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번던스
에즈라 클라인·데릭 톰슨 지음|홍지수 옮김| 한경BP|340쪽|2만2000원
“20세기 미국사는 우파는 정부에 맞서 싸우고, 좌파는 정부를 절름발이로 만든 역사다.”
미국의 정치 진영은 큰 정부, 작은 정부 중 뭐가 맞느냐를 두고 긴 시간 싸워 오느라 정부의 역량이 줄어드는 점을 간과하고 있었다. 미국 정치 현장에서 뛰어온 베테랑 저널리스트인 두 저자는 진보 진영의 잘못된 선택이 이어지면서 미국의 ‘풍요로움(Abundance)’을 잃게 했다고 본다. 저자들 스스로 진보를 표방했음에도 내린 결론. 규제에 익숙하면서도, 재화 공급과 혁신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국만큼이나 미국의 큰 화두도 ‘부동산’이다. 미국사에서 집이 넉넉했던 적은 찾기 어렵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 따르면 세계 선진국 진영에서 인구 1000명당 평균 주거 시설의 수는 470호다.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600호, 일본과 독일은 500호지만 미국은 425호다. 미국 성인의 30%가 소득의 30% 이상을 주택에 소비한다. 대도시로 갈수록 이 비율은 치솟는다. 미국은 긴 시간 스스로 집 짓기를 거부하다 전국적·만성적 주택난에 시달리고 있다.
정치적으로 ‘민주당 텃밭’으로 통하는 도시일수록 주택 가격은 더 높았다. 공급이 부족해서다. 규제에 능한 진보 진영은 각종 절차적 장애물을 많이 만들어 놓았다. 복잡한 토지 용도 규제나 ‘캘리포니아 환경의 질 법안’ 같은 것이 대표적이다. 공공 프로젝트에 지역 노조원을 고용하는 조건이 붙을 때도 있다. 전통적으로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와 샌프란시스코 지역은 주민 1000명당 2022년 한 해 동안 겨우 2.5호 건설이 허가됐을 뿐이다. 반면, 보수 색이 두드러지는 텍사스는 같은 기간 주민 1000명당 18호의 주택이 지어졌다.
이 책은 “말만 번드르르한 리버럴리즘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불평등과 차별 문제에만 집중하느라 중산층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생산 증가에 집중하지 않았다는 것. 샌프란시스코 대부분 지역에 “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불법인 사람은 없다”(‘불법 이민자’라는 표현을 쓰지 말자는 뜻) 등의 현수막이 붙어 있지만, 정작 이곳 빈민들은 아이러니하게도 도시에서 밀려나 콩나물시루 같은 주거 환경을 감수하거나 긴 출퇴근 시간을 감수해야만 한다. 노숙인도 넘쳐난다.
때로 진보 진영은 기술 혁신에도 장애물이 됐다. 민주당 소속 의원들은 상·하원 가릴 것 없이 정부의 돈이 과학 부문에서 허투루 쓰이는 사례를 지적했다. 국립보건원은 연구 지원을 위한 서류 요구 사항을 대폭 늘렸고 이는 고착화됐다. 이후 브로드 연구소의 연구개발국장 존 던치는 연구 지원 체제가 얼마나 엉망인지 지적한다. “연구를 시작하기도 전에 5년 예산 집행서 등 온갖 서류를 작성해야 해 연구 지원 행정 업무 직원이 건물 몇 층 전체를 차지한다.” 순수 과학 성과를 잘 내는 사람보다 지위를 추구하고 서류를 잘 쓰는 사람이 지원을 받는 구조가 됐다. 위험을 감수한 연구를 하기도 어려워졌다. 2000년대 이후 국립보건원의 새로운 아이디어에 대한 지원이 1990년대에 비해 25% 이상 줄었다. 같은 맥락에서 친환경 에너지 프로젝트, 사회 인프라 사업 등의 속도가 둔화됐다고 한다.
주택난을 해결하기 위해 건설 허가 시간 상한제, 단독주택 부속 거주 시설 합법화 등의 방법을 제안하기도 하지만 어떤 규제를 풀어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다루는 책은 아니다. 풍요를 위해 해결책으로 제시하는 건 오히려 ‘질문’이다. “공급으로 우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공급의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보면 ‘주거 시설이 충분치 않다면 어떻게 공급할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면 이유는 뭘까?’ 같은 더 소중한 질문들이 각자의 문제에서 꽃핀다는 것이다. 공급 중심의 사고를 하다 보면 사회에 만연한 규제주의와 관료주의를 발견하게 된다.
지난해 미국에서 발간됐을 때 진보 진영을 중심으로 화제가 됐다. 보수주의자들이 지향하는 자유 시장 경제만을 옹호하는 책은 아니다. 양 진영이 서로 보완해야 할 시각을 과제로 남긴다. 이 점에서 저자 중 한 명인 에즈라 클라인이 정치 양극화 시스템을 지적하기 위해 쓴 전작 ‘우리는 왜 서로를 미워하는가’(윌북)의 경제·산업·과학기술 버전으로도 읽힌다. 미국 사례들이 마치 한국을 말하는 것만 같다.
[박진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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