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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15 (일)

    [정수윤의 길을 걸으며] [16] 둥글게 둥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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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일보

    지난해 정월대보름에 부산 해운대해수욕장에서 한해 건강과 풍요를 기원하는 달집 태우기와 강강술래 공연이 진행되고 있다./김동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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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게는 다섯 명의 고모가 있다. 어릴 적 할머니 집에 살 때, 수녀님이 된 고모를 제외하고 네 명의 고모가 하루 걸러 한 번은 할머니를 보러 왔다. 덕분에 집이 늘 북적북적하고 활기가 넘쳤다.

    너덧 살 무렵 기억이다. 요즘처럼 추운 날, 할머니와 고모들과 나와 내 동생은 아랫목에 담요를 덮고 둥글게 모여 앉아 손바닥만 한 마분지에 똑딱단추를 끼웠다. 돈벌이라기보다 다 같이 모여 수다를 떨기 좋은 소일거리였다. 우리는 수단추와 암단추를 눌러 끼우며 그날 재미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고, 깔깔 웃고, 귤을 까먹고, 그러다가 내가 신이 나면 일어나 엉덩이를 실룩대며 춤을 추고, 또 다 같이 와하하 웃으며 손뼉을 치고. 즐거운 사람들이 정답게 둘러앉아 웃고 떠들던 어린 시절의 이 원형(圓形)이 지금의 나를 만든 원형(原形)이 아닐까, 요즘 종종 생각한다.

    북토크 할 때도 둥글게 모이는 게 좋다. 그래서 사람이 너무 많이 모이는 자리보다 소규모 모임을 선호한다. 동그랗게 앉으면 서열도 없고, 누가 누굴 가르치는 분위기도 없고, 서로 마주 보며 빙글빙글 돌아가는 턴테이블처럼 술술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작년 이맘때쯤 언덕 위의 한 서점에서 글쓰기 모임을 가졌을 때, 나는 동네 꽃집에서 노란 수선화 화분을 사 갔다. 여덟 명쯤 되는 사람들이 둥글게 모여 앉아 수줍게 옷깃을 세운 꽃봉오리를 바라보며 환하게 웃음 짓던 얼굴이 지금도 생생하다. 우리는 그 자리에서 스케치하듯 수선화를 글에 담고, 각자 쓴 걸 읽고, 감탄하고, 웃기도 했는데, 참 좋은 겨울밤이었다.

    요즘 신문을 펼쳐보면 고독사, 자살, 외톨이, 우울증 같은 슬픈 단어들이 우수수 쏟아져서 마음이 무겁다. 그저 둘러앉아 한 송이 꽃을 바라만 보아도 인생은 즐거운 것을. 위로 위로, 더 많이 더 높이, 이제 그런 것보다는, 둥글게 둥글게, 여럿이 손을 잡고, 강강술래의 마음으로 사는 방향을, 우리는 앞으로 선택해야 하지 않을까.

    [정수윤 작가·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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