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가 박은선 ‘치유의 공간’展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박은선 조각가 개인전 ‘치유의 공간’에 ‘무한 기둥-확산’(2025)이 전시돼 있다. 뒤로 보이는 작품은 ‘큐브’(2025). 이외 대표작들과 회화 작업을 전시에서 볼 수 있다./가나아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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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 빛을 껴안았다. 돌을 부수고 쌓아 올리던 작가가 같은 돌로 곱고 작은 구슬을 빚었다. 대리석 구슬을 뚫고 나온 조명의 빛이 온화하게 주변을 밝혔다. 유럽에서 각광받는 한국인 조각가 박은선(60)의 신작 ‘무한 기둥-확산’이다.
박은선이 오랜만에 국내 개인전으로 찾아왔다. 조각 22점과 회화 19점 등 총 41점을 선보이는 전시 ‘치유의 공간’이 지난달 12일부터 내년 1월 25일까지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리고 있다.
박은선은 ‘조각의 성지(聖地)’로 불리는 이탈리아의 도시 피에트라산타에서 30년 넘게 활동하며 ‘명예 시민’ 자격을 받은 작가다. 유럽 곳곳에서 전시를 열었고, 지난 5월 피에트라산타에 한국인 최초로 자신의 이름을 딴 미술관 ‘뮤지엄-아틀리에 박은선’을 개관했다. 이고르 미토라이 등 세계적 예술가의 미술관들과 함께 이 도시의 명맥을 잇고 있다.
이번 개인전은 수직으로 솟아오르는 그의 작품이 주는 쾌감을 느껴볼 기회다. 박은선의 대표 스타일은 ‘기둥’. 1993년 무작정 이탈리아로 이주한 그는 삶이 어려워 숨통 좀 트고자 돌을 깼다. 두 가지 색깔의 깨진 돌을 번갈아 쌓았다. 하늘에 닿을 듯 높고, 고뇌만큼 묵직한 작품이 나왔다. 작년 피에트라산타에선 높이 11m의 압도적인 조각 ‘무한 기둥-성장’이 전시되기도 했다.
이번 개인전에는 5m 기둥 작품 등 무게 8t의 조각 3점이 등장했다. 전시장에서 만난 박 작가는 그 중 하나인 화강석 조각 ‘생성-진화’를 보며 말했다. “이 조각은 세 개의 묵직한 조각이 쌓여 있는 형태예요. 위태로우면서도 안정감이 있죠. 제 인생이 그랬어요. 아내와 뱃속 아기를 데리고 이탈리아에 가서 위태로운 생활을 했어요. 근데 항상 제가 같은 자리에 서 있더라고요. 결국 살아남는 모습이 아름다운 그런 작업을 하는 것 같아요.”
그런 박은선에게 최근 변화가 나타났다. 이전 작품들과 확연히 다른 신작들을 이번 개인전에서 대거 선보인다. 색색깔의 대리석 구슬이 연결돼 기둥을 이루는 ‘무한 기둥-확산’ 등이다. 과거 작품들보다 부드럽고 유연한 인상을 준다. 자연 그대로의 소재와 색을 중시하는 그의 작품 세계에서 ‘이단아’ 같기도 한 존재. 그는 “예전엔 조명을 쓰는 걸 극도로 싫어했는데 어느새 제가 빛을 넣고 있더라”며 “코로나로 봉쇄된 기간에 집에 있으면서 새로운 걸 봤다. 먼저 가족이 보였고, TV를 통해 힘든 사람들이 보이더라. 내가 존재할 수 있게 해주는 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작업이 뭘까 생각했다”고 했다. 그가 돌에 희망을 담고 싶어진 것이다.
그는 “유럽에 가서 지금까지 2000점 이상의 조각을 했고 작업장에 남아 있는 100여 점을 뺀 나머지는 모두 구입해 주신 분들한테 있는 것”이라며 “그분들을 위해 미술관도 만들고 열심히 해나가고 있다”고 했다. 한국 관객도 더 자주 만나고 싶다고 했다. 전남 신안에는 ‘인피니또 미술관’이라는 이름으로 내년 박은선 미술관이 개관을 앞두고 있다. 이번 전시에선 홍라희 리움미술관 명예관장이 그의 조각 여러 점을 구입하기도 했다.
이날 박은선은 대리석 구슬들을 천장에 매달아 정육면체 형태를 만든 신작 ‘큐브’를 팔로 밀었다. 돌들이 부딪치는 소리를 내며 흩어졌지만 곧 원래 자리를 찾았다. “30년을 달렸고 운이 좋으면 앞으로 30년을 또 달릴 겁니다. 지켜봐 주세요.”
[김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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