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툰의 폭발적 성장은 역설적으로 상업적인 ‘일상툰’의 종말을 의미한다. 과거 웹툰 시장에서 일상툰은 꽤 거대한 지분을 차지했다. 나와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작가가 겪는 소소한 불행과 행복에 독자들은 환호했다. “나만 이렇게 사는 게 아니구나”라는 확인이 주는 위안, 즉 보편적 공감이 핵심적 흥행 요인이었다. 그렇지만 냉정히 말해, 일상툰 작가와 독자를 가르는 유일한 차이는 작화(作畫) 능력뿐이었다. 누구나 겪는 일을 만화라는 형식으로 가공하는 기술이 전부였던 거다.
그런데 인공지능(AI)이 등장하며 판이 뒤집혔다. AI가 그림을 사실상 자동으로 찍어내자, 개개인이 모두 작가가 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레거시 미디어의 간택을 받아야만 목소리를 낼 수 있던 이들이 소셜 미디어 시대에 각자의 마이크를 쥐게 된 과정과 유사하다. 누구나 웹툰을 생성할 수 있게 되니, ‘누구나 겪는 평범한 이야기’는 되레 상품성을 잃었다. 그렇게 과잉 공급되는 일상툰 시장에서 살아남은 건 대체 불가능한 독특한 사연과 강렬한 경험을 담은 작품들이다.
평생 법전만 파고들던 변호사가 자신이 담당한 적나라한 이혼 소송의 민낯을 그리고, 전직 대통령의 손자가 가문의 치부를 웹툰으로 폭로하는 세상이 됐다. 남들이 해보지 못한 경험, 기술로 복제할 수 없는 고유한 서사가 없다면, 자칫 기계가 우리를 흉내 낼 수도 있다. 이를 피하려면 더욱 인간만의 고유한 경험에 천착할 수밖에 없다. 역설적이게도 AI 기술의 발달이 인간을 더욱 가혹한 인문학적 성찰로 내몰고 있는 꼴이다. AI의 보편화 덕에 ‘인간성’이 극대화되는 시대가 온다고 할까. 내년엔 독자 여러분께서도 더욱 풍부한 인간적 경험으로 가득한 해를 보내시길 바란다.
[박한슬 약사·‘숫자한국’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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