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석우 기자가 한 다세대주택에서 쿠팡 프레시백을 회수하고 있다. 프레시백은 배송 물품이 있는 곳에서 회수하면 건당 100원, 배송 물품 없이 단독으로 회수하면 건당 200원이다. 이종근 선임기자 root2@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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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 잘못됐다는 느낌이 왔다. 오른발목 안쪽 근육에서 전기에 감전된 듯 찌릿한 감각이 올라왔다. 곧 시큰거리는 통증이 시작됐다. ‘고작 5일 일했을 뿐인데 벌써…’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몸은 이미 망가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땅에서 50㎝ 정도 높이에 있는 1t 트럭 조수석에서 차가 멈출 때마다 튀어나가듯 점프해 오른발로 바닥을 디디는 동작을 닷새 동안 수백 번 반복했기 때문이다. 몸은 더는 버틸 수 없을 때가 돼서야 통증이라는 신호를 준다는 사실을 새삼 다시 깨달았다. 쿠팡 심야배송 5일차, 발목이 고장 났다.
몸무게 50㎏이 안 되는 43살 택배기사
2025년 11월10일부터 22일까지 기자는 쿠팡 택배노동 보조기사로 일했다. 11월10일 밤부터 16일 아침까지 6일 동안은 서울 송파구에서 심야배송을 하고, 하루 쉰 뒤 11월17일부터 22일까지 6일 동안은 강남구에서 주간배송을 했다.
현장에 직접 뛰어든 까닭은, 최근 쿠팡 등에서 심야노동을 하던 택배기사들이 잇따라 숨지는 사고가 벌어지면서 민주노총 전국택배노동조합이 ‘0~5시 초심야 배송 제한’과 ‘주간 2교대제’를 제안한 뒤 ‘새벽배송 금지 논란’이 거세게 일었기 때문이다. 2025년 9월 더불어민주당과 국토교통부, 쿠팡 등 택배업계와 노조·시민단체가 함께 꾸린 ‘택배 사회적 대화 기구’에서도 심야배송 보편화로 인한 택배기사의 안전과 건강 문제가 논의되고 있다.
이에 기자는 최소 일주일씩 심야배송과 주간배송을 직접 해보며 현장의 노동 실태를 파악하는 것과 동시에, 직업환경전문의인 김현주 이화여대목동병원 교수의 조언을 받아 24시간 활동혈압계와 수면을 기록하는 액티그래프, 체온을 측정하는 바이탈링 등을 착용하고 신체 변화와 수면 질 등의 건강상태를 수치로 확인해보기로 했다.
2025년 11월13일 서울 송파구에서 심야배송을 하는 한겨레21 류석우 기자가 휴대전화로 배송지와 물품 등을 확인하며 뛰어가고 있다. 이종근 선임기자 root2@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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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인 11월10일 저녁 8시30분께, 장지동 동남권 물류단지 안에 있는 송파1캠프 앞에 도착해 쿠팡 심야배송 기사 김호준(43·가명)과 만났다. 쿠팡 배송 5년차라는 김호준은 깡마른 체격이었다. 검은색 운동화를 신고 트레이닝복 바지와 기능성 티셔츠를 입었는데, 티셔츠 위에 자세 교정 조끼를 착용하고 있었다. 택배 물품을 들어 올리는 작업을 반복하면서 자꾸 등이 굽는 것 같아 자세 교정 조끼를 입었다고 했다.
“진짜, 진짜 너무 힘든데 괜찮아요?”
김호준은 지난 2년 동안 ○○○라우트(배송구역)에서 심야배송을 해온 퀵플렉서다. 퀵플렉서는 쿠팡 소속이 아니라 쿠팡이 배송 업무를 위탁한 대리점과 계약한다. 쿠팡이 제시하는 구역을 배정받아 쿠팡으로 접수된 택배 물품을 배송하는 노동자인데, 형식상으로는 노동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개인사업자였다. 전국에 김호준과 같은 쿠팡 퀵플렉서가 2만여 명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들이 쿠팡 배송 물량의 대부분을 맡는다. 김호준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기자에게 물었다. “진짜, 진짜 너무 힘든데 괜찮아요?”
