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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24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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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갑 전까지 그림 한 점 못 판 남편… 한국 추상회화 거장으로 만든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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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가 유영국 아내 김기순 여사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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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3년 서울 약수동 집 마당에 나란히 선 유영국과 아내 김기순(오른쪽). /유영국미술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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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갑 전까지 그림 한 점 팔리지 않던 남편을 헌신적으로 뒷바라지해 끝내 추상화 거장으로 우뚝 서게 한 여인.

    한국 추상회화의 선구자 유영국(1916~2002)의 아내 김기순(106) 여사가 17일 오전 별세했다. 전업 작가인 남편 대신 생업을 책임진 여장부였고, 현대 금속공예의 선구자 유리지(1945~2013)를 비롯해 2남2녀를 키워낸 어머니였다. 차녀 유자야 유영국미술문화재단 이사는 “오는 5월 역대 최대 규모로 열리는 아버지 회고전을 손꼽아 기다리셨는데, 개막을 보지 못하고 가셔서 안타깝다”고 했다.

    1920년 서울에서 태어난 김 여사는 스물셋에 유영국과 처음 만났다. 1년 만에 결혼식을 올리고 남편의 고향 울진에 정착해 부부가 함께 양조장을 운영했다. 이때 만든 소주 ‘망향’이 어부들에게 인기를 끌었지만, 유영국은 1955년 사업을 접고 가족과 서울로 상경했다. “금산도 싫고 금논도 싫다. 나는 화가가 될 것”이라는 남편을 아내는 믿고 지지했다. 김 여사는 서울 약수동에 작업실을 만들어줬다. 생업도 그녀 몫이었다. 김 여사는 택시를 사서 운영하고, 버스 노선을 사서 간이 운수업을 하며 네 자녀를 모두 유학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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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영국과 아내 김기순(오른쪽). /유영국미술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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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영국은 “내 그림은 나 살아생전 팔리지 않는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아내는 그 ‘태도’를 존중했다. 팔리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혼신의 힘을 다해 그리는 것. “그렇게 영혼을 담아서 열심히 만든 건 그게 바가지라고 해도 함부로 취급하면 안된다”고 말했다. 환갑을 앞두고 막 작품이 팔리기 시작할 때, 유영국은 심근경색으로 쓰러졌다. 이후 작고할 때까지 25년간 투병과 작업을 병행하는 동안, 김 여사는 그를 극진히 간호하며 고단한 삶을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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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영국이 1977년 아내와 영주 부석사에 가서 사과나무를 보고 그린 'Work'. 노랗고 빨간 나무 두 그루가 가만히 어깨를 맞댄 듯 나란히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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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변을 함께 걷고 있는 유영국과 아내 김기순(왼쪽). 모래 사장 위에 부부의 발자국이 나란히 찍혔다. /유영국미술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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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인혜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장은 “그 시대엔 많은 화가가 해외로 나갔지만 유영국은 국내에서 승부를 보겠다며 작업실에 틀어박혔다. 김 여사는 스스로 고립을 자초한 남편을 헌신적으로 내조하며 ‘화가의 생(生)’을 지켜낸 분”이라며 “추상화 거장 유영국을 있게 한 주역이지만 나서지 않고 뒤에서 지지한 조력자였다”고 했다.

    유족은 아들 유진, 유건, 딸 유자야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발인은 20일 오전 9시.

    [허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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