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주말]
층간 소음 갈등 최고조
합의금으로 분쟁 해결?
① 매트 설치는 기본
② 금융 치료가 정답
지난 4일 경기도 판교의 한 맘카페에 이런 글이 올라왔다. 살인까지 부르는 층간 소음, 이웃에 의해 아웃될 수도 있는 갈등의 자구책으로 ‘돈’을 떠올린 것이다. “매트 두께가 한정적이라 설치해도 어쩔 수 없이 소리가 울리기는 한다더라”며 “차라리 인테리어 비용을 아랫집에 드리는 게 어떨까 싶었다”고 했다. 여러 의견이 개진됐다. “층간 소음으로 고통받는 입장에서는 돈이고 나발이고 그냥 조용히 해줬으면 해요.” “어느 집은 금융 치료 받았더니 도련님 맘껏 뛰노시라고, 조용하면 도련님 아프신 건 아닌지 걱정된다고 하더군요.”
◇얼마면 될까요?
일러스트=한상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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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에는 서울 잠실의 한 아파트 입주민 단체를 표방한 온라인 유인물이 ‘층간 소음 발생 시 최소 150만원을 지급하는 방안’을 거론해 큰 화제를 모았다. 갈등이 심각해지기 전에 미리미리 ‘합의’하자는 것이다. “층간 소음 참아주는 조건으로 매달 200만원 주기로 한 윗집”이라는 글도 소셜미디어에서 활발히 공유되고 있다. “윗집과 같이 사는 건가 싶을 정도로 소리가 고스란히 들리는 수준”이었지만 “위로금을 받기로 한 뒤로는 소음이 더 심해져도 이상하게 스트레스를 안 받는다”는 내용.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로 확산되며 열띤 토론으로도 이어졌다. 해결이 난망하던 층간 소음 분쟁에서 모두가 만족할 객관적인 타협안이 가능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반영돼 있다.
그간 층간 소음의 유일한 해법은 배려(윗집)와 인내(아랫집)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배려는 상실되고, 인내는 바닥나는 게 현실이다. 일방적인 피해자만 남는 것이다. 그러자 보험회사에서는 ‘층간 소음 위로금’ 관련 상품을 잇따라 출시하며 시장 공략에 나섰다. 라이나생명·메리츠화재·KB손해보험 등은 주택화재보험에 ‘층간 소음 피해 위로금’ 특약을 추가했다. 보험사 측에서 지정한 업체를 통해 소음 측정을 실시하고 결과가 기준치를 초과하면 정신적 피해에 대한 위로금 명목으로 지급하는 방식이다. 다만 지급액이 50만원 수준이고 1회에 그치는 까닭에 고통 해소의 효과가 크지는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위로금 적정선 연 100만원”
‘아무튼, 주말’이 SM C&C 설문 조사 플랫폼 틸리언 프로에 의뢰해 성인 996명을 대상으로 설문을 진행했다. 위로금을 받는다면 층간 소음을 참을 수 있으신가요? ‘참는다’는 응답(52.3%)이 ‘못 참는다’(47.7%)를 앞섰다. 50대를 제외한 전 세대에서 ‘참는다’는 반응이 우세했다. 보상이 인내심에 어느 정도 영향을 줄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적정 위로금으로는 ‘매년 100만원 수준’이 33%로 가장 많은 표를 받았고 ‘매년 100만~200만원 미만’이 31.1%로 뒤를 이었다. 그다음 많은 대답은 ‘매년 500만원 이상’(15%)이었다. 한 40대 남성은 “층간 소음 스트레스는 피해를 입어도 제대로 대응하기 어려운 무력감과 그로 인한 분노가 큰 요인인데 푼돈 줬다고 밤낮없이 맘대로 쿵쾅대면 더 열받을 것 같다”고 말했다.
