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실험미술 선구자 이건용
예술 활동 50주년 기념 개인전
한국 실험미술의 선구자 이건용(84)이 지난 4일 서울 한남동 페이스갤러리에서 퍼포먼스 ‘장소의 논리’를 다시 선보였다. 반 세기 전인 1975년 홍익대 운동장에서 호기롭게 펼쳤던 전설적 퍼포먼스다. “여기는 뭐고, 저기는 뭔가요?” 어리둥절한 관중을 향해, 작가가 말했다. “저기, 여기, 거기는 고정된 좌표가 아니라 각자 서 있는 자리와 방향에 따라서 끊임없이 바뀐다는 거예요. 내가 원을 그려서 한계를 설정했기 때문에 지칭이 달라진 거죠. 이걸 무시하면 원활한 소통이 힘들어져요.”
이건용은 신체 행위로 언어의 한계를 탐구하는 작가다. 한국아방가르드협회(AG)의 주요 인물이자, 한국 전위예술 그룹 ST의 창립 멤버. 그는 “언어가 갖는 정확성의 한계, 그로 인한 소통의 불가능을 오랫동안 고민해왔다”며 “모두가 공유하는 신체의 보편적 행위로 이를 보완하려 했다”고 말했다.
이건용의 1975년 퍼포먼스 ‘손의 논리 3'를 기록한 사진이 전시된 모습. /페이스갤러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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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갤러리에서 열리는 개인전 ‘사유하는 몸’은 그의 예술 세계 50주년을 기념해 마련됐다. 1층부터 3층까지 전관을 할애해 초기 퍼포먼스의 흔적과 결과물을 영상과 사진, 작업 노트, 회화로 구현했다. 1975년 백록화랑 전시에서 처음 선보인 ‘동일면적’과 ‘실내측정’ 초연 영상과 함께 ‘손의 논리 3’(1975), ‘건빵 먹기’(1977), ‘화랑 속의 울타리’(1977) 등 당시 퍼포먼스를 기록한 사진이 처음 공개됐다. 사진 옆엔 그가 직접 작성한 작업 노트가 붙어 있다. 갤러리는 “이건용의 퍼포먼스는 즉흥적 행위가 아니라 지시문과 수행 규칙을 갖춘 논리적 사건 체계”라며 “사진과 영상, 노트는 행위 이후의 부산물이 아니라 행위 자체를 증명하는 아카이브”라고 했다.
이건용 작가가 4일 전시장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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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그의 퍼포먼스는 ‘위험한 것’으로 간주됐다. 1971년 경복궁에 있던 국립현대미술관에 흙덩어리를 심은 ‘신체항’은 “폭발물 장치가 있을 수 있다”며 수도경비사령부가 출동했다. 1975년 ‘이리 오너라’를 외친 퍼포먼스 이후엔 “권력자를 조롱했다”는 이유로 남산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고문을 당했다. 하지만 그는 “세상이 날 이해해주지 않아서 오히려 더 살맛 났다”며 “내가 하는 일이 그대로 이해되고 받아들여졌다면 이렇게 끊임없이 새로운 일을 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2022년 80세 나이에 글로벌 갤러리 페이스와 전속 계약을 맺고, 지금도 신체를 매개로 한 작업을 왕성하게 펼치고 있다. 노작가는 “늙어서 손가락은 떨리지만 그래서 더 재미난 것”이라며 “건강하든 노쇠하든 어떤 경우라도 몸을 갖고 움직일 수 있으니 그게 중요한 것”이라고 했다. 3월 28일까지. 무료.
[허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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