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대 대법원장이 5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전국 법원장 정기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이승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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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여당이 강하게 추진하는 사법제도 개편안에 전국 법원의 수장들이 한목소리로 반대 의견을 낸 것은 이번 사안이 법치주의와 사법부 독립 자체를 뒤흔드는 위협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5일 대법원에서 열린 전국법원장회의 정기회의에 참석한 일부 법원장은 "여당이 위헌적인 법안을 추진하는 데 대해 사법부가 명확한 입장을 내야 한다"며 강경한 발언을 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회의에 앞서 "최근 사법부를 향한 국민의 기대와 요구는 그 어느 때보다 크고 무겁다"며 "이럴 때일수록 헌법이 우리에게 부여한 '공정하고 신속한 재판을 통한 국민의 기본권 보장'이라는 사명을 묵묵히 수행해내는 것만이 국민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말했다.
전국법원장회의는 사법행정의 컨트롤타워인 법원행정처장을 의장으로 각급 법원장들이 모여 사법행정 현안을 논의하는 고위 법관 회의체다. 통상 매년 12월에 정기회의를 개최하고, 필요시 임시회의를 연다. 지난 9월 임시회의에서도 여당의 사법제도 개편에 대한 우려가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회의를 앞두고 법원행정처는 각 법원장들에게 사법제도 개편안에 대한 의견을 모아달라고 요청했다.
당초 이번 정기회의에선 사법보좌관의 전문성 강화를 위한 인사제도 개편 방안, 법관 윤리 제고를 위한 감사 강화 방안, 예산 전문화 및 집행 과정 유의점 등 3가지 사안을 논의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최근 내란전담재판부 설치, 법 왜곡죄 신설 등이 국회에서 급물살을 타면서 정치권의 사법제도 개편안에 대해 의논하기로 했다.
법원장들은 입장문을 통해 "위헌적 비상계엄이 국민과 국회의 노력으로 해제돼 헌정질서가 회복된 데 대해 깊은 감사를 표한다"며 "비상계엄 재판에 대한 깊은 관심과 우려를 엄중하게 인식한다"고 밝혔다. 다만 "(여당이 추진하는) 법안들에 대한 위헌 소지와 그로 인해 재판이 지연되거나 무위가 될 염려도 논의했다"고 신중론을 제기했다.
이미 1심 재판이 대다수 마무리 중인 비상계엄 사건에 전담재판부를 구성하면 신속한 판결에도 오히려 해가 되고, 법안이 위헌으로 드러날 경우 판결이 취소돼 단죄가 불가능해질 수도 있다는 논리다. 법 왜곡죄 역시 검사나 판사에 대한 고소·고발이 난무해 사건 처리가 지연될 우려가 있다.
이날 법원장 회의를 필두로 사법부는 내부 의견을 하나로 모으고 국민을 설득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오는 8일에는 전국 법관 대표들이 모이는 전국 법관 대표회의가 사법연수원에서 열린다. 각급 법원에서 선출된 대표 판사들이 모여 사법행정과 법관 독립에 관해 의견을 표명하거나 건의하는 자리다. 바로 뒤이어 9~11일 사흘 동안은 법원행정처가 '국민을 위한 사법제도 개편 공청회'를 연다. 법조계, 학계, 언론계, 시민사회단체 등 전문가들과 논의를 거쳐 사법부의 입장을 설명한다는 구상이다.
여당은 이날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를 포함한 사법제도 개편안을 연내 처리한다는 방침을 다시 확인했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조희대 대법원장이 이재명 대통령과의 5부 요인 오찬에서 사법제도 개편 신중론을 편 것을 두고 "사법개혁에 대한 의지가 없음을 보여줄 뿐"이라며 "연내 사법개혁을 완수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내란·외환죄 형사재판은 위헌법률심판 제청이 접수돼도 재판을 멈추지 않도록 하는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을 상정해 심사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내란전담재판부가 위헌 시비에 걸리더라도 재판을 밀어붙이겠다는 것이다.
[박홍주 기자 / 진영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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