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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5 (금)

    뛰는 규제 위에 나는 담배업체…‘유사 니코틴’ 활개 [건강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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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겨레

    유사 니코틴 제품은 중독성과 자극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위험한 첨가물을 함께 사용하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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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담배와의 전쟁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전자담배와 액상담배의 등장으로 시장 판도가 바뀌면서 규제 범위도 점차 넓어지고 있다. 지난달 말 담배사업법 개정안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했다. 기존에는 규제 사각지대에 있던 합성 니코틴을 담배 규제법으로 묶는 것이 골자다. 이는 1988년 법 제정 이후 신종 담배 등장에 따른 규제 공백을 메우기 위한 지속적인 법적 노력의 결과다. 앞서 2014년 1월에는 ‘증기로 흡입하는 것’을 추가하여 전자담배(액상형, 궐련형)가 처음으로 법적 담배에 포함됐으며, 이후 규제를 회피하기 위해 연초 줄기·뿌리 추출 니코틴이 사용되자 다른 법에서 먼저 과세 대상으로 규정되기도 했다.



    그러나 규제가 강화되는 만큼 담배 시장의 변화 속도도 만만치 않다. 합성 니코틴마저 규제 대상이 되자 이와 구조가 비슷한 화학물질인 ‘유사 니코틴’ 제품들이 규제의 빈틈을 파고들며 시장 점유율을 빠르게 높이고 있다. 유사 니코틴은 니코틴과 화학적 구조가 유사해 니코틴과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지만, 법적으로는 니코틴으로 분류되지 않는 물질이다. 가령 유사 니코틴의 대표 격인 메틸 니코틴을 살펴보자. ‘6-메틸 니코틴’이라고도 불리는 메틸 니코틴은 니코틴에 메틸기(-CH3)가 결합한 변형체다. 메틸 니코틴은 니코틴의 10분의 1 농도로도 니코틴과 비슷한 효과를 낸다. 하지만 일부 업계에서는 메틸 니코틴이 성분이 들어 있는 제품을 팔면서 ‘무니코틴 제품’이라 소개하면서 팔고 있다. 소비자를 오도하는 것이다.



    지난해 5월, 미국에서 말보로를 제조하는 알트리아는 미국식품의약국(FDA)에 보낸 서한을 통해 베이프 및 기타 니코틴 대체 제품에서 ‘6-메틸 니코틴’ 사용이 확산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거대 담배 기업이 주목할 만큼 유사 니코틴의 시장 영향력이 커지고 있음을 방증하는 대목이다.



    국내 금연 전문가들도 유사 니코틴 시장의 폭발적 성장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지난달 28일 열린 대한금연학회 추계학술대회의 핵심 주제는 새로운 환경 변화에 따른 규제 정책 대응 방안이었다. 이날 토론자로 나서기도 했던 신호상 국제특성분석연구소 고문은 “담배사업법 통과는 환영하지만, 여전히 유사 니코틴은 규제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유사 니코틴의 유해성에 대한 우려가 전세계적으로 커지고 있는 만큼 국내에서도 선제적으로 유해성 검증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사 니코틴은 말 그대로 니코틴을 본떠 만든 인공 니코틴이다. 화학구조를 일부 변형해 규제를 피하고 있지만, 최근 연구들은 유사 니코틴의 위험성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지난 8월 세계적인 학술지인 ‘란셋 호흡기의학 저널’에도 유사 니코틴의 위험성을 지적하는 투고문이 실렸다. 프랑스 생테티엔 국립광업학교의 제레미 푸르셰 교수는 “현재 유사 니코틴의 인체 내 약물적 특성은 충분히 규명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초기 독성학적 분석에서는 여러 중대한 우려가 제기된다”고 경고했다.



    우선, 유사 니코틴은 시험관 환경 실험에서 인간 기관지 상피세포에 손상을 일으키고 산화 스트레스를 증가시키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호흡기계 안전성에 잠재적 위험 신호로 해석될 수 있다. 또한 유전자 변형 가능성과 관련해서도 염증 및 발암 과정과 연관된 특정 유전자 발현 경로의 변형이 관찰돼 장기적 위해성 평가가 요구된다.



    신 고문은 “유사 니코틴은 니코틴과 비슷한 타격감(담배 맛)을 제공한다. 일부 연구에서는 유사 니코틴이 니코틴 수용체에 대한 약리적 효능이 최대 28배 강하다고 보고돼 중독성 증가와 예상치 못한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유사 니코틴 제품은 중독성과 자극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위험한 첨가물을 함께 사용하고 있다. 유사 니코틴 또는 무니코틴 제품의 자극성을 강화하기 위해 설탕보다 1만 배 강한 감미료 네오탐, 멘톨보다 강한 쿨링제인 WS-23 등이 사용되고 있다. 이러한 첨가물은 청소년을 유혹하고 중독을 심화시키는 주범으로 지목된다.



    이처럼 안전성이 제대로 검증되지 않았음에도 일부 제품은 마치 안전성, 웰빙, 금연 보조 효과가 검증된 것처럼 홍보되고 있다. 기존 제품보다 더 젊고 광범위한 소비자층을 대상으로 공격적인 마케팅을 하고 있다. 국내 온라인 쇼핑몰에서도 유사 니코틴 제품들이 ‘무니코틴’ ‘흡연 욕구 저하 제품’ ‘흡연 습관 개선 제품’ 등으로 광고되며 광범위하게 유통되고 있다.



    이처럼 유사 니코틴의 위험성이 커지면서 규제를 요구하는 이도 늘고 있다. 지난해 5월 미국 주요 공중보건단체 6곳이 공동으로 유사 니코틴 제품 규제가 공중보건의 긴급 과제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 단체들은 성명에서 유사 니코틴이 청소년에게 미치는 악영향을 막기 위한 신속한 규제를 촉구했다. 성명에 참여한 단체들은 미국암협회 암행동네트워크, 미국심장협회, 미국폐협회, 담배 없는 아이들을 위한 캠페인(CFTFK), 전자담배 반대 부모모임, 진실 이니셔티브 등이다.



    합성 니코틴 규제 법안을 주시해온 금연학계와 전문가들은 유사 니코틴 제품의 무방비 유통이 청소년 건강에 심각한 위협이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전문가들은 이번 합성 니코틴 규제를 시작으로, 인체에 흡입되는 모든 제품에 대한 포괄적인 독성 및 중독성 관리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신 고문은 “시장에서 계속 규제를 피하려는 물질들이 나온다”며 “일일이 법으로 규제하기 힘든 만큼 능동적으로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식품의약품안전처 등 정부 기관에서 시중 유통 물질들을 적극적으로 시스템 안에서 관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윤은숙 기자 sug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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