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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15 (일)

    장수 기원하며 먹던 가래떡… “반복해 뽑아야 쫄깃하고 안 끊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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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튼, 주말]

    설 연휴 일주일 전

    떡집 알바 체험

    하얀 가래떡이 따끈한 김을 토해내며 기계에서 밀려나온다. 매끈한 표면에는 물기 어린 윤기가 돌았다. 두 줄씩 뽑혀 나오는 먹음직스러운 떡을 손으로 받쳐 들었다. 묵직했다. 손에 힘이 들어가자 앗, ‘툭’ 끊어졌다. 끊긴 김에 먹어볼까? 눈치만 보고 있는데 사장님이 ‘어이구, 못 말려’라는 표정으로 “언제 또 갓 뽑은 떡을 먹어 보겠느냐. 드셔 보시라”고 했다. 한 점을 입에 넣었다. 쫀득하게 늘어났다가 이내 담백하게 끊어진다. 씹을수록 올라오는 은은한 단맛. 설탕도, 꿀도 필요 없다. 이 맛이로구나.

    설날이면 으레 먹는 떡국 한 그릇. 흰 떡과 맑은 국물에는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떡국을 언제 처음 먹기 시작했는지 정확하게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조선 후기 ‘동국세시기’ 등에는 세찬(歲饌·설에 차리는 음식)에 없어서는 안 될 음식으로 기록돼 있다. 지난해 한국리서치가 설을 앞두고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10명 중 9명꼴로 “설에 떡국을 먹겠다”고 답했다. “설날 떡국 먹기에는 의미가 있다”고 답한 비율도 77%였다. 해가 지날수록 명절 분위기가 희미해진다지만 떡국만큼은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의 최저기온이 영하 12.4도로 떨어진 지난 9일, 설 연휴를 앞두고 서울 구로구 남구로시장의 떡집을 찾아 가래떡을 뽑고, 썰고, 포장했다. 음력 1월 1일 새해 첫날부터 좋은 일이 가득하길 소망하면서.

    ◇가래떡·시루떡·바람떡 단연 인기

    오전 6시 30분. 아직 동이 트지 않은 시장 골목에서 떡집들만 불을 환하게 켰다. 간판에 ‘종로떡집’이라 적힌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섰다. 더운 김과 고소한 냄새가 얼굴을 감쌌다. 참기름 냄새일까, 벌써 맛있겠다.

    가게 한쪽에는 썰기 전의 인절미용 떡과 약식이 사각판 위에 층층이 쌓여 있었다. “새벽 1시부터 나와 만들었다”고 했다. 곧 설이라 특별히 일찍 나왔느냐고 묻자 “원래 이 시간에 일을 시작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떡은 당일 만들어 파는 것이 원칙이라 그렇다고. 직원 대여섯 명이 오전·오후로 나눠 일하는데, 설 연휴 한 달쯤 전부터는 일이 많아 알바생 2~3명을 추가로 쓴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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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로떡집’ 사장 김화진(오른쪽)씨가 가래떡을 뽑아내고 있다. 김씨는 “단체 주문이 들어와 새벽 4시부터 가래떡을 뽑기 시작했다”고 했다. 조유미 기자가 옆에서 가래떡을 가위로 자르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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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래떡을 가득 담은 떡판(트레이) 무게는 약 10kg. 쌀과 떡판 옮기는 일이 떡집에서 가장 힘들단다./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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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방의 직사각형 시루 3개에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고 있었다. “우와, 백설기인가요?” 아는 사각형 떡이라고는 백설기밖에 없는 내가 물었다. 30년 가까이 떡집을 운영하고 있는 사장 김화진(50)씨가 “가래떡 만들기 위해 찌는 것”이라며 “백설기와는 섞는 물의 양과 찌는 시간이 다르다”고 했다. 설을 앞두고 가장 많이 찾는 떡은 단연 가래떡과 제사용 시루떡, 달콤한 팥이 들어간 흰색·쑥색·분홍색의 삼색 바람떡이란다.

