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4월 2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세계 각국에 부과할 상호관세율을 발표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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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연방대법원의 상호관세 무효화 판결로 인한 후폭풍이 일고 있다. 유럽의회에서는 대미 무역협정 비준을 중단해야 한다는 요구가 제기됐다. 인도는 연방대법원 판결의 의미를 파악할 시간이 필요하다며 미국과의 무역 회담 일정을 무기한 연기했다. 관세율을 낮추기 위해 너무 많은 것을 양보한다는 자국 내 일각의 비판을 무릅쓰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협상을 타결한 국가들이 곤경에 처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인도 무역협상단 관계자는 오는 23일(현지시간)부터 사흘 일정으로 예정됐던 미국과의 무역 회담 일정을 기약 없이 연기했다고 CNBC에 22일(현지시간)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번 판결로 인한 상황의 변화와 그 의미를 충분히 검토한 후 회담 일정을 다시 잡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원래 인도와 미국은 이번 회담에서 무역 협상을 마무리할 계획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인도 정부에서 통상 협상가로 일했던 아제이 스리바스타바는 “양국의 무역 협상은 인도산 상품에 대한 상호관세를 18%로 인하한다는 전제로 논의됐지만, 전제가 바뀐 만큼 전략을 재고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CNBC에 말했다. 제1야당 인도국민회의(INC)는 이번 판결에 비춰 미국과의 무역협정 체결을 보류하고 재협상을 해야 한다고 나렌드라 모디 행정부에 촉구했다.
앞서 이달 초 양국은 미국이 인도에 대한 상호관세를 50%에서 18%로 인하하는 대신 인도는 미국에 농산물 시장 일부를 개방하고, 5000억달러(약 724조원)어치 미국산 상품을 구매하는 등의 내용을 골자로 하는 잠정 무역협정 프레임워크에 합의한 바 있다.
유럽의회 내에서는 미국과의 무역협정 비준 절차를 중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베른트 랑게 유럽의회 무역위원회 위원장은 이날 소셜미디어에 글을 올려 “무역법 122조에 근거한 새 관세는 합의 위반이 아닌가. 설사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미국이 그걸 준수할지조차 아무도 모른다”며 “더 이상 누구도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 EU와 다른 미국 교역 파트너들에게는 의문만 남고 불확실성만 커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랑게 위원장은 “내일 열리는 긴급회의에서 미국 측의 명확한 약속과 적절한 법적 평가가 있을 때까지 (대미 무역협정과 관련한) 입법 작업을 중단할 것을 제안하겠다”고 밝혔다. 유럽의회는 오는 24일 미국과의 무역합의 조항 중 미국산 산업재와 랍스터에 대한 관세 철폐 안건을 놓고 표결이 예정돼 있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도 “미국 연방대법원 판결 이후 미국이 취할 조치에 대한 명확한 설명을 요구한다”며 강력한 어조의 성명을 발표했다. 이어 현재 상황은 지난해 8월 EU·미 공동 성명에서 명시된 바와 같이 ‘공정하고 균형 잡힌, 상호 이익이 되는’ 대서양 간 무역 및 투자를 실현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서 “EU 기업은 예측 가능성과 법적 확실성을 보장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EU 집행위가 상호관세 위법 판결 이후 공식 입장을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다만 집행위는 성명에서 “합의는 합의”라면서 미국이 약속을 이행한다면, EU 또한 합의를 이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 아직까지 미국과의 무역협상을 철회하겠다고 밝힌 국가는 하나도 없다. 트럼프 행정부에게 본보기로 가혹한 통상 보복 조치를 당할 우려 떄문이다.
가장 곤혹스러운 상황에 놓인 것은 상호관세를 낮추기 위해 트럼프 대통령과 경쟁적으로 협상에 나섰던 아시아 국가들이라고 뉴욕타임스(NYT)는 지적했다. 수출의존도가 높은 한국·일본·대만·베트남 등은 너무 많은 것을 양보한다는 자국 내 일각의 비판 속에서도 관세율을 낮추기 위해 무역협상을 타결시켰다.
연방대법원이 관세를 뒤집더라도 트럼프 행정부가 다른 방식으로 관세를 부과할 것으로 예측됐기 때문이다. 실제 트럼프 행정부는 상호관세 무효화 판결 후 무역법 122조·301조 등을 동원해 관세율을 유지하겠다면서 “달라지는 것은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관세를 대체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무역합의가 지켜질지 확신할 수 없는데다, 자국 내의 반발 여론이 커지면서 해당 국가들은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했다고 NYT는 지적했다.
미 싱크탱크인 전략국제연구센터(CSIS)의 도쿄 주재 객원 연구원인 폴 나도우는 “승자는 미국과 무역협상을 하지 않았거나, 관세를 낮추기 위해 막대한 대미 투자금을 약속하지 않은 국가들”이라고 NYT에 말했다.
워싱턴 | 정유진 특파원 sogun7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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