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주말]
[김동식의 기이한 이야기]
나이 든 공장 경비원이 지어준 이름의 비밀
일러스트=한상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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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놈 잡으라고 얻어온 놈이야. 이래 봬도 진돗개라고.” 공장장이 웬 작은 털뭉치를 데려왔다. 직원들의 눈빛이 부드러워졌다. “아유 귀여워라. 이 쪼그만 녀석이 이 큰 공장을 어떻게 지킨담? 근데 얘 이름이 뭐예요?” “이름? 아직 안 지었는데?” 아침부터 바쁘게 돌아가야 할 공장이지만 근무보다 더 중요한 일이 생겼다. 새로 온 강아지 이름 짓기. 초코·제임스·빙고 등등의 의견이 쏟아지던 와중, 갑자기 나타난 나이 든 경비원이 불쑥 선언했다.
“얘 이름은 민수요.” “예?” 직원들은 흠칫 놀랐다. 그럴 만도 한 게, 마지막으로 이 양반의 목소리를 들어본 게 언제였는지 가물가물한 상황이었으니까. 공장장은 어정쩡한 자세로 공손해졌다. “아, 민수요? 이름을 민수로 짓자고요?” “얘는 민수요.” 머리를 긁적인 공장장은 다른 사람들을 돌아보며 대충 동의를 구했다. “민수 나쁘지 않네. 정감 가고. 그러면 얘는 오늘부터 민수로 하자고.”
굳이 반대하는 이는 없었다. 사실, 이 노인은 좀 어려운 사람이었다. 회장님이 꽂아준 사람이라는 소문이 있었다. 회장님의 오랜 단골식당 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도어맨이었던 노인네 용돈이나 챙겨주려고 꽂아줬다나 뭐라나? 아무튼, 공장 지키는 강아지 이름은 민수가 됐다. 그런데 한 달 뒤, 재밌는 일이 일어났다. 새로 뽑은 신입 사원이 출근했는데, 이름이 민수였던 것이다.
“어? 이름이 민수야? 우리는 민수 이미 있는데?” “예?” “저기 저 강아지가 우리 공장 민수다. 쟤가 큰 민수, 네가 작은 민수 하면 되겠네.” 이때까지는 가벼운 농담거리에 불과했다. 문제는 얼마 뒤, 강아지 민수가 외로워 보인다며 둘째 강아지를 입양하면서 시작됐다. 경비실에만 틀어박혀 있던 노인이 갑자기 또 나타났다. “얘 이름은 지혜요.” “예? 지혜요? 왜요?” 공장장은 진지하게 물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허탈했다.
“머릿속에 떠오른 이름이 지혜요.” “아…. 그렇습니까?” 공장장은 또 머리를 긁적이며 다른 직원들을 돌아보았는데, 이번에도 딱히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이름이 지어지고 난 뒤, 누군가 흥미진진하다는 듯 말했다. “혹시 지혜라는 신입이 또 들어오는 거 아니야?” “에이 설마.” 몇 달 뒤, 공장 사람들은 놀라고 말았다. 새로 입사한 직원의 이름이 지혜였다. 성별은 남자였지만.
공장에는 이 늙은 경비원이 신내림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파다했다. 노인은 종일 수많은 질문에 시달려야 했는데, 그때마다 똑같은 대답만 나왔다. “그냥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름이 그랬소.” 일부러 숨기는 것 같지도 않았다. 누군가 이렇게 물었다. “영감님, 혹시 제 올해 운수가 어떨지 좀 봐주실 수 있으십니까? 머릿속에 그냥 막 떠오르는 게 좀 있습니까?” 아쉽게도 그런 능력은 없는 듯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부터 공장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지게차로 짐을 옮기다가 새끼 고양이 한 마리를 발견하게 된 거다. 주변에 어미 고양이도 없고 해서 일단 보살피기로 결정되었을 때, 누군가 불현듯 말했다. “얘도 이름 지어야겠네요?” 동시에 사람들 머릿속에 떠오르는 인물이 있었다. 곧 경비실 문이 열렸다. 노인이 다가오자, 모두 적극적으로 자리를 내주었다. 드디어 시작되는 건가? “얘 이름은….”
모두가 숨죽인 그 순간, 노인의 입이 열렸다. “낑꽁꽁낑이요.” “뭐라고요?” “얘 이름은 낑꽁꽁낑이요.” 이게 뭔 듣도 보도 못한 해괴한 이름이란 말인가? 공장장은 몇 번이나 되물었는데, 확실히 낑꽁꽁낑이었다. 고양이 이름이긴 하지만, 이번에도 똑같이 나중에 이름이 같은 신입 사원이 입사할 거라고 생각한 사람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혹시 외국인 노동자 아니야?” “도대체 어느 나라가 저런 이름을 쓰는데? 무슨 깐따삐야 외계인도 아니고.”
이후 몇 달 동안 어떤 이벤트도 없었다. 그냥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심심한 결론이 나는 듯했다. 한데 어느 날, 공장 사람들은 모두가 감탄하며 헛웃음을 터뜨리게 됐다. “허 참. 진짜네 진짜야. 그렇게 들리네.” 모두 경이롭다는 듯 경비실을 바라보았다. 이번에 공장에 새로 들이게 된 최신식 설비 장치 때문이었다. 그 장치가 작동할 때 나는 소리가 “낑! 꽁! 꽁! 낑!”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손뼉을 안 치고 배길 수 있겠는가? 기어이 낑꽁꽁낑이 입사한 것이다. 이상이 바로 그 이천 공장에 전설처럼 내려오는 신비한 경비 노인네 이야기다.
※픽션입니다.
[김동식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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