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2.25 (수)

    내 딸 졸업식인데, 입장권 있어야 간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인원 제한’ 두는 초중고 졸업식

    조선일보

    지난 12일 서울 강동구의 한 초등학교 체육관에서 졸업식이 열렸다. 학교 측이 졸업생 한 명당 학부모 한 명만 입장을 허용하면서 나머지 가족들이 밖에서 대기하고 있다./권우석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 12일 오전 서울 강동구의 한 초등학교 강당 앞. 졸업식이 열리는 강당 입구에서 학부모 40여 명이 담임 교사 직인이 찍힌 ‘입장권’을 손에 쥐고 줄 서 있었다. 인파가 몰리면 안전사고가 날 수 있다며 학교가 학생 한 명당 가족 한 명만 강당에 들어올 수 있게 한 것이다. 옛날 졸업식에서 볼 수 있었던 졸업생과 가족, 교사들이 교실에 모여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모습도 없었다. 학교는 아예 졸업식 몇 주 전 “졸업식 당일 교실 개방은 하지 않겠다”는 가정통신문을 보냈다. 학부모 이미정(45)씨는 “아이 아빠가 강당에 들어가지 못해 아들 졸업식을 못 봐 아쉬워했다”고 했다.

    교사와 제자, 학부모가 서로 감사함과 아쉬움의 마음을 전하던 졸업식이 갈수록 축소되고 있다. 매년 1~2월 졸업식 시즌마다 행사 진행 방식이나 안전 문제를 두고 학부모들의 항의가 이어지기 때문이다. “좁은 강당에 사람이 많이 몰려 아이가 다치면 학교가 책임질 것이냐” “우리 아이는 왜 상을 못 받느냐”는 학부모 민원에 학교 측이 되도록 간소하게 졸업식을 치르려 하고 있다. 서울 지역의 한 초등학교 교사는 “‘눈물의 졸업식’은 옛말”이라며 “졸업식이 ‘최대한 빨리, 아무 일 없이’ 끝내야 하는 행정 절차로 변하는 경향”이라고 했다.

    조선일보

    지난 12일 서울 강동구의 한 초등학교 체육관에서 졸업식이 열린 가운데 학교 측이 졸업생 한 명당 학부모 한 명만 입장을 허용하면서 학교 측이 학부모에게 배부한 입장권. 이 입장권이 있어야 졸업식장에 들어갈 수 있다./권우석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경기 김포시의 한 중학교는 작년 졸업식을 체육관에서 치르면서 가족 400명을 선착순으로 입장시켰다가 ‘맞벌이 부모를 차별하느냐’는 항의에 시달렸다. “우리는 부부 둘만 왔는데 다른 집은 할머니·할아버지는 물론 이모부까지 데리고 왔더라. 왜 우리 아이만 위축되게 하느냐”는 식의 민원도 만만찮게 들어온다고 한다. 이에 이 학교는 올해 졸업식 행사장엔 아예 부모들을 들어오지 못하게 한 채 학생·교사만 참석시켰다.

    실제로 ‘학부모 없는 졸업식’이 점점 늘고 있다. 대전 서구의 한 중학교는 지난달 13일 졸업식이 열리는 강당이 좁다며 가족들을 행사장에 출입시키지 않았다. 이 바람에 졸업생 가족은 운동장에서 기다렸다. 지난 9일 충남의 한 중학교는 졸업식장에 교사와 학생만 참석하게 했다. 학부모 등 가족은 교실에서 유튜브 생중계를 통해 졸업식을 지켜봤다.

    교사들은 “졸업식엔 수백 명의 학부모가 한자리에 모이다 보니 온갖 불만이 쏟아지기 마련”이라며 “학교 입장에선 민원을 피하기 위해 졸업식 행사에 수동적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학교안전공제중앙회에 따르면, 전국 초중고 내 안전사고 접수 건수는 2020년 4만1940건에서 2024년 21만1650건으로 5배 넘게 증가했다. 그런데 중앙회와 교육청은 실제 사고가 늘었다기보다는 학부모들의 ‘보상 청구’가 늘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경기도의 한 중학교 교사 이모(29)씨는 “졸업식만 하면 ‘같은 반 아이가 우리 애를 밀쳤으니 치료비를 물어내라’ ‘학생들을 제대로 지켜보지 않은 선생님이 책임지라’는 항의가 심심찮게 들어온다”고 했다. 최근엔 비슷한 이유로 서울 지역 일부 유치원과 어린이집도 졸업식에 학부모 참석을 제한하기 시작했다.

    졸업식의 꽃이라 불리는 ‘상장 수여식’도 자취를 감추고 있다. 학업 우수상 등 특정 학생을 대상으로 한 공개 시상을 두고 “상 못 받는 아이가 소외감을 느낀다”는 학부모 항의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경기 오산시의 한 중학교는 졸업식 행사에 앞서 상을 받는 학생들만 따로 불러 ‘비밀 시상식’을 열었다. 지난 5일 서울 서초구의 한 고등학교도 졸업식 행사 전 30분간 성적 우수자 등을 따로 모아 시상식을 열었다고 한다. 일부 초등학교에선 졸업식 때 ‘1인 1상’ 행사를 한다. 졸업생 전원이 자기가 받고 싶은 상 이름을 정하면 학교 측이 상장을 주는 식이다.

    박주형 경인교대 교육학과 교수는 “민원 문제 등으로 교사와 학부모가 거리를 두려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졸업식이 ‘함께 축하하는 자리’로서의 의미를 잃어가고 있다”고 했다. 권수현 교사노동조합연맹 정책실장은 “학생을 차별한다는 학부모 민원이 두려워 교사들이 졸업 행사가 끝난 뒤 졸업생·학부모와 대화를 피하는 분위기도 있다”고 했다.

    [장윤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