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의 시사 구충제]
현 정부 에너지 정책이
처음부터 실용주의였다고?
일러스트=유현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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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원전은 정치적 프레임이지, 우리나라는 실제 탈원전을 한 적이 없다.”
2022년 7월, 공영방송인 TBS에서 뉴스를 진행하던 김어준씨가 한 말이다. 2012년 대선이 부정선거라는 내용의 ‘더 플랜’이란 영화를 만들었고, 세월호 고의 침몰설을 주장하는 등 온갖 가짜뉴스를 퍼뜨린 그이지만, 문재인 정권이 탈원전을 안 했다는 저 말은 너무도 황당해 말이 안 나올 정도였다. 진실은 이렇다. 문 정권은 경제성을 조작해 가면서 월성 1호기를 폐쇄했고, 건설이 완료된 신한울 1·2호기는 운영 허가를 내주지 않는 바람에 가동하기까지 인고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한창 짓고 있던 신한울 3·4호기는 한동안 건설이 중단됐고, 고리 2호기는 허가 기간 만료 2년 전에 했어야 할 ‘계속운전’ 신청을 안 하는 바람에 2023년 4월부터 가동이 중단돼 올 3월 재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정도면 세계 탈원전 순위에서 독일에 이은 단독 2위쯤 될 것 같은데, 독일이 유사시 원전 대국 프랑스로부터 전력을 공급받는다는 점에서 실질적 1위는 문 정권 시절 대한민국일 듯하다. 2011년 발생한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탈원전을 외치는 목소리가 높아진 것은 이해하지만, 일조량이 적고 강풍도 안 부는 대한민국에서 덜컥 탈원전을 추진한 건 국가 지도자로선 너무도 무책임했다.
이게 잘못된 선택임이 드러나기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바로 인공지능(AI) 시대의 개막. 예컨대 구글 검색에 평균 0.3Wh의 전력이 쓰인다면 챗GPT는 그보다 10배에 가까운 2.9Wh의 전력이 필요하단다. 사진을 애니메이션(지브리 화풍)으로 만들어주는 챗GPT 프로그램이 ‘전기 먹는 하마’로 불리는 이유도 이 때문인데, 2050년에는 전 세계 AI가 소비하는 전력량이 지금의 2.5배로 늘어날 전망이란다. 지금도 AI의 핵심인 데이터센터가 정전으로 가동이 중단됐다는 기사가 간간이 나오고 있으니, 세계 각국에서 AI 시대를 대비한 전력 확충에 비상이 걸린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간 기업들에 강요하다시피 했던 RE100의 개념이 재정립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그 한 예. ‘기후그룹(The Climate Group)’이라는 영국 비정부기구가 처음 시작한 RE100은 ‘Renewable Energy 100%’의 약자로, 기업이 제품 생산에 필요한 에너지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하자는 것이다. 여기에 구글을 비롯한 빅테크 기업이 속속 합류하면서 RE100은 마치 국제 규약에 준할 정도의 힘을 얻었다. RE100에 참여하지 않는 기업들은 수출길이 막힐 것이라는 얘기도 나왔을 정도. 하지만 AI 시대 이후 RE100의 실효성은 급격히 추락했다. 구글만 해도 5년 전보다 이산화탄소를 48%나 더 배출하고 있는데 무슨 RE100인가? 이런 상황에서 미국과 유럽의 주요국은 재생에너지만 고집하는 RE100을 넘어 원전과 수소를 포함한 ‘CF(Carbon Free·무탄소) 100’을 대안으로 주목하고, 탈원전 폐기와 신규 원전 건설에 돌입했다. 세계 첫 탈원전 국가였던 이탈리아는 물론 벨기에·스웨덴 등이 다시 원전을 짓겠다고 나섰고, 이미 원전 강국인 프랑스도 2050년까지 14기의 원자로를 추가로 짓는단다. 아시아도 예외가 아니어서, 중국은 향후 10년간 원전 150기를 건설할 예정이며, 후쿠시마 사고 당사자인 일본도 진작에 탈원전에서 유턴했다.
주목할 만한 점은 독일의 반성. 프리드리히 메르츠 총리는 최근 한 비즈니스 모임에서 탈원전 정책이 ‘심각한 전략적 실수’라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2023~2024년 독일 경제는 2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했고, 작년에도 겨우 0.2% 성장에 그쳤는데, 그 배경 중 하나로 탈원전이 지목되고 있어서다.
다행스러운 점은 이재명 대통령이 그간의 입장에서 벗어났다는 사실이다. 20대 대선 당시 ‘감(減)원전’이라는 공약을 내세웠고, 후보 토론회 당시 RE100으로 윤석열 후보를 공격하기도 했던 이 대통령은 작년 9월만 해도 원전 신규 건설에 부정적이었다.
그랬던 이 대통령의 입장이 바뀐 것은 지난 1월 21일 신년 기자회견에서였다. “에너지의 미래를 고려하면 막대한 에너지 수요가 발생하는 것은 사실”이므로 “이념이 아닌 현실과 국민 뜻에 기반해 판단하겠다”는 것. 그로부터 6일 뒤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은 지난 정부에서 추진한 신규 원전 2기를 계획대로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다. “한국은 에너지 섬나라이면서 동서 길이가 짧아 태양광 발전만으로 전력 운영을 하기에 매우 어려운 조건”이라는 게 김 장관의 말인데, 탈원전을 당론으로 삼는 더불어민주당에서 국회의원을 지냈고, 불과 2년 전만 해도 RE100을 지지했던 그가 갑자기 입장을 바꾼 이유가 혹시 대한민국이 사방이 막힌 사실상의 섬나라라는 사실을 최근에야 알았기 때문일까?
장관은 그렇다 쳐도, 대통령이 국가의 중요 정책에 대해 입장을 180도 바꾸려면 독일 총리가 그랬던 것처럼 반성 같은 게 있어야지 않을까 싶지만, 이런 모습이 어디 하루 이틀인가? 지난 1월 12일 이 대통령의 NHK 인터뷰를 보라. 이 대통령은 우리나라가 일본과 캐나다 등 12국이 가입된 경제협정에 가입하는 조건으로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 재개를 논의하자고 했다! 그가 민주당 대표 시절 후쿠시마 방류수를 ‘독극물’이라고 했던 걸 생각하면, 저 정도의 180도 태세 전환은 정말 어질어질한데, 하물며 과거의 탈원전 이력을 따지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하지만 하정우 청와대 AI미래기획수석의 다음 말은 도저히 참기 어렵다. “이재명 정부의 에너지 정책은 처음부터 실용주의 에너지 믹스 정책이었다. 탈원전이었던 적이 없다.” 3년 반 전 김어준의 데자뷔, 좌파 대통령들은 참 좋겠다. 저렇게 ‘곡학아세(曲學阿世)’하는 이들이 계속 나와서.
[서민 단국대 기생충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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