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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1.01 (목)

    이슈 질병과 위생관리

    “기억 안 난다”는 쿠팡 전·현직 대표, 산재 은폐에 단계마다 개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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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겨레

    해롤드 로저스 쿠팡 임시대표가 31일 서울 여의도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 열린 쿠팡 침해사고 및 개인정보 유출, 불공정 거래, 노동환경 실태 파악과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을 위한 청문회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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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롤드 로저스 현 쿠팡 한국법인 대표가 국회 청문회에서 물류센터 노동자 고 장덕준씨의 사망 사실을 언론 보도로 알았다고 밝혔지만, 실제로는 노동청 및 유족 대응 과정 전반에 관여하며 관련 내용을 보고받거나 지시한 정황이 추가 확인됐다. 이 과정에는 박대준·강한승 전 쿠팡 한국법인 대표도 함께 보고를 받거나 논의에 참여한 것으로 드러났다.



    31일 한겨레가 확보한 쿠팡 임직원 간 오간 전자우편 원본 파일(eml)을 보면, 로저스 대표와 박 전 대표는 2020년 고 장덕준씨 과로사 대응을 위한 내부 논의 과정에 깊숙이 참여한 정황이 뚜렷하다. 우선 당시 쿠팡 업무지원총괄 ㅇ변호사는 2019~2020년 고인의 월별 근로일수를 정리한 자료를 로저스 대표와 박 전 대표에 보냈다. 고인이 사망한 11일 뒤인 2020년 10워23일 보낸 전자우편에서다.



    ㅇ변호사는 자료와 함께 “컨펌(확인)해주면 시행하겠다”며 “어제 회의에서 결정된 내용을 바탕으로 고인의 모친에 대해 아래와 같이 대응하려고 한다. 2020년 데이터를 먼저 제공하고 모친의 요청이 있을 경우 2019년 데이터도 제공한다”고 썼다. 로저스 대표와 박 전 대표가 장덕준씨 과로사 대응 논의에 단순 참여를 넘어 대응 전략과 실행 방침을 확정하는 데도 참여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하루 5만보를 걸었다”는 유족의 주장을 반박하는 증빙자료를 준비하는 과정에도 로저스 대표와 박 전 대표가 모두 관여한 정황이 확인된다. ㅇ변호사는 같은 해 11월6일 로저스 대표와 박 전 대표는 물론, 강한승 전 대표 등에게 보낸 전자우편에서 고인과 같은 업무를 한 직원의 만보기 측정 결과를 찍은 사진을 첨부했다. 그러면서 이를 근로감독관에게 제출해도 되는지 확인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자 전자우편 수신자인 강 전 대표는 “이 자료를 그대로 제출해도 괜찮지만, 해당 측정치는 걸음 수 측정에 동의한 근로자가 자발적으로 제공한 것임을 감독관에게 명시해달라”고 회신했다. 로저스 대표는 영상도 함께 제출할 것을 권하는 한편 “강 전 대표와 논의했고 조건부로 이 데이터를 공개하는 데 이견이 없다”고 답했다.



    이밖에도 쿠팡은 같은 해 10월 23∼25일에 걸쳐 장씨의 사망 전 근무 내역이 담긴 폐회로티브이(CCTV)를 분석했는데, 이 과정에서 전자우편으로 영상 검수 ‘체크리스트’를 공유했다. 로저스 대표와 박대준 전 대표 역시 ‘참조인’(CC) 자격으로 이를 수신했다. 공유된 점검항목은 △체온측정·대화 등 타인과 모든 상호작용, △물 마시기·화장실 이용·식사·잡담 등 모든 휴식시간 △작업 속도와 강도 △앉거나 서 있는 시간 △구부정한 자세·둔한 동작·거친 호흡 등 질병이나 탈진의 징후 △눈에 띄게 땀을 흘리는 모든 시점 △휴대전화를 확인하는 시점 등이다. 이후 해당 분석 내용은 김범석 쿠팡아이엔씨(Inc.) 의장의 지시에 따라 휴식 시간을 부각하는 쪽으로 다시 정리하는 작업이 이뤄졌다.



    하지만 로저스 대표와 박대준 전 대표는 31일 열린 국회 ‘쿠팡 침해사고 및 개인정보 유출, 불공정 거래, 노동환경 실태 파악과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위한 청문회’에서는 이같은 관여 사실에 침묵했다. 전날 청문회에서는 2020년 10월 두 사람이 노동청에 제출할 시시티브이 분석 자료에 대해 보고받고 구체적 수정 지시를 내린 사실이 당시 오고간 전자우편을 통해 공개됐고, 이에 대해 두 사람은 각각 “제게 제시된 적 없는 자료”(로저스), “처음 본다”(박대준)고 답한 바 있다. 같은 내용을 두고 이날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재차 추궁하자 로저스 대표는 시시티브이 분석에 대해서 “정부 조사에 대응하기 위해서 한 것이고 정부 조사에 전적으로 협조했다”고만 답했다. 박 전 대표도 김 의장이 쿠팡 전 시피오에게 시시티브이 영상을 다시 분석하라는 지시를 내린 시그널(메신저 프로그램의 일종) 메시지에 대해서만 “이런 메시지를 주고받은지에 대해 기억하고 있는 게 없다”고 했다. 최민희 방통위원장은 “(어제) 증언을 유지한다는 뜻”이라고 짚었다.



    두 전·현직 대표가 이처럼 ‘모르쇠’로 일관하자 이용우 의원은 이날 청문회에서 “두 사람이 김범석 의장의 지시에 따라 장덕준님의 업무 영상 분석에 깊숙이 개입되어 있다는 게 다시 한번 확인됐다”며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과 유재성 경찰청장 직무대행에게 관련 수사를 요구했다.



    이에 김 장관은 “이 사안을 매우 엄중하게 보고 있다. 인지가 됐기 때문에 곧바로 신속하게 수사해 빠르고 정확하게 진실을 규명하겠다”고 답했다. 유 직무대행은 “해당 수사팀에서 법률 검토를 거치고 수사의 필요성 등을 판단해서 신속하게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남지현 기자 southj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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