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데헌 ‘골든’ K팝으로 첫 수상
한국인 작곡가들 트로피 받아
로제, 시상식 오프닝 무대 공연
1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크립토닷컴 아레나에서 열린 제68회 그래미 어워즈 시상식 무대에서 로제와 브루노 마스가 공연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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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인기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이하 케데헌)의 오리지널사운드트랙(OST) ‘골든(Golden)’이 미국 최고 권위 음악상 그래미 어워즈에서 K팝 최초로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1일(현지 시각) 오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제68회 그래미 어워즈’에서 ‘골든’이 ‘베스트 송 리튼 포 비주얼 미디어’(Best Song Written For Visual Media) 부문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K팝 노래와 K팝 작곡가가 이 시상식에서 수상한 최초의 사례다.
케데헌이 지난달 ‘골든 글로브’ 2개 부문 수상에 이어 그래미까지 석권하며 K팝의 위상은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었다. 그래미는 방탄소년단(BTS)이 여섯 차례나 후보(멤버 솔로곡 포함)에 이름을 올렸지만 수상하지 못했던 상이다.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K팝이 막강한 글로벌 영향력을 갖고도 오래 겪어야 했던 무관(無冠) 갈증(drought)을 마침내 해소했다”고 평가했다. 미 버라이어티지는 ‘지금은 우리의 시간’(It’s Our moment)이란 골든의 가사를 인용해 “지금은 케데헌의 시간”이라고 했다.
걸그룹 블랙핑크 출신 ‘로제’(본명 박채영·29)는 이날 브루노 마스와 함께 ‘아파트’(APT.)를 부르며 시상식의 오프닝 무대를 열었다. 로제는 ‘아파트’로 이번 그래미의 4대 본상(제너럴 필드·General Field) 중 ‘올해의 레코드’와 ‘올해의 노래’ 두 부문에 후보로 이름을 올렸으나, 수상은 불발에 그쳤다. 그래미 본상에서 2개 이상 부문에 이름을 올린 K팝 가수는 로제가 처음이다.
◇K팝, 그래미 11개 부문 후보… “이제 틈새시장 아닌 주류”
올해 그래미 시상식은 후보 선정 단계부터 ‘K의 약진’이 큰 주목을 받았다. 케이팝 데몬헌터스(이하 케데헌)의 ‘골든’은 시상식 최고 영예인 본상 빅4(올해의 레코드·올해의 앨범·올해의 노래·최우수 신인상) 중 ‘올해의 노래’를 포함한 5개 부문에 이름을 올렸다. 총 3개 부문에 오른 로제의 ‘아파트’(APT.)를 비롯해 모두 미국 현지 스타도 오르기 힘든 부문에 이름을 올렸다. 이 밖에 ‘최우수 신인상’ 등 2개 부문에 오른 K팝 합작 그룹 ‘캣츠 아이’, ‘최우수 뮤지컬 시어터 밸범’ 부문에 오른 한국 창작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등 유독 한국과 연결된 후보들의 활약이 올해 두드러졌다
'KPop Demon Hunters' 팀이 1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크립토닷컴 아레나에서 열린 제68회 그래미 어워즈 시상식에서 'Golden'으로 시각 매체 부문 최우수 작곡상을 수상했다./A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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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데헌 ‘골든’이 수상한 ‘베스트 송 리튼 포 비주얼 미디어’상은 지난 한 해 가장 주목받은 OST를 만든 이들에게 수여되는 상이다. 수상 명단에는 ‘골든’ 곡 작업에 참여한 이재(EJAE·본명 김은재), IDO(이유한·곽중규·남희동)와 24(서정훈), 테디 등이 올랐다. 시상 무대에서 작곡가 24는 “저의 가장 (큰) 스승이자 가장 친한 친구인 ‘K팝의 개척자’(Pioneer of K-pop) 테디 형께 이 영광을 바친다”고 했다. 1990년대 말 데뷔한 국내 4인조 힙합 그룹 ‘원타임’ 출신인 테디(본명 박홍준)는 24와 IDO, 로제 등이 속한 더블랙레이블의 총괄 프로듀서다.
