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주말]
[정동현의 pick] 오징어회
“오징어회 먹어야지.” “비싸지 않니?” 어른들은 모이자마자 오징어 이야기를 했다. 부산에서도 실컷 먹던 회를 강릉까지 와서 왜 먹어야 하는지 몰랐다. 경포대 근처, 관광객이 밀어닥쳤다가 빠져나가는 어느 횟집에 앉아 오징어회를 먹었다. 나는 부모님의 얼굴이 어린애처럼 빛나는 것을 그때 처음 봤다. 부모님은 지금의 나보다 젊었다. 그리고 우리는 경포대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어머니는 록커처럼 풍성한 파마머리였고 아버지는 마치 밥 딜런 같은 더벅머리에 자신이 한껏 차 있었다.
서울 강동구 ‘회전포차’의 날징어.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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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동구 암사동 뒷골목을 걸을 때 몇십 년 전 생각이 난 것은 오징어회 때문이었다. 나는 그날 이후 오징어회만 보면 강릉 경포대와 그곳을 배경으로 한 부모님이 떠올랐다. 회사 동료들과 모이기로 한 집은 ‘회전포차’였다. 아파트 단지 앞, 잘 보이지 않는 간판을 달고 작게 영업을 하는 곳이었다. 강동에 사는 선배가 아니었다면 이곳을 스스로 찾아오기 힘들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조금 일찍 도착해 자리를 잡고 앉았다. 시베리아에서 밀려온 한기 때문에 영하 10도를 우습게 돌파하던 저녁이었다. 먼저 맥주 한 잔을 마셨다. 얼음을 녹인 듯한 청량감이 정신이 번쩍 들게 했다. 긴 장화를 신은 주인장은 수조에서 활어를 담아 주방으로 들어갔다. 걸음걸이가 힘차고 빨랐다. 그 발걸음 뒤로 장구를 치듯 물고기 퍼덕이는 소리가 들렸다. 가게에는 뜨내기 객이 아무도 없는 듯 모두 편한 모습이었다. 추천해 달라는 주문에는 망설임이 없었고 반찬 하나 나오는 속도도 늦지 않았다. 일말의 불안감도 사라졌다. 맥주의 끝맛이 달았다.
동료들은 늦지 않게 도착했다. 단골을 알아보는 주인장의 얼굴에 웃음기가 비쳤다. 선배는 이미 무엇을 먹어야 할지 정해 놓은 눈치였다. 먼저 고등어회가 나왔다. 서울에서 고등어회를 먹는 것은 오랜만이었다. 더구나 이렇게 한적한 곳에 고등어회가 있으리라고는 생각을 못 했다.
등껍질에 얼룩무늬가 남아 있는 고등어는 잘린 단면 사이로 기름기가 촉촉이 배어 올라왔다. 구이나 조림으로는 느낄 수 없는 횟감의 서늘한 촉감이 혀에 닿을 때마다 몸이 떨렸다. 그리고는 마치 아이들이 조잘거리듯 고소한 맛이 촘촘하고 빽빽했다. 씹을수록 체온에 녹아난 기름기가 더 잘 느껴졌는데 다 먹은 후에는 햄버거를 먹은 것처럼 입에 기름이라도 묻었을까 소매로 입을 닦았다.
그때쯤 미리 주문해 둔 호래기가 올라왔다. 몇 번이나 안부를 물었던 호래기가 방금 들어왔다고 주인장이 설명했다. 꼴뚜기의 사투리인 호래기는 작고 투명했다. 통째로 입에 넣고 씹을 때마다 달고 쓰고 짭조름한 맛이 작은 폭죽처럼 터졌다. 눈을 감으면 소나무 사이로 해풍이 넘나드는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이 집 이름이 돈다는 뜻의 ‘회전’이 아니라 ‘회’와 ‘전’이라는 건 뒤늦게 알았다. 모든 테이블에 전 하나는 꼭 있었다. 튀기듯이 양면을 구운 해물파전은 덜 익어서 밀가루 반죽이 묻어나는 느낌이 전혀 없었다. 오징어는 따로 튀겨서 전 위에 올렸는데 이 집 이름에 ‘전’ 자를 붙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날징어’라고 이름 붙인 메뉴는 채가 아니라 얇게 포를 뜬 오징어회가 날치알을 마치 성곽처럼 두르고 나타났다. 참기름을 살짝 쳐서 이미 고소한 맛이 강하게 돌았다. 투명한 오징어회는 하늘에서 떨어진 눈을 먹는 것처럼 사각거리다가, 단맛과 짠맛이 파도치듯 혀의 앞과 뒤를 덮쳤다 사라졌다. 날치알을 곁들이니 식감과 맛이 우퍼를 단 것처럼 배로 커졌다.
동료들은 10년 전 일을 어제였던 것처럼 말하다가도, 오늘 일을 마치 10년 전처럼 아득하게 추억했다. 잔을 받을 때는 어깨에 무거운 짐을 진 듯이 공손했지만, 문득 등을 펴고 기대어 앉으면 군막에 들어앉은 장수 같기도 했다.
아버지는 고사(故事)에 나오는 역사(力士)처럼 손아귀가 컸고 힘이 셌다. 아버지가 힘껏 내려놓는 작은 잔을 보면서 그 맛이 무언가 궁금해하기도 했다. 동해 앞에 온 가족이 함께 섰을 때 동생과 나는 쭈뼛하게 서 있었다. 그 뒤의 아버지는 전리품이라도 챙긴 듯 위풍당당했다. 언제까지 아버지를 추억할지 알 수 없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작은 골목 하나, 오징어 회 한 점에서도 나는 아버지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아버지의 그 자신감과 확신은, 아버지가 우리에게 쏟은 인생 전부 그 자체인지도 모른다.
#회전포차: 고등어회 3만9000원, 호래기 2만7000원, 해물파전 2만2000원, 날징어 시가.
[정동현 음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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