짧은 인사를 나눈 뒤 김호준의 트럭을 타고 지하에 있는 송파1캠프로 내려갔다. 2만㎡ 정도 되는 캠프를 둘러보니, 10t 트럭이 주기적으로 택배 물품이 쌓인 롤테이너(바구니 모양의 운반차)를 캠프 중앙으로 운반하고 있었다. 그러면 쿠팡의 물류·배송 전문 자회사인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CLS) 직원 서너 명이 롤테이너를 트럭에서 땅으로 내린 뒤 지역별로 1차 분류를 해둔다. 이후 택배기사들이 자신의 트럭 앞으로 이 롤테이너를 끌고 가 배송 물품을 분류하는 시스템이다.
롤테이너 하나에 기사 2명이 배송하는 지역의 물품이 섞여 있다. 한 개의 라우트는 보통 A·B·C·D 구역으로 나뉘는데, 기사 2명이 구역을 2개씩 담당한다. 김호준이 능숙하게 자신이 맡은 C와 D 구역 물품을 분류했다. 기자도 옆에서 운송장에 C와 D가 적힌 물품을 빼냈다. 여러 번 반복한 이 작업에 1시간 정도 소요됐다. 첫 번째 롤테이너 분류 작업이 다 끝났을 때, A와 B 구역을 담당하는 택배기사가 출근했다. 그를 보는 김호준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기자가 A·B 구역 택배기사에게 물품을 가져다주려고 하자, 김호준이 짜증 섞인 어조로 “우리가 그것까지 가져다줄 필요는 없다”며 제지했다. “늘 늦게 와요. 결국 일찍 오는 사람만 일을 더 하게 되잖아요. 감정이 쌓일 수밖에 없어요.”
롤테이너(대형 끌개)에 가득 담긴 배송 예정 물품들. 같은 라우트(배송 지역)를 담당하는 택배기사들이 다시 이 물품을 분류해 각자의 트럭에 적재한다. 류석우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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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빛 없이…깽깽이걸음으로 배송지 찾기
김호준과 기자가 ‘타는’(기사들은 배송 구역을 맡는 걸 ‘탄다’고 표현했다) ○○○라우트는 캠프에서 약 5㎞ 거리에 있었다. 이 라우트는 100% 지번으로 구성돼 있다. 배송지가 빌라나 일반주택 등이어서 도로명주소로만 찾을 수 있는 곳을 ‘지번으로 구성’됐다고 표현한다. 아파트가 없다는 얘기다. 김호준은 세 군데 정도 동반 배송을 하며 요령을 일러줬다. 그 뒤부터는 쌩하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기자도 홀로 배송에 나섰다. 배송 물품을 받아들고 필로티 구조의 빌라 공동현관을 향해 달렸다. 그러면서 눈을 부지런히 움직여 빌라에 쓰인 번지수와 배송 물품 번지수를 확인했다. 그 뒤론 공동현관문 비밀번호가 필요했다. 쿠팡 택배기사들이 이용하는 ‘쿠팡 플렉스’ 앱을 켜고 이 주소지 공동현관 비밀번호를 확인하는 순간, 몸이 균형을 잃고 기우뚱했다. 벽을 짚으려 했지만, 이미 두 손은 물품과 휴대전화로 여유가 없었다. 깽깽이걸음으로 겨우 넘어지지 않고 균형을 잡은 뒤, 발을 건 장애물을 보니 빌라 입구 주차장 뒷바퀴 턱이었다. 골목길의 가로등 불빛은 빌라 안쪽까지 비추지 못했다. 빌라 센서등이 켜지는 속도는 두 짐을 들고 엉거주춤한 자세로 뛰는 기자의 달리기 속도보다 느렸다.