    길게 늘여 뽑는 가래떡은 예부터 ‘길게 오래 산다’는 장수의 의미를 가졌다. 가래떡 만드는 과정은 이렇다. 기계로 곱게 빻은 멥쌀가루에 물을 맞춰 섞고 찜통에 올려 15분간 찐다. 한 직원은 연신 타이머를 확인하며 은색 막대기로 시루에서 찌고 있는 떡에 구멍을 내고 있었다. “뜸이 고르게 들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이렇게 만든 ‘초벌 떡’을 떡 뽑는 기계에 넣어 주걱으로 푹푹 눌러가며 모양과 상관없이 최소 3번 이상 반복해 뽑는다. 김씨가 “여러 번 뽑아야 찰기가 생겨 잘 끊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기계 입구에 원통형 구멍 뚫린 판을 끼워 뽑으면 우리가 아는 가래떡 모양이 완성된다.

    “오전에 가래떡 단체 주문 있어요. 빨리, 빨리!” 떡을 뽑던 김씨가 소리쳤다. 얼떨결에 가위를 들고 그의 옆에 섰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가래떡을 가로 30㎝ 떡판(트레이) 크기에 맞게 숭덩숭덩 잘라냈다. 포장까지 마쳐 나가려면 시간이 빠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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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소 '종로떡집'에서 가장 인기가 많다는 흑임자 인절미. 고소하고 쫀득하다. /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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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 기자가 인절미에 콩가루를 묻히고 있다. 떡 모양이 망가질까 봐 살살 묻히니 한 직원이 "팍팍! 팍팍 버무려야 골고루 가루가 묻지"라고 했다. /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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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운 삼색 바람떡. 색을 맞춰 포장해야 보기에 좋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은 법이다. /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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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포장 판매·배달 주문 늘어

    떡집의 아침은 분주했다. “정신 없죠?” 가래떡이 수북하게 담긴 약 10㎏짜리 묵직한 떡판을 옮기며 우왕좌왕하는 날 보고 김화진씨가 말했다. 한쪽에서는 빛의 속도로 인절미를 썰어 180~190g씩 포장 용기에 담아내고, 다른 쪽에서는 담아낸 떡을 랩으로 두어 번 감았다. 선물용 떡을 보자기로 묶어내는 ‘포장조’도 있었다. 주방에서는 절편·술떡·시루떡 등 갓 쪄낸 떡이 줄줄이 나왔다. 인심 좋은 떡집 직원들은 새로운 떡이 나올 때마다 “드셔 보라”며 내 입에 한 조각씩을 넣어줬다.

    설 연휴 해외여행 가는 집이 늘었다지만, 떡집은 변함없이 대목이다. 연휴 일주일 전부터 하루 쓰는 멥쌀가루 양은 4㎏짜리 약 50포, 200㎏에 이른다. 평상시 쓰는 양의 두 배 수준이다. 미리 구매해 냉동했다가 부쳐 먹는 전(煎)과 달리 떡은 “만든 날 먹어야 한다”는 인식이 강해 연휴 당일 시장 골목에 사람들이 발 디딜 틈 없이 줄을 선다. 김씨는 “5년 전만 해도 한 집에서 떡을 몇 ㎏씩 사 갔는데 지금은 소포장된 떡을 한두 팩씩 사 간다”며 “연휴 1~2주 전 배달 주문 건수가 크게 늘어난 것도 변화”라고 했다. 여행 전 미리 떡을 주문해 먹거나 선물용으로 보내는 집이 늘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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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체 주문용 가래떡을 썰고 있다. 총 130팩, 한 팩에 길이 10㎝ 안팎의 통가래떡 여섯 개가 들어간다. /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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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가래떡. 덕분에 영하의 날씨에도 손만은 따듯했다. /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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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가 썬 떡은 길이가 들쭉날쭉했다. 어둠 속에서 떡을 썰어낸 한석봉 어머니는 '프로'였다. /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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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체 주문용 가래떡을 썰어낼 차례다. 총 130팩, 한 팩에 길이 10㎝ 안팎의 통가래떡 여섯 개가 들어간다. 매대로 나가 가래떡을 3등분으로 자르기 시작했다. 10여 분이 지나자 추위 때문에 발가락 감각이 없어졌지만 떡의 온기 덕인지 손은 따끈따끈하다. 어둠 속에서 떡을 썰던 한석봉 어머니의 실력은 얼마나 대단한가. 밤도 아니거늘, 눈대중으로 길이를 일정하게 맞추자니 쉽지가 않다. 내가 썬 떡은 길이가 들쭉날쭉했다. 직원이 한 팩을 들고 웃으며 “이건 못 판다. 우리가 먹자”고 했다. 결국 그 떡은 또다시 나의 입 속으로.

