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에서 찾았다 오늘 별이 된 사람]
2006년 1월 29일 74세
백남준 35년만의 귀국. 1984년 6월 23일자 1면. |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1932~2006)은 전위 피아니스트로 먼저 세상에 알려졌다. 1961년 12월 이기양 조선일보 구주특파원은 독일에서 활동하는 29세 피아니스트 백남준의 소식을 전했다. 기사 제목은 ‘독일의 전위 음악계와 피아니스트 백남준씨의 활약’이다.
기사는 쾰른 돔 극장에서 행한 무대를 자세히 서술한다. 백남준은 독일 전위 작곡가 칼하인츠 슈토크하우젠이 작곡한 음악극 ‘오리기나레(Originale)’ 무대에 올라 행위 예술을 선보였다.
독일의 전위음악계와 피아니스트 백남준씨의 활약. 1961년 12월 3일자 4면. |
“백남준씨가 등장했다. 역할은 ‘액숀’(동작)이라는 것이었다. 천정에 걸려있는 ‘후라스코(flasco· 술병)’에 든 흰가루를 냄새맡고는 사라진다. 잠시 후에 콩 든 포대를 갖고 나왔다. 그것을 뿌리기 시작했다. 관중 쪽으로 뿌리다간 객석으로 들어와서 포대를 어느 부인 머리 위에 씌워버렸다. 그리고는 미친듯이 무대에 뛰어올라가 밀가루를 자기 머리 위에 퍼부었다. 이어서 샴푸 비누가루를 머리와 얼굴에 막 묻힌다. 얼굴과 상의가 비누거품으로 새하얗게 된다. 그 옆의 목욕통에 넘어진다. 그리고 나서 일어나면 세수대야 물을 머리 위에 퍼분다. 휴지 같은 둘둘말은 백지를 얼굴 위에서 돌돌 핀다. 얼굴을 가리고 발밑까지 늘어진 백지 뒤에서 백씨는 신음 소리 흐느껴우는 듯한 동작 몸부림을 친다. 백지를 씹는다. 도로 말다간 달려간다. ‘운명’을 몇 절 치다가 손 팔굽으로 마구 때리다간 “이해를 하쇼?” 하고 관중에게 말하곤 밖으로 나가버린다. 6분간의 출연이었다.”(1961년 12월 3일 자 석간 4면)
'성음악'으로 선풍 일으킨 백남준 그의 예술. 1967년 3월 16일자 5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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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은 1964년 미국으로 건너갔다. 이후 백남준에게는 ‘전위 화가’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비디오아트를 선보인 것도 이 무렵이었다.
“미국에 있는 전위 화가 백남준씨가 뉴욕에서 열린 광학(光學) 미술전에 초대되어 전자 미술인 색광구조(色光構造)를 출품.”(1967년 2월 21일)
백남준은 1967년 첼리스트 샬럿 무어먼과 함께 공연하면서 명성을 얻었다. 무어먼은 무대에서 백남준이 작곡한 곡 ‘오페라 섹스토니크’를 연주하면서 점차 옷을 벗으며 전라 상태가 된다. 뉴욕 경찰은 무어먼과 백남준을 공연 중 전격 체포했다.
“백남준이라는 한국인 미술가 겸 작곡가는 독창성을 추구하는 열의 때문에 뉴욕 주택가의 미술관에 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으며 또 뉴욕 유치장에서 하룻밤을 지새워야 했다. 백남준씨는 이른바 ‘행동 음악’과 ‘전자 미술’로 도오꾜에서 오슬로까지 명성이 자자하나 수 주일 전 줄리어드 음악학교 출신의 첼로 연주가 찰로테 무어맨 양이 그가 작곡한 오페라 섹스토니크를 연주했을 때 뉴욕시경은 참을 수가 없었다. 백남준씨는 다른 예술 분야에서는 오래 전부터 인정되어 온 성을 음악에 도입시켰다고 자부한다. 그의 작곡에서 연주가 찰로테 양의 야회복은 제1악장에서 허리까지 내려오며 제3악장에 이르러 모두 사라진다. 경찰은 반나체와 완전 나체의 중간인 제2악장에서 개입하여 두 사람을 유치장으로 연행했다.”(1967년 3월 14일자 조간 5면)
4일 대전시립미술관에서 열린 ‘열린수장고’ 개관식에서 관람객들이 백남준의 대표작 ‘프랙탈 거북선’을 살펴보고 있다. ‘열린수장고’는 대전미술관 입구 옆에 총 연면적 2654㎡으로 조성됐다. 미술관과 함께 조성된 둔산대공원의 조각공원을 보호할 수 있게 지하 1층으로 건립한 게 특징이다. /신현종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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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은 1970년대엔 ‘비디오 예술가’로 명성을 쌓았다. 이후 “세계적 비디오 아트의 교조(敎祖)”(1983년 12월 13일), “세계적 명성 한국이 낳은 비디오 예술의 창시자”(1984년 6월 23일 자)로 불리며 ‘세계적 예술가’로 우뚝 섰다.
