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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26 (목)

    [역사와 현실]헤게모니에서 제국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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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원전 5세기 전반 페르시아가 수차례에 걸쳐 그리스 도시국가들을 침공했다. 이 전쟁에서 그리스인들은 아테네를 중심으로 뭉쳐 마라톤, 살라미스 등지에서 페르시아를 물리쳤다. 위협은 여전했다. 이에 그리스 도시국가들은 페르시아의 재침공에 대비하여 저마다 함선이나 현금을 추렴했다. 특히 델로스섬에 공동 금고를 마련하여 이를 아테네가 관리했다. 이로써 아테네는 델로스 동맹의 맹주, 즉 오늘날 헤게모니 개념의 어원인 ‘헤게몬(hegemon)’이 되었다.

    페르시아의 위협이 사라진 뒤에도 아테네는 델로스 동맹을 유지하려고 했다. 동맹을 탈퇴하려던 타소스도 강제로 무릎 꿇렸다. 그렇게 아테네는 제국이 되었다. 그리고 동맹 기금을 전용하여 자국의 가난한 시민들에게 나눠줌으로써 아테네 민주정은 더욱 민주화되었다. 제국이 민주주의를 급진화하고 민주주의가 제국을 필요로 하는 역설적 관계가 성립한 셈이다. 당연히 아테네의 자국 우선주의는 이웃 도시국가들의 반발을 야기했다. 스파르타 중심의 펠로폰네소스 동맹이 아테네에 도전하여 전쟁이 일어났고, 여기서 패배하며 아테네 민주정은 몰락의 길을 걸었다.

    아테네 이야기는 헤게모니가 무엇인지 일러준다. 국제관계에서 아테네의 헤게모니는 동맹국들에 자발적·호혜적으로 인정받았다. 아테네 영향력은 대단했지만 그 지배는 부드러웠다. 국제관계에서의 헤게모니는 국내 사회관계에도 투영됐다. 민중 지도자 아리스테이데스는 아테네인들에게 시골에서 나와 시내에서 살도록 권고했는데, 그는 자국 밖에서 얻은 수익을 해군으로 복무하거나 공무를 수행하는 자국 시민에게 수당으로 지급함으로써 지배층이 헤게모니를 지킬 수 있다고 믿었다. 그렇다면 헤게모니란 물리력이 아니라 경제적 혜택으로 동의를 끌어내는 능력을 뜻한다.

    헤게모니는 미묘하고 깨지기 쉬운 것이다. 아테네의 부드러운 헤게모니는 곧 투박한 제국으로 변질됐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헤게모니와 제국은 유럽사에서 계속 교대로 등장할 터였다. 역사학자 페리 앤더슨에 따르면, 카를 5세, 루이 14세, 히틀러 등이 제국 건설을 통해 다른 공동체들을 종속시키는 강력한 지배력을 추구했다면, 리슐리외, 레오폴도 1세, 비스마르크 등은 헤게모니적인 지도력을 발휘해 다른 국가들에 인정받는 리더십을 세우려 했다.

    헤게모니와 제국의 변주는 놀랍게도 2500년 전 아테네 이래로 아직도 되풀이되고 있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승전과 전후 세계 재편을 주도하며 글로벌 헤게모니를 장악했다. 그러나 저명한 지리학자 데이비드 하비에 따르면, 오늘날 미국 자본주의의 위기로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헤게모니는 붕괴하고 있다. 미국 지배층이 부의 재분배와 사회적 투자를 거부하는 한, 국가는 위기의 해법을 신제국주의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리하여 ‘평화·소유·평등’의 조건에서 발전하던 자본주의는 ‘약탈·사기·폭력’에 기초한 자본주의 초기의 원시 축적 단계로 회귀하고 있다는 게 하비의 진단이다. 이제 미국은 생산과 금융의 우위를 잠식당하는 가운데 군사적 지배력만 남았고, 경제적 방식의 지도력 대신 제국의 수탈에 의한 자본 축적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하비의 진단이 얼마나 타당한지와는 별개로, 자국 우선을 외치며 글로벌 관세를 부과하고 베네수엘라를 공습하는 트럼프 시대의 미국에 헤게모니라는 말을 붙이기 어렵다는 데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적어도 헤게모니가 상대의 독립성을 존중하고 은혜를 베풀며 인정받는 리더십이라면 말이다. 지금 우리가 보는 미국은 한때 우리가 알던 미국이 아니다. 탄력 넘치던 민주주의적 헤게모니가 헤지고 물먹은 스펀지처럼 변성되고 있는 듯하다. 그렇듯 우리는 중대한 역사적 이행을 목격하는 행운을 누리면서도 그런 이행의 두려운 결과를 감당해야 할 불행을 짊어지고 있다.

    경향신문

    장문석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장문석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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