    또 실수할까 봐 신경을 바짝 곤두세우고 달팽이 기어가는 속도로 떡을 써는데 출근하던 50대 남성이 “파는 거예요?” 묻는다. 냉큼 “30㎝짜리 한 줄에 1000원이에요. 바로 뽑아 드릴게요”라고 답했다. 그는 “회사 가서 나눠 먹겠다”며 다섯 줄을 반씩 잘라 달라고 했다. 이때부터 오전 11시까지가 매대 판매의 정점이다. 직장인부터 장 보러 온 주부·어르신 등이 떡 냄새에 이끌려 홀린 듯 발길을 멈췄다. 남구로시장을 찾는 이들 중에는 옌볜 등에서 온 중국 동포도 많단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설을 쇠며 평상시에도 떡을 즐겨 먹기 때문에, 떡집 단골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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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근하던 직장인이 한 팩 사고, 장 보던 주부가 한 팩 사고, 평일 오전 8시 30분부터 오전 11시까지가 이 떡집의 피크 타임이다. /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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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새 매대에 진열된 색색의 떡들. 모두 이날 새벽 1시부터 나와 뽑았다. 사장 김화진씨는 "추운 날 떡을 한 번에 많이 내놓으면 얼 수 있기 때문에 소량씩 진열한다"고 했다. /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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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 선물용 떡 세트. 약과와 쑥시루떡, 꽃떡 등이 들었다. /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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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이 모락모락 나는 시루떡. /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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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끝나지 않는 떡국떡 포장

    오전 10시쯤, 김밥으로 끼니를 챙기며 숨을 돌렸다. 힘들지 않으냐고 물으니 김화진씨가 “‘막노동’이라 힘들 수밖에 없다”면서도 “고생스럽지만 매일 갓 뽑은 떡을 내놓는 게 우리 집을 찾아주는 손님들에 대한 예의”라고 했다. 잠시 뒤 건장한 남성 2명이 들어와 40㎏짜리 쌀 포대를 창고로 옮기기 시작한다. 알바생이다. 나도 두 팔 걷어붙이고 나서봤지만 무게를 이기기 어려웠다. 굼벵이 기어가는 속도로 포대를 질질 끌며 옮기는데 한 알바생이 “(내가 옮기는 게 더 빠를 테니) 떡국떡 포장하는 일을 해 달라”고 했다.

    떡국떡은 기계를 이용해 썬다. 상온에서 이틀 정도 굳힌 가래떡을 기계에 밀어 넣으면 동그랗고 비스듬한 떡국떡이 우수수 쏟아진다. 또 다른 알바생인 대학생 조모(24)씨가 플라스틱 받침판으로 떡을 비닐팩에 퍼 담기 시작했다. 난 무게 다는 일을 맡았다. 조씨가 “떡국떡 하나에 4~5g”이라며 “목표한 무게에서 10~20g쯤 더 넣는 건 괜찮다”고 했다. 그렇게 800g짜리 10봉지, 1.5㎏짜리 15봉지, 5㎏짜리 8봉지를 담았다. 끝난 줄 알았는데 10㎏짜리 20봉지를 또 담아야 한단다. 설이 다가오면 기업·기관 등에서 구내식당 메뉴 등으로 떡국을 내기 위해 대량 주문하는 경우가 많다.

    점심 시간이 되기 전 인사를 하고 떡집을 나왔다. 틈틈이 집어 먹은 인절미·절편 등으로 배가 든든하다. 문득 떡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엄마 생각이 났다. 다가오는 설에는 떡을 한 아름 싸 들고 고향에 가리. 설날엔 역시 쫀득쫀득한 떡을 빼놓을 수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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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끝날 줄 모르는 떡국떡 포장. 조 기자는 이날 오전에만 약 270㎏을 포장했다. 사진은 조 기자가 떡국떡 무게를 재는 모습. /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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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유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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