로제가 K팝 최초로 오른 그래미의 ‘오프닝 무대’도 큰 눈길을 끌었다. 통상 그래미의 처음과 마지막 순서는 그해 후보 중 가장 주목받는 스타가 꾸민다. 앞서 2020년 방탄소년단(BTS)이 K팝 최초로 그래미 무대에서 공연했고, 2022년엔 ‘엔딩 무대’를 펼쳤다. 이날 로제는 브루노 마스가 직접 연주한 하드록 스타일의 기타 소리에 맞춰 ‘아파트’를 열창했고, 빌리 아일리시, 마일리 사이러스 등 쟁쟁한 미국 팝스타들이 함께 떼창을 즐기는 모습이 생중계됐다. 시상식 사회자 트래버 노아는 로제의 무대 직후 “아파트가 한국식 술 게임에서 파생됐다”는 곡 설명과 함께, “미국에선 요즘 뉴스를 볼 때마다 술을 마시게 되는데, 그때마다 ‘아파트’를 외치면 되겠다”고 말해 큰 박수를 받았다.
◇K팝 합작, 그래미 경계 허물었을까
올해 그래미에서 유독 ‘K의 진격’이 두드러진 이유로는 현지 제작사나 현지 작곡가·가수들과의 합작이 K팝의 영역을 확장시켰다”는 분석이 나온다. 예를 들어 로제의 ‘아파트’는 ‘그래미의 왕자’로 불릴 만큼 수상 경험이 풍부한 팝스타 브루노 마스가 공동 작곡·작사가이고, 더블랙레이블과 미국 애틀랜틱 레코드의 합작을 통해 현지 시장을 공략했다. 케데헌의 ‘골든’은 한국계 작곡가들과 미국 소니픽처스, 넷플릭스의 합작으로 제작됐다. 캣츠아이 역시 2024년 하이브와 미국 게펜 레코즈의 합작 프로젝트로 데뷔했다. 미국 현지 음악 산업 관계자들의 투표가 가장 큰 힘을 발휘하는 그래미의 특성상 이런 배경이 긍정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일부에선 “아직 K팝이 그래미의 온전한 인정을 받지는 못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AP뉴스는 미국 현지 평론가들을 인용해 “K팝이 여러 분야에 후보로 이름을 올린 것은 더 이상 틈새시장은 아니란 뜻”이라면서도 “다만 앞선 K팝 후보들에 비해 올해 후보는 K팝 느낌이 덜하다”고 평가했다. ‘골든’과 ‘아파트’ 등이 한국 문화를 대변하면서도, 음악적 작법은 미 주류 음악과 큰 차이가 없고, 가사에 영어가 90% 이상임을 지적한 것이다.
올해 라틴 팝 앨범 ‘DtMF’를 통해 비영어권 장르 가수 최초로 그래미의 대상에 해당하는 ‘올해의 앨범’을 수상한 배드 버니의 사례를 K팝이 눈여겨 봐야 한다는 견해도 나온다. 이 앨범 가사 대부분은 스페인어다. 반면 케데헌의 ‘골든’은 영어 가사를 앞세웠고, 본상 후보까지 갔지만, 정작 트로피는 상대적으로 주요 부문보다 낮은 단계로 여겨지는 OST 부문에서 수상했다. 케데헌, 캣츠아이, 로제가 모두 이름을 올렸던 ‘베스트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 부문은 이날 영화 ‘위키드’ OST를 부른 신시아 에리보와 아리아나 그란데에게 돌아갔다. 이 부문은 앞서 보이그룹 BTS가 K팝 최초로 2021년~2023년 3년 연속 후보 지명에 성공했음에도 끝내 수상 문턱을 넘지 못했던 분야다.
2017년부터 그래미 투표인단으로 활동 중인 팝페라 가수 임형주는 본지 통화에서 “사실 올해 그래미 심사 과정에선 영상미를 중시하는 뮤직비디오 부문에도 K팝이 대거 올라왔지만, 최종 지명 단계에서 모두 빠졌다”며 “아직 그래미에선 K팝의 예술 점수가 낮게 평가되고 있다는 뜻”이라고 했다. 그는 “배드 버니와 K팝의 차이점은 반전과 이민 사회에 대한 메시지의 깊이가 달랐다는 점”이라며 “꼭 트로피를 위한 음악을 할 필요는 없지만, K팝도 사회적 가치를 고려한 메시지들을 낼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윤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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