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현지 시각) 블룸버그통신은 “올해 남미 국가들이 우파 후보를 선택하는 이유는 국가별로 다르다. 볼리비아는 연료와 달러 부족, 아르헨티나는 만성적 경제 위기, 칠레는 통제되지 않은 이민과 폭력 범죄에 대한 두려움이 주요 요인”이라며 “그러나 이러한 요인들은 지역 전체를 동일한 정치적 방향으로 이끌고 있다”고 보도했다.
앞서 지난 16일 치러진 칠레 대선에서는 과반 득표자가 나오지 않아, 1·2위 후보가 다음 달 결선 투표에서 최종 승부를 가리게 됐다. 결선에는 칠레공산당 소속으로 가브리엘 보리치 정부에서 노동장관을 지낸 급진 좌파 히아네트 하라(51) 후보와 ‘칠레의 트럼프’로 불리는 강경 우파 공화당의 호세 안토니오 카스트(59) 후보가 진출했다.
대선 1차 투표에서는 하라가 26.85% 득표율로 1위를 차지했지만, 2~5위를 기록한 후보들이 모두 보수·우파 성향이어서 결선에서 우파 표가 결집될 경우 카스트가 최대 70%에 달하는 지지를 확보해 승리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4위였던 요하네스 카이세르 후보도 패배 인정 연설에서 “정권 교체를 위해 카스트 후보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대선에서만 해도 좌파 성향의 가브리엘 보리치가 대통령에 당선됐던 점을 고려하면, 불과 4년 만에 민심이 우파로 이동한 셈이다.
지난달 치러진 아르헨티나 중간선거에서는 하비에르 밀레이 대통령이 이끄는 우파 집권당이 좌파 야당을 상대로 압승을 거두며, 밀레이 대통령이 후반기 국정 동력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 같은 달 볼리비아 대선에서는 20년에 걸친 좌파 집권이 막을 내리고, 중도 우파 성향의 로드리고 파스 페레이라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남미에서 새롭게 부상하는 우익 세력은 좌파 정부가 망쳐 놓았다고 여겨지는 치안과 경제를 되살리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블룸버그는 “이는 한때 베네수엘라의 고(故) 사회주의 아이콘 우고 차베스와 같은 지도자들이 미국의 제국주의를 맹렬히 비난하며 지지층을 결집시키던 지역에서 나타나는 뚜렷한 변화”라며 “차베스는 석유 수익을 통해 부를 재분배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실제로는 수익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았고 부패가 악화됐으며 원자재 가격 하락으로 빈곤이 급증했다”고 전했다.
차기 칠레 대통령으로 유력한 카스트가 허술한 국경 관리와 국가 엘리트에게만 유리한 것으로 여겨지는 경제 시스템에 대한 대중의 분노를 선거 전략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카스트는 18개월 동안 60억 달러(약 9조원)의 공공 지출을 삭감하고, 대규모 이민자 추방을 추진하겠다는 등의 공약을 내걸었다. 뉴욕대 정치학자 파트리시오 나비아는 “유권자들은 경제 모델이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작동하기를 원한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과의 친분도 남미 우파 세력 부상의 배경으로 꼽힌다. 아르헨티나의 밀레이 대통령은 중간선거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지원을 등에 업고 승리를 거뒀다. 미국은 중간 선거 직전 아르헨티나에 사상 최대 규모인 400억 달러(약 57조 원)를 지원하겠다고 약속했으며, 트럼프 대통령은 밀레이가 패배할 경우 “우리는 아르헨티나에 관대하지 않을 것”이라며 지원 중단을 경고했다. 블룸버그는 트럼프가 밀레이를 전폭적으로 지지한 것이 이웃 국가들에게 “트럼프와의 공조가 경제적 이익을 가져올 수 있다”는 강력한 신호를 보냈다고 평가했다.
내년에 예정된 다른 남미 국가들의 선거에서도 미국과의 관계가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미국은 최근 베네수엘라와 콜롬비아 앞바다에서 마약 운반선을 잇따라 폭파하는 등 남미 지역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또한 내년 콜롬비아, 페루, 브라질 등에서 선거가 치러질 예정인데, 페루의 전 리마 시장 라파엘 로페스 등을 비롯한 보수 후보들은 범죄 척결, 반(反)국가주의, 친미(親美) 노선을 핵심 정책으로 내세우고 있다.
김송이 기자(grape@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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