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한 점] [4] 살바도르 달리 ‘레이스를 뜨는 여인’
살바도르 달리, '레이스를 뜨는 여인'(1955). 캔버스에 유화, 23.5×19.7cm. /국립중앙박물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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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첫 문장이 흥미로운 이유는 곧 펼쳐질 방대한 이야기를 함축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전시에서도 첫 작품은 좋은 이정표가 된다.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인상주의에서 초기 모더니즘까지, 빛을 수집한 사람들’ 특별전에선 살바도르 달리의 ‘레이스를 뜨는 여인’이 그 문을 연다. 의외의 이 작품은 전시를 여타의 인상주의 관련 전시와 차별화하는 역할까지 도맡는다. 일단 달리는 인상주의 화가가 아니다. 게다가 17세기 네덜란드 바로크 시대에 활동한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작업을 원작으로 삼는다. 컬렉터인 로버트 리먼이 달리에게 모사를 의뢰한 덕에 태어난 작품, 이 자그마한 그림에는 각기 다른 시대를 풍미한 이들의 존재, 미술사를 관통하는 예술적 사건들이 켜켜이 쌓여 있다.
페르메이르를 향한 달리의 경외심은 거의 집착에 가까웠다. 빛과 색의 조화, 정교함의 면에서 그를 최고로 꼽았고, 특히 “‘레이스를 뜨는 여인’은 강렬한 미적인 힘을 가진 작품”이라 공공연히 극찬했다. 루브르 보존실에 있던 원작을 집요하게 연구하며, 달리는 단순 복제를 넘어 당대의 시각론을 충실히 반영한 일종의 실험작을 완성했다. 어느 여인의 평온한 순간을 부드럽게 담은 원작과 일견 꼭 닮은 달리의 모작에서 훨씬 감각적인, 역동적인 에너지가 느껴지는 이유가 힘찬 붓놀림 때문만은 아닌 것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전시장 초입에 걸린 살바도르 달리의 ‘레이스를 뜨는 여인’(왼쪽). 17세기 화가 요하네스 페르메이르가 그린 동명의 그림(오른쪽)을 재해석한 것이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루브르박물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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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메이르는 꽤 기구한 운명의 예술가였다. 생전 빛을 보지 못했을 뿐 아니라 영영 잊힐 뻔했던 이 화가는 19세기 인상주의 열풍으로 인해 재발견된다. 인상주의는 세상을 새로운 방식으로 인지한, 즉 보고 느끼는 대로 그리고자 한 열망의 발현이었다. 빛을 상징이 아닌 사건으로 다룬 페르메이르는 당대 미술인들의 문제의식을 수백 년 앞서 다룬 선구자 같은 존재였다. 부지불식간에 그는 근대미술의 주요 담론으로 소환, 수용되었고, 이를테면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도 발굴되어 걸작으로 남을 수 있었다.
하지만 달리에게 페르메이르를 재해석하게 한 컬렉터가 없었다면 전설적인 두 예술가의 시공을 초월한 만남이 과연 가능했을까. 리먼에게 예술은 과거와 현재를 잇는 대화의 창구였다. 리먼 컬렉션은 14세기부터 20세기까지의 작품 2600여 점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고유한 신념과 안목으로 기록한 서구 미술사로 평가받는다. 더욱이 유명작뿐만 아니라 드로잉, 습작, 덜 알려진 작품까지 두루 품고 있다는 점, 그리고 미술품을 개인의 취향으로 고립시키지 않고 연구 가능한 열린 대상으로 두었다는 건 요즘 시대에도 유효한 컬렉팅의 남다른 미덕이다.
화가의 혁신과 컬렉터의 선구안, 그리고 시대적 흐름이 사심 없이 만날 때 새로운 미술사적 가치를 띤 걸작이 탄생하게 된다. 보이지 않는 유기적 관계에 힘입어, 그저 소소한 에피소드로 회자되고 말았을 이 그림은 수많은 이를 감동시키는 작품으로 환생했다. 예나 지금이나 미술 작품은 특정 한 사람이 아니라 다양한 주체들의 열정적인 협업으로 비로소 완성되는 것일까. 이 오래된 그림은 우리 앞에 실로 동시대적인 예술의 풍경을 펼쳐 놓으며 또 다른 질문을 선사한다. /윤혜정 작가·국제갤러리 이사
[윤혜정 작가·국제갤러리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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