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선물은 시대에 따라 달랐다. 짚으로 엮은 달걀 한 꾸러미가 전부였던 시절을 지나곤 설탕이나 미원 같은 조미료를 선물하는 시대도 있었다. 이제는 스팸이나 참치 캔 세트가 명절 선물의 표준 자리에 올랐다. 그러다 보니 명절이 끝나면 중고 거래 플랫폼엔 스팸과 참치 캔이 시세보다 싼 값에 쏟아져 나온다. 체면치레를 위해 적당한 선물을 주고받긴 하지만 막상 받는 사람한테도 그다지 효용 없는 물건이 오가는 셈이다.
보관성 좋은 범용 가공식품이야 저렇게 거래라도 된다지만, 애매한 선물은 남 주는 것 외엔 용처도 마땅찮다. 내가 쓰긴 뭣하지만 남 주면 생색 나는 물건들이라서다. 내가 받은 차 세트도 어쩌면 서너 차례 다른 주인을 거쳤을지 모른다. 유통 기한이 긴 홍삼 같은 건 해를 넘겨 다시 세상에 나왔을 수도 있다. 그러니 보낸 이도 받은 이도 내용물을 모르는 촌극이 빚어진다.
내용물을 모르는 게 꼭 명절 선물만일까. 최근 어느 여당 정치인은 현금 1억원이 든 쇼핑백을 받고도 내용물을 몰라 문간방에 방치했노라 해명한 적이 있다. 사실 여부야 알 길이 없지만, 솔직히 아쉬운 마음도 있었다. 기왕 선물 돌려막기가 횡행하는 세상이라면, 나도 그분과 미리 연을 맺어둘걸 그랬다는 때늦은 바람(?)도 생겨서다. 혹시 아는가. 내용물도 모르고 방치되던 쇼핑백이 선물 돌려막기로 내 손에 쥐어졌을지.
그런 극단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선물 돌려막기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내게 필요 없는 물건도 적당한 주인을 찾는 순간 귀한 대접을 받는다. 누가 고른 건지는 몰라도 그해 겨울에 마신 차는 정말 근사했다. 다음 명절에는 또 어떤 물건이 돌고 돌아 내게 올까. 개봉하지 않은 스팸이어도 좋고, 출처 모를 차 세트여도 반갑겠다. 다만 내용물을 모르는 쇼핑백만은 정중히 사절이다. 생각해보니 그걸 감당하기에 내 간이 너무 작다.
[박한슬 약사·'숫자한국'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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