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은행 WM상품부 최진호 이코노미스트 “고환율 본질은 美 성장성”
최진호 우리은행 이코노미스트가 최근 서울 중구 우리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장경식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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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를 둘러싼 불확실성은 커졌지만 환율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봅니다. 이번 판결이 환율의 ‘게임 체인저’가 되긴 어려울 겁니다.”
미국 연방대법원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상호관세 부과가 위법하다고 판단한 이후 외환시장 향방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환율 전문가인 최진호 우리은행 이코노미스트(경제학 박사)는 24일 인터뷰에서 “작년에도 미국발 관세 불확실성이 커질 때면 미국에 대한 신뢰도 악화, 달러 패권에 대한 우려가 겹치며 달러 약세 흐름이 나타났지만 일시적이었다”면서 “이번 판결 역시 환율에 미치는 영향이 장기간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최 이코노미스트는 신한은행 S&T센터(옛 금융공학센터)와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를 거쳐 현재 우리은행 WM상품부에서 외환·금융시장 분석을 담당하고 있다.
◇트럼프 불확실성 다시 커졌지만
―미국 연방대법원의 상호관세 위법 판결이 환율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환율에 영향을 주는 변수들이 계속해서 새로 등장하고 있다. 작년을 돌이켜보면 ‘해방의 날’로 상징되는 미국의 관세 인상 관련 일련의 사건들이 있었다. 당시 미국에 대한 신뢰도 약화와 달러 패권에 대한 우려가 겹치며 달러 약세 압력이 나타났다. 이번에도 시장은 당분간 달러 약세 쪽으로 반응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번 판결을 계기로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이 의미 있게 개선될 것으로 보나.
“그렇게 보지 않는다. 달러 약세가 장기간 이어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 무역법 122조에 따라 15% 관세가 150일간 새로 매겨진 상황이고, 이후에도 미 행정부의 후속 조치로 기존과 유사한 수준의 관세가 이어질 수 있다. 일부 기업이 이미 낸 관세를 환급 요청할 수는 있겠지만 이 과정이 환율에 영향을 줄 만큼 신속하게 진행되기는 어렵다고 본다.”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를 지렛대로 대규모 대미 투자를 유도해 왔고, 이것이 원화 약세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평가도 있다. 트럼프 임기가 끝나면 환율도 안정될까.
“정치적 요인에 따른 변동성은 줄어들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의 1400원대 중반 환율을 트럼프 대통령 한 사람의 영향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근본적으로는 미국 경제의 펀더멘털이 매우 탄탄하다. 투자 자금이 지속적으로 미국으로 유입되는 구조가 유지되는 한 강달러 흐름도 쉽게 꺾이지 않을 것이다.”
최진호 우리은행 이코노미스트가 최근 서울 중구 우리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장경식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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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환율이 ‘뉴노멀’이 된 까닭
―이재명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환율이 조만간 1400원 안팎으로 내려올 수 있다고 언급했지만, 고환율이 이어지고 있다.
“구두 개입으로 단기 변동성은 키울 수 있다. 그러나 환율은 결국 경제의 기초 체력에 의해 결정된다. 미국 경제 규모는 한국의 약 16배인데 잠재성장률은 2% 안팎으로 비슷하다. 덩치가 훨씬 큰 경제가 같은 비율로 성장하면 성장 규모 자체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자금이 미국으로 향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다.”
―‘서학 개미’의 해외 투자가 환율 상승의 주범이라는 주장도 있는데.
“일부는 맞지만 본질은 성장성이다. 글로벌 주식시장은 인공지능(AI)과 빅테크 기업이 주도하고 있고, 이 분야에서 미국은 압도적이다. 한국에도 반도체·자동차 같은 경쟁력 있는 산업이 있지만 시장 전체를 이끄는 주도주는 제한적이다. 성장성이 있는 곳으로 자금이 이동하는 것은 자본시장의 기본 원리다.”
―최근 원화 환율은 엔화와는 동조하지만 위안화와는 다른 흐름을 보이는 이유는.
“코로나 팬데믹 이전까지만 해도 달러 대비 위안화와 원화는 거의 같은 방향으로 움직였다. 그러나 지금은 그 흐름이 완전히 달라졌다. 중국은 굴뚝 산업에서 벗어나 테크 산업 중심으로 성장하며 나름의 성장성을 인정받고 있고, 외국인 투자도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입되고 있다. 반면 한국과 일본은 미국과의 관세 협상과 대미 투자 압력에 노출돼 있다. 이런 구조적 요인 때문에 원화와 엔화는 동조하고, 위안화는 다른 궤적을 그리는 것으로 본다.”
◇‘고장 난 온도계’ 된 환율
―환율을 어떻게 정의하나.
“환율은 원래 경제에 열이 나는지를 알려주는 온도계다. 어디에서 문제가 생겼는지는 몰라도 이상 징후는 보여주는 지표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 기능이 많이 훼손됐다. 말하자면 ‘고장 난 온도계’가 됐다는 뜻이다.”
-고장이 났기 때문에 고환율이라도 괜찮다는 뜻인가.
“고환율이 곧바로 IMF 같은 시스템 위기로 이어지는 구조는 아니라는 의미다. 지금은 충격이 한 지점에서 폭발하지 않고, 물가 상승과 실질소득 하락을 통해 가계 전반으로 나뉘어 전달되는 국면이다. 이 때문에 과거처럼 시장이 즉각적인 공포에 빠지지 않는 일종의 ‘착시’가 나타난다.”
―환율 상승의 부정적 효과가 전국민에게 분산된다는 건 무슨 뜻인가.
“환율이 오르면 달러 기준 국민소득이 줄어든다. 원화 기준으로 경제가 2% 성장해도 같은 기간 환율이 2% 오르면 달러 기준으로는 성장이 사라진다. 그래서 최근 몇 년간 환율이 1100원대에서 1400원대로 오르는 동안 1인당 GDP는 3만5000달러 부근에서 정체돼 있다. 과거처럼 일부 기업이 무너지는 위기는 아니지만 국민 전체가 조금씩 고통을 나눠 갖는 구조가 만들어진 셈이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하나.
“K자 성장의 단면으로 볼 수 있다. 한국 반도체 산업이 호조를 보이는 것은 분명 긍정적이다. 그러나 반도체 산업은 고용유발계수가 매우 낮다. 10억원의 GDP가 늘어날 때 제조업 평균은 5명, 서비스업은 10명의 고용을 창출하지만, 반도체는 2명 수준에 그친다. 수출은 늘어나도 내수와 고용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가 약하다는 뜻이다.”
―올해 환율 전망은.
“상반기에는 1450원 안팎에서 횡보할 가능성이 크다. 미 연준이 기준금리를 한두 차례 인하할 수는 있겠지만 공격적인 인하는 어렵다. 여름 이후 금리 인하가 마무리됐다는 인식이 확산되면 다시 달러 강세 압력이 커질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숫자 자체보다 왜 달러가 국내로 돌아오지 않는지를 이해하는 것이다.”
[김성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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