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얘기를 들은 친구는 자신의 관심사인 환경, 여성, 지역에 관한 책들을 숨기고 모두가 좋아할 만한 음악과 사진에 관한 책을 가져다 놓았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음악과 사진에 있는 정치적 함의도 거슬리기 시작했다. 결국 모든 책을 외국 작가의 그림책으로 바꾸고 나서야 안심이 되었지만, 가끔 그 책을 자세히 읽는 손님을 보면 그림 속에서 어떤 상징을 발견해 그 의도가 무엇인지 자신에게 따져 물을 것 같아 심장이 떨린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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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의 말을 듣고 나는 몇해 전 우연히 방문했던 국도변 낡은 휴게소를 떠올렸다. ‘빨갱이 출입 금지’ 푯말이 간판보다 크게 붙어있는 곳이었다. 그렇게 장사하는 사람도 있는데 대체 그깟 책이 뭐라고. 하지만 그 생각을 입 밖으로 내지 못한 이유는, 친구가 인적이 드문 타지에서 그들의 만만한 이웃이 되기 위해, 또 적은 자본으로 시작한 자신의 가게를 성공시키기 위해, 얼마나 긴 시간 노력했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프랑스 철학자 클레르 마랭은 <제자리에 있다는 것>에서 캐럴 길리건의 연구를 인용하며, 여성들이 자신의 사회적 관계를 잃지 않기 위해 목소리를 줄여나가는 시점을 추론한다.
마랭은 소녀들이 자신의 솔직한 감정과 통찰력이 주변의 분위기를 차갑게 만든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타인과 연결되기 위해 역설적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검열하기 시작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소리를 낮추고 개성을 조금도 표현하지 않는 억양 없는 목소리를 낸다. 그들에게 남는 것은 아무것도 싣지 않아 거짓되게 들리는 중립적인 목소리뿐이다.” 타인과 연결되기 위해 자신의 진실을 유보한다는 것이다.
마랭은 여성이 자신의 목소리를 축소하기 위한 노력을 두고, “새장 속에 돌아가는 데 동의하는 자발적 신체 절단”이라는 극단적인 표현을 사용한다. 공동체에 안착하기 위해 주체는 자신의 실제 음역대인 테시투라(tessitura)를 포기하고, 타인이 듣고 싶어 하는 소리를 내며 언어를 잃어간다는 것이다.
지방이라는 좁고 견고한 공동체에서 여성 소상공인인 친구가 내게 털어놓은 고민은 바로 이 상실에 대한 불안이었을 것이다. 친구는 자신이 일상의 대부분을 보내는 공간임에도, 그곳이 마을이라는 유기체의 일부로 받아들여지게 하기 위해, 또 누구에게도 미움받지 않는 업장이 되기 위해, 자신의 통찰을 서가에서 덜어냈다. 그 행위는 친구에게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방어였으나, 결국 그는 자신이 숨긴 책들의 목록을 보며 큰 상실감에 빠지게 된 것이다.
누군가는 친구의 이러한 고백을 듣고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카페는 엄연히 이윤을 창출해야 하는 상업 공간이기에, 주인의 사상을 드러내지 않고 모든 고객을 환영할 수 있어야 한다고. 그러나 우리는 물어야 한다. 자신이 읽은 책을 건네는 온건한 제안이 환대가 아니라면 대체 무엇이 환대인가? 책을 매개로 누군가와 사유를 나누고자 하는 것이 ‘빨갱이 출입 금지’와 같은 강력한 배제의 감각과 동치될 수 있는가?
마랭이 말한 ‘자기 목소리의 해방’은 타자를 축출하기 위한 폭력이 아니다. 그것은 “현실에 대한 다른 관점을 듣게 하고 인간적인 대화를 강화하는” 울림이며, 자신의 목소리를 잃어버린 공간은 결국에는 누구의 자리도 될 수 없다는 공동체 속 개인을 향한 경고다.
타인을 증오함으로써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독단’과, 타자와 함께 어떻게 살 것인지를 고민하며 자신의 위치를 끊임없이 되묻는 ‘불안’의 질적 차이를 망각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어떤 공간이 더 많은 사람에게 열려 있는지를 자연스레 알게 될 것이다. 환대의 공간을 만들고자 하는 성실한 사람들이 부디 이 ‘앎’에 많은 것을 의지하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
▼ 복길 자유기고가
플랫팀 기자 fla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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