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서 유홍준 관장 강연
인상주의 작품과 韓 근대 화가 연계
20분 만에 신청 마감… 전국서 몰려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이 한국 근현대 거장 이인성의 1934년작 ‘가을 어느날’을 큰 화면에 띄웠다. 짙고 푸른 가을 하늘 아래 해바라기와 옥수수로 가득한 풍경 속을 여인과 소녀가 평화롭게 걷는 모습이다. 객석에서 “아…” 하는 탄성이 터졌다. 유 관장은 “구부러진 해바라기와 여인들을 결합한 것이라든지, 강렬한 원색과 배경을 봐라. 야수파의 싱싱함이 느껴지지 않느냐”며 “로버트 리먼이 한국에 왔으면 분명 이인성의 그림을 샀을 것”이라고 했다.
이인성, ‘가을 어느날’(1934). /리움미술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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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대강당에서 유홍준 관장의 특별 강연이 열렸다. 주제는 ‘리먼 컬렉션의 인상파 회화와 한국 근대미술의 공명’. 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특별전 ‘인상주의에서 초기 모더니즘까지, 빛을 수집한 사람들’과 연계해, 인상주의를 비롯한 서양 미술의 흐름이 한국 근대미술에 어떻게 수용되고 변용됐는지 살펴보는 자리다. 온라인 사전 신청 접수가 시작되자마자 20분 만에 예약 400석이 마감됐다. 전국에서 모여든 청중이 일찌감치 객석을 메웠다. 예약 없이 찾아온 수십 명은 복도에서 모니터로 강연을 참관했다.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이 27일 박물관 대강당에서 강연하는 모습. 400석을 가득 메운 청중들이 집중해서 강연을 듣고 있다. /고운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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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멀리서 왔다고 생각하시는 분 소리 질러 보세요.”
“포항이요!” “진주!” “울산!”
유 관장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지명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유 관장은 “리먼 컬렉션을 서울에 갖다 놓고 볼 수 있다는 게 큰 자랑이고 기쁨”이라는 말로 강연을 시작했다. “1970~1980년대까지만 해도 미술사 공부하는 사람들에겐 ‘원화(原畫) 콤플렉스’가 있었어요. 제가 처음으로 서양 미술 원화를 본 것이 1978년 조선일보사가 개최한 ‘프랑스 후기 인상파전’이었습니다. 세종문화회관에서 엄청나게 긴 줄을 서서 봤던 기억이 있어요.”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이 27일 박물관 대강당에서 '리먼 컬렉션의 인상파 회화와 한국 근대미술의 공명'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고운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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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강연은 전반과 후반으로 내용이 나뉘었다. 유 관장은 먼저 르누아르·드가·쇠라·시슬리·피사로·세잔 등 전시 출품 작가와 작품들을 소개하며 감상을 이어갔다. 후반부에는 20세기 초 한국 근현대 화가들이 서양화를 받아들이고 자신들의 회화 언어로 발전시킨 양상과 비교했다. 그는 “서양 인상파가 한국 미술사의 발전에서 결정적인 모태가 됐다는 건 틀림없다”며 “20세기 초 일본 도쿄미술학교(현 도쿄예술대) 출신 화가들이 우리 근대 미술의 서양화를 개척한 주역들”이라고 소개했다. 1915년 졸업한 고희동을 시작으로 김관호·김찬영·도상봉·오지호·김용준 등 우리 화가 40여 명의 자화상이 이 학교에 남아있다.
유홍준 관장은 강연에서 오지호·김주경 2인 화집을 소개했다. 그는 “화집에는 복숭아밭을 그린 오지호의 ‘도원풍경’(1937)과 복숭아밭을 그리는 오지호를 그린 김주경의 ‘오지호’(1937)가 나란히 실려있다”며 두 그림을 보여줬다. /허윤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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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관장은 “인상파 그림을 조선 화풍으로 일궈낸 건 이론으로나 작품으로나 오지호”라며 “특히 부인 초상과 소녀 초상을 보면 누가 봐도 조선의 여인이고 조선의 소녀이지 않나. 누구풍이 아니라 완전히 소화해서 자기 것으로 그려낸 것”이라고 했다. 백자를 사랑한 화가 도상봉에 대해서는 “인상파를 받아들였는데 그림 자체는 고전적 기품으로 그렸다”며 “이 분은 거지를 그려도 귀족처럼 그렸겠다 싶을 정도로 대상을 고귀하게 그린다”고 했다.
오지호, ‘남향집’(1939). /국립현대미술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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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상봉, '라일락'(1975). /도윤희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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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관장은 “인상파 그림들이 현대인이 가장 좋아하는 장르가 된 이유가 뭘까 생각해봤다”며 “인상파 이전 화가들은 무엇을 그리고, 어떻게 그릴 것인가에 대해서만 연구했는데, 인상파 이후에는 화가들이 자신이 보고 느낀 것을 어떻게 표현할 건가 하는 것으로 전환을 했다. 그들이 가졌던 자유로운 조형 정신을 받아서 우리 근대 화가들이 한국적 인상파 풍을 고착시켰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고 했다.
[허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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