1984년 6월 22일 김포공항을 통해 입국했을 때 취재 경쟁이 벌어졌다. “35년 만의 귀국”이었다. 백남준은 조선일보와 단독 인터뷰했다. 기자는 공격적으로 질문했다. 백남준은 “예술이란 밋밋한 삶에 양념을 치는 행위” “예술이란 반은 사기”라며 자신의 예술론을 거침없이 밝혔다.
백남준 인터뷰. 1984년 6월 26일자 7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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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이 세계적인 대가란 건 알지만, 왜 유명한지는 솔직히 잘 모릅니다. 도대체 전위예술이란 뭡니까.
“한마디로 신화(神話)를 파는 예술이지요. 자유를 위한 자유의 추구이며 무목적한 실험이기도 합니다. 룰(규칙)이 없는 게임이기 때문에 객관적 평가란 힘들지요.”-그런 예술이 왜 필요할까요. 더우기 무목적이란 말에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다 가진 사람들이 찾는 사치의 극치라 할까요, 밋밋한 삶에 양념을 치는 행위지요.”
-연초에 보여준 ‘굿모닝 미스터 오웰’도 신선하긴 했지만, 이해는 쉽지 않았습니다. 비디오 아트란 우리에게 아직 생소한 분야인 것 같은데요.
“최초의 시는 음유시인들에 의해 구전되었지만, 종이가 발명된 후 활자화되기 시작했지요. 갖가지 뉴미디어가 발달된 오늘에는 비디오가 그 역할을 수행하고 있어요. 컴퓨터나 새로운 미디어의 개발로 나날이 새로와지고 있는 것이 이 분야입니다. 현대의 모든 예술은 비디오와 가까워질 수밖에 없고, 이를 예술로 창작해 내는 일을 비디오 예술가들이 담당하고 있습니다.”
2006년 1월 31일자 A20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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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앞서 가는 예술을 대중은 따라갈 수 없지 않습니까.
“어느 시대건 예술가는 자동차로 달린다면 대중은 버스로 가는 속도입니다.”
-그럼 대중은 소외되고 마는 거 아닙니까. 늘 따라만 가다보니 뭐가 뭔지 모르고 속는 것 같기만 하고….
“원래 예술이란 반이 사기입니다. 속이고 속는 거지요. 사기 중에서도 고등사기입니다. 대중을 얼떨떨하게 만드는 게 예술입니다.”
-그럼 대중이 바보라는 뜻인가요.
“어느 시대나 바보들은 항상 있지요. 그러나 엉터리와 진짜는 누구에 의해서든 구별되지요. 내가 30년 가까이 해외에서 갖가지 해프닝을 벌였을 때, 대중은 미친 짓이라고 웃거나 난해하다는 표정을 지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것의 ‘진실’을 꿰뚫어보는 눈이 있었습니다. 평가해주지 않는 행위란 무의미한 것이 되고 말지요.”
-고국을 떠나 뉴욕에서 활동하시는 이유는 뭡니까.
“보통 사람에겐 1백%의 자유가 필요하지만, 전위 예술을 하려면 1천%의 자유가 필요합니다. 뉴욕은 전위 예술가들의 미궁같은 곳이죠.”(1984년 6월 26일 자 조간 7면)
[이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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