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2.24 (화)

    이슈 미술의 세계

    담낭 수술 이튿날 사망… ‘팝 아트’ 거장 앤디 워홀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신문에서 찾았다 오늘 별이 된 사람]

    1987년 2월 22일 59세

    조선일보

    앤디 워홀.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팝아트’의 거장 앤디 워홀(1928~1987)은 담낭 절제 수술을 받은 다음 날 사망했다.

    “60년대 초부터 미국을 중심으로 일어나 전 세계를 휩쓴 미술 사조인 ‘팝아트’의 기수 앤디 워홀이 22일 오전(현지 시각) 뉴욕대학병원에서 58세로 사망했다. 워홀은 전날 담낭 수술을 받은 후 하룻만에 사망했다.”(1987년 2월 24일 자 조간 4면)

    조선일보

    1987년 2월 24일자 4면.


    워홀은 십수 년 전부터 담낭 수술을 권유받았지만 병원 가기를 무서워해 차일피일 미뤘다고 한다.

    “그 사이 (앤디 워홀의) 담낭은 염증과 농양으로 문드러진 상태가 됐다. 워홀의 아버지도 담낭염으로 세상을 떴으니, 집안에 유전성 담낭 질환이 있었던 것으로 파악된다.”(2022년 9월 22일자 A20면)

    조선일보

    2022년 9월 22일자 A20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워홀은 달러 지폐·햄버거·코카콜라·통조림 같은 대중이 소비하는 식품과 물건, 매릴린 먼로·케네디·마오쩌둥처럼 대중에게 잘 알려진 유명인을 실크스크린 기법으로 다량 복제하는 그림을 선보였다. 하나의 작품이 아니라 조수를 고용해 공장에서 찍어내듯 작품을 제작했다. 이를 ‘조립 라인’이라 부르고 작업실을 ‘공장(Factory)’이라고 했다.

    “천재적인 미술가의 위대한 손이 만들어낸, 이 세상에 단 한 점밖에 없는 고귀한 미술품을 기대했다면 워홀의 ‘조립 라인’이 불경하게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워홀은 오늘날 우리가 동경하는 수퍼스타들도 그렇게 대량으로 생산되고 대량으로 소비된다는 사실을 보여줄 뿐이다.”(2013년 11월 19일 자 A31면)

    조선일보

    1994년 8월 12일자 15면.


    ‘가난한 예술가’라는 개념은 없었다. 가수 한대수에 따르면 워홀은 “돈 버는 것이 예술”이라고 했다.

    “워홀은 예술의 개념을 바꾸어 놓은 인물이다. 예술가는 굶주리고 고생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버렸다. 예술가는 살아 있을 때 부귀영화를 누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워홀은 피카소처럼 모든 영광을 살아 있을 때 누렸다. 심지어 뉴욕 상류 사회 파티에 참석할 때도 출연료를 받았다. 그가 말했다. “돈 버는 것은 예술이다―비즈니스를 잘하는 것은 최고의 예술이다(Making money is art―Good business is the best art).”” (2017년 4월 8일자 B4면)

    조선일보

    2007년 9월 17일자 A13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워홀은 현대 물질 문명을 사랑했다. 중독이라 할 만큼 쇼핑을 즐겼다. 한대수는 뉴욕에서 앤디 워홀이 쇼핑하는 모습을 여러 차례 목격했다고 한다.

    “나는 워홀과 동시대에 뉴욕에서 살았다. 그를 뉴욕 길거리에서 10번 이상 봤다. 그는 완전히 쇼핑 중독자였다. 지난주는 블루밍데일 백화점에서, 어제는 헨리 벤델(우리 마누라가 디자이너로 일했던 곳)에서, 또 오늘은 삭스 피프스 애비뉴에서 눈에 띄었다. 번쩍이는 은색 가발을 쓰고 혼자 쇼핑을 한다. 항상 쇼핑백을 너덧 개씩 들고서 말이다. 그가 죽고 나서 4층짜리 집을 뒤지니 열지도 않은 상자와 쇼핑백이 무려 641개나 됐다.”(2017년 4월 8일자 B4면)

    조선일보

    2017년 4월 8일자 B4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워홀은 죽은 후 더 높게 평가받았다. 사망 한 달 후 작품 값은 7배 이상 뛰어올랐다.

    “워홀 사후 첫 경매는 한 무용학교의 신설 기금 마련을 위해 그가 죽은 이튿날 행해진 자선 경매였다. 이때만 해도 실크 스크린의 ‘마사 그레이엄의 댄스 포즈’ 3점이 50%가량 오른 5500달러에 낙찰되었다. 그 후 워홀의 작품 값은 LA의 페러스 갤러리 전시회를 계기로 폭등하기 시작, 최고 가격 38만5000달러를 기록했다. 작품의 이름도 최고가에 걸맞게 ‘1백 장의 1달러 지폐’였다.”(1987년 3월 31일 자 조간 7면)

    조선일보

    2015년 1월 8일자 A26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1973년 제작한 마오쩌둥 초상 ‘마오’는 2008년 경매에서 시작 가격이 1억2000만달러(약 1200억원)였다. 1964년작 매릴린 먼로 초상화 ‘샷 세이지 블루 매릴린’은 2022년 5월 경매에서 1억9504만달러(약 2500억원)에 낙찰됐다.

    [이한수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