그러나 김호준의 속도는 고장 난 센서등도, 어둠 속에 숨어 있는 주차턱도 줄이지 못했다. 그는 공동현관 비밀번호를 죄다 외우고 있었다. 심지어 도어록이 고장 난 빌라까지 파악하고 있었다. 김호준은 정말 날다람쥐처럼 빌라와 주택을 여기저기 오갔다. 김호준이 타는 라우트에 건물은 440개 정도 됐다. 그는 모든 건물에 다 가봤다고 했다. 쿠팡을 이용하지 않는 가구는 있어도, 쿠팡 물품이 한 개도 배송되지 않는 건물은 없었다.
하루에 432개 배송…1분도 못 쉬고
불행히도 이 구역은 엘리베이터가 있는 건물이 20~25%에 불과했다. 7층 건물인데 엘리베이터가 없는 곳도 있었다. 계단을 연달아 몇 번 오르자, 최저 4도까지 떨어진 초겨울 날씨에도 금세 땀이 났다. 배송 시작 10분 만에 입고 있던 패딩을 벗었는데, 그래도 반팔 티셔츠와 기능성 운동복 바지는 곧 땀으로 흠뻑 젖었다. 그렇게 첫 배송 1회전이 진행된 2시간30분 동안, 기자는 44가구에 53개 물품을 배송했다. 김호준이 배송한 수량의 절반 정도였다.
1회전이란 캠프에서 한 번 물량을 적재해 배송을 완료하고, 다시 캠프로 복귀하기까지의 한 사이클을 일컫는다. 이날 기자는 김호준과 함께 3회전 배송으로 모두 280가구 432개 물품을 배송했다. 그렇게 일을 마치니 아침 6시30분이 됐다. 일하는 10시간 동안 기자는 편도 5분 걸리는 캠프 이동 시간에만 겨우 숨을 돌릴 수 있었다. 김호준은 단 1분도 쉬지 않았다.
2025년 11월13일 서울 송파구에서 류석우 기자가 한 다세대주택에서 회수한 프레시백을 들고나오고 있다. 이 주택의 공동현관문 외부 센서등은 반응이 늦어, 건물 안으로 들어갈 때 문턱 등이 잘 보이지 않았다. 이종근 선임기자 root2@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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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화가 일주일도 안 돼 뜯겨나가고
쿠팡은 택배사 가운데 유일하게 다회전 배송을 한다. 심야는 3회전, 주간은 2회전이다. 하루를 여러 번 나눠 일정 시간까지 들어온 물품만 먼저 분류해 캠프로 보내는 시스템이다. 쿠팡 입장에선 더 빠르고 더 많이 배송할 수 있는 방법이지만, 택배기사들의 노동강도는 급격히 늘어난다. 하루에 똑같은 집에 많게는 세 차례나 배송해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1회전과 2회전 때는 싣고 나온 물품을 다 배송하지 못해도 시간에 맞춰 캠프로 복귀해야 한다. 그러나 3회전은 뒤가 없다. 아침 7시까지 1회전과 2회전에서 처리하지 못한 물량과 새로 받은 물량까지 모두 다 배송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피디디(PDD·Promised Delivery Date, 배송 마감 시간) 미준수로 대리점 평가가 낮아진다. 쿠팡은 PDD를 포함해 10개 항목을 두고 일정 기준에 미달하면 바로 계약을 해지하는 방식의 ‘클렌징 제도’를 운영해왔다. 이 제도가 노동강도를 급격히 높이면서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자 국회가 나섰고, 쿠팡은 2024년부터 이 제도를 없애겠다고 밝혔다.
현장에서는 제도의 이름만 사라졌을 뿐 여전히 마감 등에 대한 압박이 존재하고 있었다. 쿠팡은 에스엘에이(SLA·대리점 평가)라는 제도를 통해 대리점 재계약 여부를 결정하고 있다. 한겨레21이 대리점 대표만 접속할 수 있는 앱 ‘어드민’에 접속해보니 상단화면에 ‘위탁 조정 가능성이 높은 라우트’ 개수가 표시됐다. 마감 시간을 어기거나 수행률(배정된 물량 대비 실제 배송 건수) 등이 낮으면 언제든 대리점을 갈아치울 수 있다는 경고다. 김호준 같은 택배기사들이 단 1분도 쉬지 못하는 까닭이다. 송관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이 쿠팡 퀵플렉서 679명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벌인 뒤 2025년 10월 발표한 결과를 보면, 심야배송 택배기사의 평균 휴게시간은 22분이었다. 하지만 현장에선 10분도 쉬기 어려워 보였다.