집값처럼 치솟는 혈압. 위로금 대신 위자료를 물리겠다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민사 소송에서 법원이 중시하는 건 층간 소음의 출처가 피고 측이라는 증거, 그리고 측정 데시벨 수치로 나타난 소음의 ‘수인한도(受忍限度)’다. 참을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는지 여부를 일컫는다. 최근 판례를 살펴보면 대개 위자료는 가족 구성원당 300만원 수준으로 나타났다. 험난한 과정에 비해 소액이라는 평이 중론이지만 ‘피해를 공식적으로 인정받았다’는 사실에 의미를 두는 경우가 많다. 4년간 층간 소음에 시달리다 송사를 벌여 지난달 1심에서 승소했다는 한 아파트 주민은 “1년 반 소송 끝에 인당 300만원, 총 900만원의 배상을 받게 됐다”며 “금액보다는 더 이상 소음을 내지 못하도록 하는 게 목적이기에 승소로 끝난 것에 만족한다”고 했다.
◇명절 직후 갈등↑
쿵쿵, 불안은 계속되고 있다. 곧 설 연휴가 시작된다. 한국환경공단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설 명절 직전 일주일 평균 910건이던 층간 소음 민원 접수 건수는 연휴 직후 일주일 평균 1040건으로 증가했다. 삼대(三代)가 모여 바닥을 찧기 때문이다. ‘아무튼, 주말’이 시민 996명을 대상으로 명절에 층간 소음이 발생하면 어떤 기분인지 물었다. ‘평소처럼 화난다’(35.7%)와 ‘더 화난다’(17.9%)는 부정적 응답이 ‘이해하려고 노력한다’(46.2%)는 응답을 앞섰다.
집 안에서 활동하는 절대적 시간이 길어지는 계절·환경적 요인도 스트레스에 한몫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한건설정책연구원 관계자는 “창을 모두 닫아 외부와 차단된 상태에서는 충격음이 더 잘 느껴지는 데다 겨울철은 안락한 공간에 대한 욕구가 큰 시기인 만큼 소음 발생에 더 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기후에너지환경부가 지난 추석 전국의 공동주택을 대상으로 ‘층간소음 예방 생활 수칙’ 포스터를 배포한 이유다. “명절 음식은 낮 시간을 이용해 만들어주세요.” “아이 방에는 매트를 설치해주세요.” “온 가족이 모이는 명절, 슬리퍼를 신고 생활해요.” “TV 소리는 작게, 이웃의 편안한 명절을 지켜주세요.”
◇조용한 집, 국민의 기본권
초고밀의 거주 환경, 이웃이 원수가 돼가고 있다. 아파트 내 생활형 분쟁이 잇따르며 소송으로 비화하는 사례가 늘자,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지난 5일 서울중앙지방법원, 국토부 산하 중앙 공동주택관리 분쟁조정위원회와 업무 협약을 체결해 재판 전 단계에서 전문 조정 기관을 통한 합의(화해)를 도출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다만 층간 소음은 대상에서 제외됐다. LH 관계자는 “사실 층간 소음은 조정으로 해결하기가 쉽지 않다”며 “시범 운영 이후에 확대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천안에서 벌어진 층간 소음 살인 사건의 경우에도, 당사자들은 불과 한 달 전 경찰 중재로 향후 잘 지내보자며 화해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개인 간 해결이 힘든 문제지만 층간소음관리위원회 등 자치 시스템은 유명무실하고, 오피스텔 및 다가구 주택은 그마저도 없어 사실상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부실 시공 논란도 잇따른다. 국민의힘 김희정 의원은 지난해 국회 국정감사에서 ‘층간 소음 사후 확인제’ 등 현행법의 실효성을 지적하며 “조용한 집은 국민의 기본권”이라고 강조했다. “층간 소음은 단순한 이웃 간 예절의 문제가 아니라 헌법 제35조에 명시된 쾌적한 주거 환경을 누릴 권리의 문제”이므로 “정부가 구조적 원인부터 해결해야 한다”고 했다. 애초에 집을 제대로 지어야 한다는 얘기다.
[정상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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