1910년대로 접어들며 로버트의 아버지인 필립 리먼의 예술품 수집을 통해 리먼 컬렉션의 기초가 형성된다. 노게이라 큐레이터는 “아들 로버트는 이미 1920~1930년대부터 가문의 예술 수집 활동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기 시작했으며, 194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뛰어들어 19세기와 20세기 프랑스 작가 작품들을 열정적으로 수집했다”고 했다.

    로버트 리먼은 1947년부터 1969년까지 생애 마지막 20여 년 사이 근대 미술 작품 300여 점을 수집했는데, 이때 모은 작품들이 이번 전시에 다수 포함됐다. 노게이라 큐레이터는 “리먼은 활력 넘치는 프랑스 미술에 매료돼 세잔·쇠라·고갱·르누아르·마티스 같은 대표적 작가들의 회화와 드로잉을 열정적으로 수집했고 그중 뛰어난 걸작들이 이번 전시에 나왔다”고 했다.

    열정적 수집가의 면모를 보여주는 사례도 소개됐다. 1948년 작품 구입을 위해 프랑스 미술상과 나눈 서신에서 로버트 리먼은 ‘좋은 그림을 몇 점 찾아주시길 바랍니다. 예를 들어 야수파의 블라맹크 작품 하나나 두 점, 그리고 훌륭한 크로스 작품이면 좋겠습니다’ ‘아직 소식을 듣지 못해 아쉽습니다. 시냐크나 크로스 작품을 꼭 찾아주셨으면 합니다’라고 적었다. 그는 원하는 작가와 주제를 구체적으로 제시하며 때로는 끈질기게 미술상들에게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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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6년 무렵의 로버트 리먼./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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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먼 컬렉션은 리먼 가문의 예술품에서 점차 공공의 예술품으로 나아간다. 노게이라는 “뉴욕의 가족 저택에 보관했던 컬렉션은 1950년대에 이르러 여러 미술관에 전시되며 사적 수장품에서 공공의 전시 컬렉션으로 전환됐다”고 설명했다. 리먼 컬렉션이 국제적 명성을 얻게 된 계기가 바로 1957년 파리 오랑주리 전시회였다. 이후 2600점 이상의 미술품은 리먼의 뜻에 따라 1969년 자신이 이사와 부관장을 지냈던 메트에 기증된다.

    예술품을 많은 사람과 나누고자 했던 리먼의 정신과 취향도 이번 전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15일 전시장에서 만난 소순영(78)씨는 “리먼의 정신에 감탄했다”며 “예술도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 봐야 좋고, 함께 나눌 때 진정한 보물이 되지 않겠나. 국내에서 이렇게 좋은 작품들을 만날 수 있어 고마운 마음”이라고 했다.

    [김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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