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선택한 곳은 공교롭게도 베를린보다 더 추운 폴란드 바르샤바였다. 일행은 그곳의 아름답기로 소문난 크리스마스 마켓이 마음에 들었고, 나의 경우는 오로지 쇼팽이었다. 바르샤바로 향하는 기차에 앉아 여행 후기들을 찾아보며 그곳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서울스럽다는 평이 많다고 얘기하고 있었다. 그때 친구로부터 연락이 왔다. “그거 유대인 이송 루트인데?” 별생각 없이 있다가 놀라 찾아보니 실제로 내가 가고 있던 길이 1941년부터 1945년까지 유대인을 이송하던 루트와 상당 부분 겹쳤다. 순간 기차에 앉아 있던 몸이 다르게 감각되는 것이 느껴졌다. 창밖으로 눈이 쌓인 평원이 끝없이 이어졌다.
바르샤바 중앙역에 내렸을 때 급이 다른 추위에 움찔했다. 어디나 하얀 눈이 수북이 쌓여 있었고 쉬지 않고 칼바람이 불었다. 거리에는 새로 지은 높은 건물들이 빽빽했다. 100살이 넘는 건물이 대부분인 독일과는 사뭇 다른 풍경으로, 서울스럽다는 말이 이해됐다. 숙소는 바르샤바의 올드타운에 있었는데 중세 마을 느낌이 그대로 남은 성벽과 광장이 아름다운 구시가지였다. 유네스코에도 등재됐다고 해 찾아보니 놀랍게도 중세부터 쭉 보존되어온 마을이 아니라 1944년 전쟁으로 완전히 파괴되었다가 시민들 주도로 복원된 장소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금의 모습만 봐서는 그곳이 폐허였다는 사실이 감히 상상하기 어려웠다.
폐허에 대한 상상력이 결여된 채로, 바르샤바 봉기 박물관에 방문했다. 왜 한 가지 역사적 사건에 대해 박물관까지 지어졌는지가 궁금했다. 바르샤바 봉기는 1944년, 독일 점령 아래 있던 바르샤바에서 폴란드 저항군이 도시를 스스로 해방하고 전후 독립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일으킨 대규모 무장봉기다. 63일간 이어졌으며 결과는 처참한 실패로 끝났다. 이에 따라 폴란드는 말 그대로 바르샤바를 ‘잃었다’. 봉기를 진압한 독일군은 도시를 무참하고 체계적으로 파괴했다. 박물관에서 본 폐허가 된 바르샤바를 지금까지도 잊을 수 없다. 그 광경은 전까지 내가 폐허라는 것이 무엇인지 전혀 무지했음을 깨닫게 했다.
바르샤바 봉기는 이후에도 역사적으로 재평가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60년 전 일어난, 도시 전체를 폐허로 만든, 실패한 봉기를 기념하는 박물관은 2004년에야 개관한다. 이후 바르샤바가 재건되는 동안 그 중심에는 언제나 시민이 있었다. 그 순간부터 도시와 사람들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제야 진정으로 이곳이 서울과 닮았다고 말하고 싶었다. 자신을 위해 일어나는 용기, 실패를 바라보는 시선, 폐허를 잊지 않는 마음. 폐허를 지나온 도시로부터 얻은 잊을 수 없는 배움이다.
양다솔 작가 |
양다솔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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