기자가 심야배송을 한 6일 동안 일하는 시간만 계산했을 때 하루 평균 2만 보를 걸은 것으로 측정됐다. 보통 배송지 바로 앞까지 트럭을 타고 갔기 때문에 걸음수의 대부분은 계단을 오르내리면서 측정된다. 배송지는 지하 2층부터 지상 7층까지 다양했는데, 가장 많이 달린 날에는 300층을 넘게 오르내렸다. 123층인 롯데월드타워를 두 번 왕복해도 남는 정도다. 그렇게 뛰어다니자 1년 정도 한 달에 한두 번 러닝할 때 신은 게 전부였던 운동화의 왼쪽 앞코와 엄지발가락 쪽이 6일 만에 뜯어졌다. 김호준은 한 달 반에 한 번씩 운동화를 바꾼다고 했다. 우리가 사는 거리 곳곳엔 택배기사들의 운동화 가죽과 고무 부스러기가 떠돌고 있다.
p택배기사 이동 경로/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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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나나 1년에 1000개로 식사 때우기
김호준에게 “식사는 언제쯤 하느냐”고 물었다. “밥 먹을 시간 없죠. 배송 시간도 모자라는데요. 이렇게 안 쉬고 하다보면 금방 (아침) 7시 돼요.” 대신 트럭을 운전하면서 김호준은 바나나를 먹었다. 그는 1년에 바나나만 1천 개 정도 먹는다고 했다. “바나나가 열량이 높고 한번에 먹을 수 있으니까요. 이거라도 먹고 안 먹고 차이가 많이 나요. 3회전 가면 정말 힘이 없어서 (계단을) 못 올라가거든요.”
김호준의 트럭엔 물과 음료, 바나나가 담긴 작은 아이스박스가 있었다. 그 옆으로는 포도당 캔디와 초코파이, 당분이 높은 과자들이 어지러이 돌아다녔다. 김호준은 물을 마시지 않았다. 운전석 옆 음료거치대엔 늘 네모갑 커피우유가 꽂혀 있었다. 트럭에 음식을 보관하는 건 택배기사라면 특별하지 않은 일이다. 주간에 함께 일한 문지훈(46·가명)도 과자와 샌드위치, 빵이 가득 담긴 가방을 뒀다. 주간배송 기사 진선우(37·가명)의 트럭엔 잘못 배송해 본인이 값을 치른 김이 나뒹굴고 있었다.
쿠팡 심야배송 기사인 김호준씨의 트럭. 바나나와 커피, 이온음료와 각종 과자가 보인다. 김호준씨는 배송 중에 바나나를 주로 먹는다. 류석우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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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백 때문에 팔꿈치 다친 분 많아요”
찌이익, 찍. 퍽, 퍽.
1회전 배송을 마치고 캠프에 돌아오니 곳곳에서 비슷한 소리가 시간차를 두고 울렸다. 쿠팡이 신선식품 배송 서비스에 사용하는 다회용 보랭 가방인 프레시백의 찍찍이를 떼는 소리다. 기자도 장갑을 벗고 찍찍이를 떼어내다가 손가락 끝 피부가 벗겨졌다. 그만큼 찍찍이 접착력이 강했다. 김호준은 허리와 두 팔, 상체 전부를 활용해 순간적으로 힘을 주며 찍찍이를 뜯고 프레시백을 펼쳤다. 기자가 그 행동을 어색하게 따라하자 그가 한마디 했다. “이거 하다가 팔꿈치 다친 분들 많아요. 조심하세요.”
그렇게 프레시백 50개를 정리하는 데 30분이 걸렸다. 프레시백 안에는 아이스팩 외에 가정에서 버린 쓰레기도 많았다. 기사들은 상자 2개를 옆에 두고 아이스팩과 쓰레기를 나눠 담은 뒤, 쓰레기 상자는 수거장에 갖다버렸다. 주간배송 때는 이 작업에 더해 회수해온 반품에 스티커를 붙이고 분류하는 일까지 해야 한다. 프레시백 정리가 끝나면 다시 배송 물품을 분류해 싣는다.
“아이 씨, 너무하네.”
2회전 물량을 싣던 김호준이 휴대전화를 보다 소리쳤다. 3회전 예상 물량이 생각보다 많이 나온 것이다. “물량이 이렇게 나오면 안 돼요.”
1회전 예상 물량은 밤 9시께, 2회전은 밤 11시~11시30분께, 3회전은 새벽 1시~1시30분께 나온다. 이 예상 물량을 보고 대략 다음 회전의 물량 개수를 짐작해 동선과 시간을 배분한다. 말은 ‘예상 물량’이지만, 실제 물량은 늘 예상을 배신했다. 심야배송 기사들이 가장 꺼리는 건 마지막 3회전에 물량이 몰리는 상황이다. 아침 7시 마감을 맞추려면 정말 미친 듯이 뛰어다녀야 하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물량 비율이 좋게 나왔어요. 5 대 3 대 2가 적당하거든요. (3회전에 하루의 절반 정도 물량이 배정된) 이런 날은 망한 날이에요.”
6일 동안 3회전에 배정된 물량은 최대 150개까지 차이가 났다. 가장 빨리 배송이 끝난 날은 새벽 4시40분, 가장 늦게 끝난 게 아침 6시30분이었다. 물량이 많으면 택배기사들의 급여도 늘어나지만, 대다수 기사는 3회전에 물량이 몰리는 걸 반기지 않았다. 유독 3회전에 물량이 몰린 날에는 택배기사들로부터 “하, 이거 맞아?” “쿠팡 ××들” 같은 한숨과 푸념, 욕설이 쏟아졌다. 그러나 택배기사들이 할 수 있는 건 그뿐이었다. 그들은 쿠팡이 배정한 대로 무조건 배송을 마쳐야 했다. 그래야 이 일을 계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직접 경험해보니 쿠팡이 만든 거대한 압박 시스템이 달리기를 멈추는 기자를 밖으로 밀어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기사들과 함께 달리고, 또 달려야 했던 이유다.
류석우 기자가 서울 장지동의 쿠팡 송파1캠프에서 회수한 프레시백을 정리하고 있다. 프레시백 안의 아이스팩과 쓰레기를 정리하는 일도 쿠팡 택배기사의 몫이다. 류석우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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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지 않는 노동’ 먹고 점점 자라는 통증
6일 동안 하루 평균 약 380개 물량이 배정됐다. 기자는 하루 평균 129가구에 139개의 물품을 배송했다. 프레시백은 평균 30개 회수했다. 노동시간은 평균 9시간. 김호준은 평소 350~400개 물량을 홀로 소화한다. 김호준이 감당하는 물량은 심야배송 기사들 평균을 웃돈다. 앞서 언급한 송관철 연구위원의 실태조사에서 심야배송 기사들은 하루 평균 9.7시간 동안 일하며 351개 물품을 배송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간배송 기사들은 하루 평균 11.6시간 동안 일하며 399개 물품을 배송했다.
그동안 몸은 여러 차례 위험신호를 보냈다. 우선 발목 통증이 점차 심해졌다. 트럭에서 뛰어내리는 자세가 잘못됐나 싶어 김호준에게 통증 얘기를 꺼냈는데, 그때(5일차)야 알게 됐다. 그는 왼쪽 무릎에 3개, 오른쪽 무릎에 1개의 보호대를 착용하고 있었다. 등에도 통증이 왔다. 처음에는 결리더니 점점 더 통증 강도가 심해졌다. 결국 자세가 문제가 아니라, 쉬지 못하고 뛰어다니며 반복적으로 짐을 들고 내리는 노동 자체가 문제였다. 통증은 ‘쉬지 않는 활동’을 양분 삼아 점점 자랐다.
졸음운전 위기도 찾아왔다. 첫날 심야배송을 마친 뒤 땀이 식지도 않은 상태에서 퇴근하기 위해 차를 몰고 올림픽대로에 올랐는데, 도로에는 출근하는 차들로 가득했다. 혼잡한 도로 위 천천히 움직이는 차 안에서 땀이 식고 근육이 풀어지면서 눈꺼풀이 내려오기 시작했다. 정신을 겨우 부여잡고 창문을 내린 뒤 퇴근길 40분 내내 소리 내어 노래를 불렀다. 에너지음료 두 캔도 연달아 들이켰다. 그렇게 집에 도착하니 이번엔 잠이 완전히 달아났다. 밥을 먹고 은행까지 다녀온 뒤에야 잠들 수 있었다. 오전 11시였다. 몸의 리듬이 모두 망가졌다. 이틀차부터는 차를 두고 출근해야 했다.
잠자도 혈압이 떨어지지 않는 몸
심야배송 사흘차에 접어들자, 새벽 3~4시 사이에 두통이 찾아왔다. 첫 이틀 동안은 머리가 멍한 느낌이었는데, 사흘차부터는 머리를 끈으로 조이는 듯한 통증이 생겼다. 그런 두통이 찾아오면 직전의 대화나 생각도 금방 잊는 경우가 많았다.
주간배송으로 넘어와 배송 10일차 정도가 되면서, 심각하게 배송일을 중단해야 하나 생각하게 됐다. 두통이 점점 심각해졌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헬멧이 조여오는 것처럼 온 머리에 두통이 심해졌다. 숨은 잘 쉬어지는데도 숨이 막히는 것처럼 답답했다. 주간에 함께 근무한 택배기사 문지훈은 그런 기자에게 소염진통제를 건넸다. 그걸 먹으니 거짓말처럼 통증이 사라졌다. 그렇게 이틀을 더 버텼다.
정확한 두통의 원인은 알기 어렵지만, 24시간 혈압계로 측정한 데이터는 심야배송을 하는 동안 혈압에 문제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알려줬다. 사람은 잠잘 때 보통 혈압이 10~20% 떨어지는 게 정상이다. 그러면서 깨어 있는 동안 열심히 일한 심혈관계가 긴장 상태를 풀고 회복된다. 그런데 기자가 심야배송 4일차와 주간배송 4일차에 24시간 혈압을 측정해봤더니, 주간배송을 하고 밤에 잠잘 때는 평균 17% 정도 혈압이 떨어졌는데, 심야배송을 하고 잠잘 때는 혈압이 13%밖에 떨어지지 않았다. 혈압이 충분히 떨어지지 않으면 심장과 혈관이 충분히 회복되지 못하면서 심근경색이나 심뇌혈관 합병증 위험이 높아진다.
“이 새끼들 다 알면서 일부러 안 하는 거야.”
주간배송을 할 때 만난 옆 라우트 택배기사가 말했다. 그는 쿠팡에 직접 채용된 택배기사인 ‘쿠팡친구’(쿠친)로 일하다가 퀵플렉서로 전환한 기사다. 그는 심야노동이 혈압에 영향을 준다는 걸 알면서도 쿠팡이 퀵플렉서를 방치하고 있다고 말했다. “걔네가 혈압이 문제라는 걸 모르겠어? 쿠친 때는 회사에서 정기적으로 혈압을 체크해서 수치가 높으면 밤에 일 못하게 했다니까. 그렇게 다 하는데 뻔히 알면서 (퀵플렉서한테는) 안 하는 거잖아.”
실제 쿠팡CLS는 심야에 일하는 직원을 대상으로 특수건강진단을 하고 있다. 하지만 퀵플렉서는 쿠팡 소속 직원이 아니고 대리점 직원이기에 건강진단을 할 수 없다며 건강검진 비용 지원만 한다. 그러나 이 건강검진도 꺼리는 기사가 많다. 혹여나 쿠팡에서 건강 관련 정보를 수집해 재계약에 불이익을 줄 수 있다는 불신 때문이다.
“심야노동에 적응이 어디 있어요”
택배기사들은 이렇게 위험한 심야배송을 왜 선택하는 걸까. 김호준은 “신경 쓸 게 하나도 없어서” 주간배송보다 심야배송을 선호한다고 했다. “주간은 진짜 헬이에요. 일단 주차를 못하고, 엘리베이터도 못 타요. 택배기사들이랑 마주치지 배달하는 분이랑 마주치지. 생각보다 고충이 많아요.”
또 다른 쿠팡 퀵플렉서 김진영(38·가명)은 “(엘리트 스포츠) 운동을 하는 딸과 청약받은 아파트에 들어가는 돈이 많아서 많이 벌어야 하기 때문에” 심야배송을 선호한다고 했다. “야간의 이점은 단가가 높다는 거예요. 어차피 하는 거 돈이라도 많이 벌어야 하니까요. 딱 5년 예상하고 있어요. 그때까지만 쿠팡 택배가 호황을 유지해줬으면 좋겠어요.”
김정현(34·가명) 역시 “솔직히 단가 때문”이라고 했다. “주간배송이랑 물품 1개당 100~200원 차이 나요. 마감 시간을 늘리거나 프레시백 같은 업무를 개선하는 게 우선이지, 심야배송을 없애려고 하니까 문제죠.”
심야배송과 주간배송을 모두 거친 뒤 기사들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게 됐다. 심야배송의 장점은 높은 단가도 있지만 운전과 주차, 배송 등 전 과정에서 업무 스트레스도 적었다. 다만 그것은 기사들을 더 빨리 움직이게 하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일하는 시간은 심야배송이 더 짧지만, 시간 대비 더 많은 물량을 배송하고 더 많이 움직이게 한다. 최대한의 효율로 노동강도를 극한으로 올려 최대한 많은 물량을 처리하는 것, 그것이 심야배송의 현실이다. 이 삶에 택배기사의 건강이나 개인의 사정이 들어갈 여백은 없다.
실제 심야배송을 하는 택배기사들은 모두 수면의 질이 나빴고, 건강 문제를 시한폭탄처럼 안고 있었다. 김호준은 “잠을 항상 한 번에 쭉 못 자고 꼭 중간에 한 번씩 깬다”고 했다. 김진영은 “최근 건강검진에서 혈압과 요산 수치가 높게 나왔다”고 했다. 김정현은 “체하는 일이 많아졌다”고 했다. 한식 음식점을 운영하다 코로나19 때 폐업하고 2022년부터 심야배송을 하고 있는 박창수(44·가명) 역시 “잠은 4시간 정도만 자면 무조건 깨버려서 그게 많이 힘들다”며 “작년에 머리가 너무 아파서 병원에 갔더니 혈압이 높다고 나왔다. 뒷골이 땅기면서 욱신욱신 아팠다”고 말했다. 70㎏이었던 몸무게가 63㎏까지 빠진 박창수는 2024년 7월 고혈압 진단을 받았다.
현장 택배기사들은 사실상 체념 상태였다. “(심야노동에) 적응이란 건 없죠, 버틸 뿐. 그러다 어떤 일이 생기거나 계기가 있으면 (건강 악화가) 한번에 오겠죠.”(김호준) 주간배송 기사 진선우는 이렇게 말했다. “대부분 (자기 몸 상태를) 잘 몰라요. 그러다 한순간에 오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쓰러질 때까지 모르는 거죠.” 극한의 효율을 추구하는 쿠팡의 배송 시스템은 시나브로 기사들의 몸에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 이 시스템은 그래서 위험하다.
류석우 기자 raint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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